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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5. 2024

벌킨보다 체력이지

그 무엇보다 간절히 원하는 그것

아이가 어렸을 때 문화센터에 데리고 다니던 시절, 한동안 친하게 지냈던 엄마가 있다. 나보다 한 두 살 어린 그녀는 누가 봐도 예쁘고 세련된 외모를 소유한 눈에 띄는 엄마였다. 화려한 이목구비에 치장해서 눈에 띈다기보다 원단이 좋아 보이는 단정한 스타일의 백화점에서 샀을 법한 옷에, 에르메스나 샤넬 액세서리로 꾸민 그녀는 한눈에 봐도 귀티가 났다. 왠지 모르게 눈이 가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달까.


우연찮게 가까운 자리에 몇 번 앉고 수강하는 수업도 겹치게 되어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샌가 문화센터 말고도 따로 약속을 정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도 만날 때마다 느낀 거지만 늘 심플한 스타일에 한 두 가지 럭셔리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그녀의 스타일이 늘 부러웠고 선망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집안 경제사정도 은근히 알 수 있는데, 굳이 일하지 않아도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만한 경제력을 갖춘 듯했다.


사는 동네도 가깝지 않고 아이들도 커가며 다른 교육기관에 다니다 보니 자연히 멀어졌는데, 여전히 가끔은 인스타를 통해 그녀의 근황을 확인하고는 한다. 가끔 올라 오는 피드에는 예전보다 한층 더 세련된 모습들로 가득했다. 그때보다 아이들도 상당히 컸고 스스로에게 투자할 시간도 생긴 모양인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여행도 다니는 일상이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그녀의 손에 들린 벌킨백. 벌킨도 한 두 개가 아니라 색상별로 여러 가지. 벌킨백 말고 또 유명한 게 켈리백이던가? 아무튼 종류별로 여러 가지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는 게 눈에 띄었고 자세히 보니 옷까지도 디올, 루이뷔통 같은 명품을 입는 것 같았다. 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휴직 중이었고 복직을 고민한다고 들었는데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전업주부로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꾸민 모양새는 '전업주부'라는 단어가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세련되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나도 사람이라, 여자인지라, 그리고 한 때는 (어쩌면 지금도) 명품에 대한 욕망을 품고 가끔은 구매하기도 했던 터라 부러웠다. 너무 부러웠다.


어떻게 한두 개도 아니고 벌킨을 여러 개나 소유할 수 있을까 그 경제력도 부럽고, 가방 선물을 하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편지까지 빠트리지 않은 그 남편의 센스도 부러웠다. 내 현실과는 비교되는 것 같아서 박탈감도 자연 따라왔다. 그녀와 잠시나마 교류하며 친하게 지냈던 건 서로 직업이나 지위가 크게 차이 나진 않았던 이유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금수저였거나 아니면 그 사이 남편이 전보다 더 벌이가 커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짐작만 했다.


나 스스로에게 조용히 자문했다. 나는 그 벌킨백이 부러운가? 정말 갖고 싶은가? 나에게 그 벌킨백은 꼭 필요한 물건인가? 그 가방에 대한 욕구는 과연 얼마만큼일까.


그 가방을 든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따로 꾸미지 않아도 왠지 있어 보이고 부유해 보이고 멋쟁이가 된 것 같고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그 가방은 필수재는 아니다.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남들이 쉽게 가지기 어려운 고급 명품에 대한 욕망의 산물일 뿐이다.


밤새 더워서 선풍기를 껐다 켰다 하느라 잠을 설치고 일어난 아침, 몸이 너무 무거웠다. 한숨 더자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무거운 눈꺼풀과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켜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홈트를 시작했다. 준비 운동을 하고, 덤벨을 들었다 올렸다 하다가, 플랭크를 따라 하고, 스쿼트를 정신없이 따라 하다 보면 머릿속에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다. 내 몸과 사투하느라 바쁜 것이다.


운동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그 반짝반짝 영롱하게 빛나는 벌킨백이 아니라 강인한 체력이지.'


벌킨백을 깔별로 가져다준다고 해도 지금의 내게서 체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절대 받고 싶지 않다. 40대에 접어들고, 나이가 들수록 매일 매 순간 뼈저리게 깨닫는 사실은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브런치 어느 작가님이 쓴 글을 보니 체력이 나쁘면 인성도 나빠진다고 주장했다. 좀 과격한 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읽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체력이 고갈되면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자존감까지 낮아지며, 미래를 꿈꿀 에너지도 사라지고 간신히 현재를 버티게 된다고. 얼마남은 에너지를 쥐어짜서 쓰게 되니 편협하고 인색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는 논리였다. 자칫 파격적인 논리가 아닌가 싶었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니, 굉장히 진실에 가까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체력>을 쓴 이영미 작가님도 운동을 시작하고 체력을 단련시키면서 결국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체력이 뒷받침되면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할 수 있고 자기 의지로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특히 육체의 건강이 무너지면 품위, 독립, 자율, 자유, 위엄 등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거의 다 잃게 된다고 했다.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라고 느꼈다. 그나마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아침에 짬을 내서 스트레칭이라도 시작한 건 몇 년 전 <마녀체력> 을 읽은 덕분이었다.


