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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Feb 07. 2024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까요?

대학원에서 얻고 싶었던 것



후일 생각해 보니 내가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내 마음이 힘들지 않고 싶어서였던 듯하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그 감각을 무시하기엔 이따금씩 올라오는 불편감이 나를 힘들게 하였기에.

그 당시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았고

불편감은 나를 흔들리게 하며

결국 나를 힘들게 하였기에.  






치료를 진행하면서 내가 '모자라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보다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모자랐고 이 익숙함에 적당한 타협을 해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기서 타협이 불안이라는 단어와 연결된 이유는 여기서 내가 하게 될 타협이 내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래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도 아니었다.  


여전히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뭔가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루하루 언어치료를 진행하면서 치료를 끝내고 저녁에 하루를 돌아보면 답답하고 짜증 나고 미안한 마음 투성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성인환자분들과 소아대상자를 만났다. 성인 환자분들이 마주한 상황은 뇌졸중, 사고 등으로 인해 원래 가지고 있던 언어능력이 손상되면서 한 순간 매우 빠르게, 혹은 점차적으로 본디 갖고 있는 능력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분들에게 있어 나는 그 모래들을 최대한 붙잡아 두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어린 소아대상자들은 아이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정상적으로 발달해 나가는 언어능력이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아이는 또래보다 발음이 부정확했고, 어떤 아이는 언어능력과 지적능력 등등이 모두 더뎠다. 이런 아이들에게 있어 나는 아이가 또래들과 벌어진 격차를 최대한 메꾸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이었다.






두 측면의 대상자들에게 대하는 접근방식과 치료방식은 모두 달랐고, 대상자의 수가 늘어감에 따라 똑같은 치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명확하게 잡히는 밧줄 같은 건 없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도움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대학원 진학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학위에 대한 갈망이나 강단의 꿈 등 미래를 생각하기엔 너무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먼 미래의 나보다는 눈앞의 나와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단지 나는 내가 오늘 언어치료사고 내일도 언어치료사일 것인데 그러기엔 언어치료사인 나 자신이 너무 막막했다.


대학교를 졸업했기에 다시 대학교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언어치료를 어디서 더 배울 수 있을까. 대학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요즈음은 언어재활사협회에서 다양한 보수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유튜브나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배울 수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만큼 배움의 방법이 다양하진 않았다.


대학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힘들지는 생각지도 않은 채 그동안 모아놓은 통장잔고만 확인했다.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 정도로 1년가량 쓸 만한 돈이 통장에 있었다. 어느 주말, 집으로 가 내 결정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허락하셨고 나는 대학원 입학 원서를 작성했다.






나는 보다 명확한 '방향'을 원했다. 가야 하는 길. 정답. 그걸 누가 좀 알려줬으면 했다. 막연히 그걸 대학원이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대학원의 세상에 들어가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은 대학원이 그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무언가가 정답을 내려주기를 바랐고 사실 그 어떤 것도 그럴 수 없으며, 결국 방향을 결정하는 건 결국.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학원과 그 이후의 시기는 나에게 그러한 시기였다.   



방금 나의 말이 대학원이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학원은 내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나에게 주었고, 여러 가지 세상을 알려주었다. 대학교와 직장이라는 세상에서는 겪어보지 못할 여러 경험들. 가장 중요한 것,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삶이 아닌 내가 떠먹는 삶. 내가 먹을 것 자체를 직접 골라 요리도 해보고, 직접 맛보며, 다 먹은걸 스스로 설거지까지 하는 그런 삶.


학위논문뿐만 아니라 그보다 값진 것을 얻은 대학원 생활기. 쉽기까지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어쩌면 이때부터 내 무의식 속에는 '쉬움'과 '행복'이라는 두 단어는 일촌을 맺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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