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Mar 19. 2021

인생을 걸어가는 정확한 길을 아나요?

처음 가보는 곳을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 집은 판교, 가는 곳은 파주. 주말만 아니었다면 차로 운전을 해서 갈 먼길인데, 주말에 고속도로가 막히면 오도 가도 못하기 때문에 광역버스로 가기로 했다. 앱으로 검색을 해보니 우리 집에서 1시간 45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거리와 주말을 감안하면 과히 오래 걸리는 것 같지 않고, 오랜만에 낯선 곳으로 찾아가는 여정도 재미있을 듯하고, 요즘 교통앱이면 어디든 못 가랴 싶어서 길을 나섰다.


그 교통앱이 모르는 것도 있다는 걸, 정류장에서 깨달았다.

주말이라 주중보다 배차간격이 길어져서, 언제 다음 차가 올런지는 교통앱도 몰랐다. 그저, 조금 지나 정류장에 도착을 한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소요시간이 1시간 45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눈앞에서 내가 타야 할 버스를 놓쳤으니, 나는 원래 계산한 시간에서 얼마를 더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2시간이면 넉넉하겠지 싶었는데, 넉넉하기는 커녕 늦게 생겼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늦는 건데. 큰일 났다.


1번 계획은 강남역에서 파주 가는 광역버스를 갈아타는 건데, 강남 가는 버스를 놓친 거다.

2번 계획으로 한남동을 가서 다시 강을 건너 논현에서 파주 가는 버스를 타기로 한다.

논현을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앱을 보니, 파주행 버스도 한 번 놓치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내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떠날 것 같은 계산이 나와서 또 계획을 수정한다. 신사역에서 다른 광역버스를 타면 한번 더 갈아타긴 하지만 그게 더 빠를 것 같다. 3번 계획이 나왔다.

신사역에서 광역버스를 갈아타려고 정류장 앞 횡단보도까지 왔는데, 내가 타고 갈 버스가 중앙버스차선에 보인다. '아, 안된다. 저걸 놓치면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제발 신호등에 걸려라. 걸려라'하고 있는데, 정말 그 날 두 번째로 그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신호등이 바뀌어서, 정확하게 내가 정류장에 발을 디디기 3초 전에 떠나버렸다.

망연자실하게 버스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다음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고 망했다 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내가 애초에 타려고 했던 광역버스가 3분 후에 도착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버스는 논현역을 지나 신사역을 들르는 버스였고, 내가 용케 신사에 멈추는 통에 잡아탈 수 있었다.


자로 잰 듯이 두 시간 만에 나는 목적지에 세이프했다.

당연히 늦을 거라 생각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너무나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을 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누군가가 주말 모든 버스노선의 배차시간, 각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 신호등 바뀌는 시간, 내 걸음걸이, 방금 놓친 버스를 타려면 어느 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환승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모두 알아서 재단한듯한 경로였다.

판교에서 파주를 가는 길에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들은 곳곳에 있다. 나는 이게 최적이라고 생각하는 경로도, 아 놓쳤구나 나는 망했다 생각하는 경로도 언제든지 뒤집어진다.


인생을 걸어가는 경로는 어떨까?

젊었을 때 나는,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였다.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를 보내는 동안에는 이것저것을 궁리해야 했고, 맞아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로 큰 어려움, 또 그 어려움이 해결되는 순간은 내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찾아왔다. 정말로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모멘텀은 하나도 내가 계획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내가 눈앞에서 버스를 두 번 놓치리라고는, 방법이 없구나 생각하는 순간 더 적당한 버스가 바로 도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처럼 말이다.


그럼, 나는 아무 기대도 생각도 하지 않고 인생을 걸어가야 하는 걸까?

어차피,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으니까,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보내면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길을 걷다가 멈춰서 자주 생각한다. 이 길은 어떤 길일까?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일까? 아니면 다른 길이 있을까?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지만, 예전처럼 무턱대고 앞만 보고 돌진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전진하더라도 맞는 방향이 아니면, 결국 나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낯선 길에서도 다시 맞는 길로 연결된 우회도로를 찾게 되리라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멈춰서 그 길 위에서 기도한다.

'하느님, 이 길이 맞는지 제게 알려주십시오.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게 말해주십시오.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제가 그 길을 용기 내서 걸어가겠습니다.'


나이 오십이 지천명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멀었다. 하늘의 뜻을 알기는커녕 내 뜻도 남의 뜻도 다 캄캄하다.

다만, 이 나이에 배운 것이라면,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길이 종종 틀리더라는 것, 하지만 실망할 필요 없이 더 이상 달리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제는 빨리 달리기보다는 자주 멈춰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한 발자국을 내디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역시 자주 하느님께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어 '라고 자책하는 대신,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있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방향으로 시속 100km로 달리는 것보다는, 그 자리에서 멈추어서 다른 방향도 바라보는 시간이 중요하다.


하지만, 열심히 물어보아도 답을 선명하게 찾기란 쉽지 않다.

아마, 나이 오십이 하늘의 뜻을 알기 전에 묻는 나이인 것 같다. 오늘도 열심히 물어보겠다. 내 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 업무 말고 주말을 계획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