스트레칭이든 요가든 어떤 형태로든 매일 아침 간단한 운동을 하기 시작한 지 n연차인데도 그간의 노력만큼 체력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좌절스럽다. 운동강도가 매우 약하긴 했을지 몰라도 워낙에 저질체력이었던 터라 내 몸과 끊임없이 타협하면서 운동 강도를 조절해 왔다. 새벽 찬 공기 마시며 천변으로 뛰어나가 달리기도 해 보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한 시간씩 운동도 해보았고 이제는 근력유산소 위주 홈트로 정착한 상태다.


그래도 아직 운동량이 충분치 않은지, 기본 체력이 워낙 바닥이었어서 그런지 체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에 덤벨을 이용한 근력 운동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끼고 있다. 근육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팔다리는 말랐지만 배는 튀어나온 이티 몸매의 소유자로 살아왔다. 근육이 있으면 노후에 병원비를 몇 천만 원 아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금씩 노력하다 보니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내 몸 어딘가에도 아주 살짝 근육이 붙는다는 착각도 하고 있다. 왜냐면 전보다 플랭크나 스쿼트가 죽을 만큼 힘들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에는 플랭크 10초만 해도 죽을 것 같고 없는 힘을 쥐어짜서 죽기 살기로 버텼다면, 지금은 20초가 지나도 '어? 이거 할 만한데?'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육아에도 집안일에도 살림에도 또 직장일에도 인생의 거의 모든 영역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체력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40대가 예전 40대와 다른 세상이라서 40대여도 30대 못지않은 외모와 체력을 겸비해야 하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 돼버렸다. 20년 전 전국노래자랑 속 30대 출연자들보다 외모는 조금 어려 보일지 몰라도 속은 다 늙어서 골골대느라 5,60대의 체력으로 살아야 한다면 이 얼마나 괴로운 현실인가.


특히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 육아 강도가 남들의 두세 배가 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보통 이 정도 나이면 친구를 사귀어서 바깥에서 노느라 정신없는 게 정상인데 그 역할을 엄마가 대신해주어야 하고, 몰놀이로 가장한 감통을 집에서도 수시로 해주어야 하고 치료실에 데리고 다니려면 그 역할을 아빠와 나눠서 하기 어렵다면 더욱 엄마의 시간과 에너지가 풀로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체력이 너무나 필수조건인 것이다.


만약 지금 누군가 아주 어린 월령의 아이가 발달에 이상이 있거나 문제가 있는 젊은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먼저 엄마의 체력부터 키우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다. 아이에게 어떤 치료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계획을 세우는 건 다 부차적인 문제다. 우선 엄마가 그 모든 걸 감당할만한 힘과 에너지, 인내심이 요구되는데 그게 다 체력에서 나온다.


누군가 나에게 몇 천만 원짜리 백 수십 개 할래, 강철체력을 가질래 선택권을 준다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체력을 선택할 것이다. 체력만 바탕이 된다면 삶에서 무엇이든 도전해 보고, 시도해 보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도, 또 한 번 두려움 없이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 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AI 세상이 되어서 업무 환경도 많이 변화되었을 것 같고, 업무 방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챗gpt나 에듀테크 관련 책이라도 사서 급한 대로 읽어봐야 하나 생각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해서 체력이나 겸비해 두자는 것이었다. 어떤 새로운 변화가 오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 시도해 보려는 도전 정신 등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다 체력에서 나온다. 피곤하고 지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전에 하던 대로 관성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이 너무 힘든데 뭘 더 배우고 알아야 할지 의지도 동기도 생겨나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에. 미리 어설프게 그런 책을 사서 읽어본들 당장 현장에 투입되지 않은 이상 뜬구름 잡는 느낌만 들게 뻔하고 괜한 고민만 추가될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고 더 바빠질걸 대비해서, 적금 들듯이 열심히 체력을 키워두는 게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이 놈의 체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오랜 기간을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라 답답하기도 하지만 매일 꾸준히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열심히 운동해서 강한 체력을 가지는 게 더 좋지,라는 혼자만의 망상을 이어가다가 문득 드는 또 다른 생각,


날씬하고 탄탄하게 건강해 보이는 멋진 몸에 무심하게 벌킨백을 하나 턱 걸치면 환상의 조합 아니야?

음.. 세상에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사진 출처: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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