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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Feb 21. 2024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것, 내 머리에 쥐어진 것.



시간이라는 것은 귀하고 참 감사하다.


참 감사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관계에 있어 포기하지 않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면 결국 시간은 나에게 보답을 주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결국 같은 일을 진행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 여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보답을 안겨주었다. 또 처음이라 어려웠던 몇 가지 일들을 보다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학위논문을 완성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안겨다 주었다.


2년이라는 시간. 인생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의 축에 홀로 서있을 때는 속절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한 학기가 매우 길게 느껴졌고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제와 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또 빨리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해야 하지..'


한 번씩은, 아니 자주 이렇게 아래로, 깊숙한 어딘가로 내려갔다. 신체는 예민하고 나약했다. 쉽게 지치고 쉽게 짜증이 나는 몸뚱이였다. 지친 몸은 머릿속을 어지러이 만들었다. 내가 그런 상태 싶으면 그날은 조금 많이 걸었다. 감사하게도 교정이 넓어서 걸을 곳이 많았다. 조금 곳으로 가서 학식을 먹고, 조금 둘러서 강의실로 가기도 했다.


정신이 없었지만 정신을 잡으려 노력했다. 내가 정신을 잡으려 한 노력 중 하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과제를 하며 마시고 있는 커피에 의미를 부여하고, 한 장 번역을 끝냈을 때도 그 종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도서관에 있을 때는 주변에 앉아있는 그 사람들과 이 공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주 가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의 응원에 의미를 부여했다.






내가 대학원에 왜 왔을까.
왜 와서 내가 직접 돈을 내고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 때면 자꾸 나는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 혼자 춤을 췄다.


가시덤불 속에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 덤불 속에서 헤어 나오려고 무작정 발버둥을 쳐 볼 수 있다. 반면에 가시덤불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라보고 내 주변에 이를 걷어 낼 만한 도구나 방법이 있지는 않은지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왜 왔긴, 배우려고 왔잖아. 잘 모르니까 왔잖아.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학업적 공부만 알려주지 않았다. 먼저 목표와 마감을 정해 이를 지키고 실현해 내는 고통과 기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작은 단체 속에서 긍정적인 관계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들을 가방 속에 넣는 법도 알려주었다. 언어치료학의 방대함과 내가 보다 관심이 있는 분야, 관심이 가는 대상자에 대한 큰 줄기도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시간의 귀함을 알았고 시기심과 질투심, 부러움을 충분히 느끼기도 했다.


가시덤불 속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내 눈에는 가시덤불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작게 핀 꽃들, 촉촉하고 영양분 넘치는 땅, 싱그러운 냄새를 함께 보는 순간 우리는 우주를 만날 수 있다.






논문 심사과정을 보내게 된 시기 동안에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여전히 20대였고, 무엇보다 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잠이 많았다. 고3 때도 일정한 양은 어떻게든 자던 나였는데 고3 때도 잔 잠을 이 때 못 잤다. 지금까지 잠으로 고생한 시기가 두 번 있는데, 첫 번째가 이 대학원 석사 논문작성시기였고 두 번째는 아들을 낳고 6개월가량의 시기였다. 그래도 함께 논문을 쓰는 동기들이 있었고 '졸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카운트 다운을 하며 대상자들을 만나고, 통계를 돌리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교수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시간의 흐름만으로 만 19년이 지났을 때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은 '인(成人)'이 되지만, 모든 이들이 '성인(聖人)'에 이르는데 관심이 있지는 않다. 교수는 대학교 및 대학원의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직업이다. 교수라는 직업은 어쩌면 '성인(成人)'을 '성인(聖人)'이 되게 돕는 직업일 지도 모른다.


그 많은 소우주들을 매 년, 매 학기, 매 시간 새로 만나며 우주를 넓히는데 도움을 주는 일.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나 '하나'였지만 교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다.


나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 머물렀지만 그 교정에는, 그 연구실에는 여전히 교수님이 계신다. 교수님선 나 이전의 과거에도, 지금 현재도 그곳에서 많은 우주들을 만나고 계실 터였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내가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하며 그걸 조금씩 알게 되었고 실습강의를 맡으며 학우들의 실습지도를 시작했을 때는 조금 더 여실히 다가왔다. 마치 엄마의 사랑을 잘 모르던 철부지 딸이 아이를 낳고 나 자신도 엄마가 되자 엄마의 사랑을 뒤늦게 알아 죄송하고 감사한 것처럼.


누군가를 가르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교수님께 정말 감사했다. 감사함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배움이 매일매일 유효하기에.


다른 사람을 좀 더 이해해야 하는 이유.


언어치료를 하며 만나게 많은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마음가짐.


결국 내 우주를 어떻게 정의해 나갈 것인가 까지.



대학원을 졸업하는 그날,


내 손에는 학위기석사졸업논문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우주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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