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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Feb 28. 2024

언제까지나 아이일 수는 없다는 것

시간은 흐른다. 누구에게나.



대학원생으로 하루하루 쌓아감과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언어치료사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동안 공부를 해오며 느꼈던 점들을 바탕으로 나는 아이들, 특히 소아정신과적 병력을 지닌 아이들을 만나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부산의 한 소아정신과에 붙어있는 기관의 언어치료사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내가 만나오던 의사소통과 관련된 여러 어려움을 지닌 대상자들. 그들은 나이도 다 달랐고 증상도 각기 달랐다. 이제는 내가 만나는 대상자들의 범위가 조금 좁혀졌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기였던 그 아이들은 주로 발달지연, 지적장애, 주의력결핍행동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중 하나 이상의 라벨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기관에서 재직한 초반에는 주로 유아 및 학령전기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나라 나이로 세 살에서 일곱 살가량에 해당했다. 모든 아이들은 정말 예뻤다. 얼굴이 찹쌀떡처럼 몽글몽글하고, 사람에게서 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일을 마친 뒤나 일요일에 거리를 다닐 때 유독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 마트에서 떼를 쓰는 아이들. 아파트 놀이터에서 깔깔 거리는 아이들. 그렇게 모르는 아이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아이들의 행복이 바람을 타고 나에게 들어올 때. 그 순간의 행복에 나 또한 전염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비가 오거나 우중충한 날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365일 웃음이 많았다. 해가 뜨면 날씨가 좋아서 신이 나고, 비가 오면 물장난을 칠 수 있어서 웃는다. 자신의 즐거움에 솔직하고 주어진 오늘 하루에 충실한 아이들. 나는 아이들이 좋았다.   


그리고 내 우주에서 함께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이들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머리와 가슴속 소통을 온전히 해내고, 그래서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을 더 온전히 느꼈으면 했다.


우리는 자신의 우주를 자기 자신이 온전히 느끼고 경험하며 이와 동시에 자신의 우주를 바깥으로 잘 꺼낼 수 있을 때 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행복함을 느낀다. 의사소통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기 자신과의 소통도,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도.






언어치료를 진행하는 업무시간 동안은 힘들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기쁘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업을 하는 그 순간동안은 지금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치료가 끝난 퇴근길이나 일요일 오후에는 자주 아이들을 생각했다. 처음의 생각은 아이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 줘야지'로 주로 채워졌다. 치료계획서를 쓰거나 평가내용을 정리할 때에는 특히 더 그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은 '그 아이가 이래서 이랬구나'와 '이 아이는 이렇게 소통하고 있구나', '이 아이는 이런 상처가 있어'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언어치료를 하는 그 순간 아이를 관찰했다. 아이가 하는 작은 행동들에 담긴 아이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에 대한 내 행동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함께 생각했다.  






이 무렵 나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작은 습관 하나가 생겼다. 그 습관은 잠자기 전 아이 한 명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가 언어치료사로 출근해서 만나는 아이들은 여러 명이 있었다. 어떤 날은 일곱 명 정도를 만났고 어떤 날은 열 명을 만나기도 했다. 언어치료는 주로 한 명의 아이와 한 명의 치료사가 1대 1로 일정 시간 동안 치료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어떤 날은 그룹치료도 있어서 지정된 시간에 여러 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어떤 아이는 나와의 만남이 나기도 하였고, 즉 치료를 종결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새로운 아이와의 만남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어느 날부턴가 자기 전 나는 아이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다 보니 제대로 잡히지 않고 어지러이 흩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하루에 한 명씩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로는 두 세명 정도 하다 잠들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 한 명의 아이를 생각하면 아이의 지금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가 했던 말과 내 치료에 따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행동들, 그리고 아이가 보인 문제 행동들. 조금 더 나아가면 아이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들었던 요즘 아이의 일상, 아이가 주로 보여 어머님이 요즘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 문제, 그 외 어머님이 이야기해 주신 아이 주변의 상황들, 어머님의 개인적인 고민이나 사정들.  

 

아이가 문제행동이 심하거나 치료에 부정적이어서 협조가 전혀 되지 않을 때, 치료를 하는 그 순간에는 힘이 들었지만 잠자리에 누우면 보다 잔잔한 마음으로 아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내가 치료실에서 겪었던 시간을 마치 좌석에 앉아 스크린 속 영화장면을 바라보듯이 바라보면 아이를 마주하는 시간.  이 습관은 나에게 꽤나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내가 아이와 보다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느 날처럼 출근을 했다. 당시 내가 치료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치료실은 병원 입구에서 들어와 약간 좁은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주욱 들어가면 위치해 있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 보호자와 아이들을 바라본 뒤 복도 쪽으로 몸을 꺾어 들어가는데, 치료실 쪽에서 커다란 덩치의 고등학생 두 명이 서서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길지 않은 복도에서 우리는 곧 마주쳤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둘이 서면 어느 정도 자리가 채워지는 복도였다. 나와 아이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가야 했고, 길은 막혔다. 우리 셋은 순간 멈춰 있었다.


"뭘 봐요?"


한 아이가 내게 말했다. 변성기를 거친 낯선 목소리와 나보다 훌쩍 큰 에 순간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물들었다.


"뭐 하노, 선생님 서계시는데 안 비켜드리나!"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10살 정도 많으신 남자 심리치료사 선생님이셨다. 근무일정이 달라 그 선생님의 얼굴은 자주 뵐 일이 없었다. 오늘 보강수업이 있어 나오신 모양이었다. 두 아이들은 그 심리선생님께 수업을 받고 있던 아이들이었다. 심리 선생님의 호통에 아이들은 얌전히 복도의 길을 터주었다.


"놀래셨지예. 애들이 덩치만 크지 착한 애들입니다. 자주 얼굴 못 뵙다가 오늘 뵙네예."


선생님이 아이들의 어깨를 잡고 나에게 인사를 시키면서 말문을 여셨다. 나는 아직 살짝 남아있는 긴장감을 떨쳐내며 인사와 함께 심리 선생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며 복도를 채웠던 두 아이를 떠올렸다.


소통의 어려움을 가지고 세상을 십수 년 살아온 아이들의 눈빛.


간단한 표현은 되지만 자신의 마음속 말들을 다 펼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온 아이의 눈빛.


그리고 그 아이들을 바라봤던 당황함이 물든 내 눈빛.


아이들은 내 눈빛을 어떻게 느꼈을까. 그리고 십수 년을 살아오면서 받아왔던 그 수많은 눈빛들로 채워진 이 아이들의 우주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까.  


나중에 심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한 명은 ADHD(주의력결핍장애)이고 한 명은 자폐스펙트럼과 ADHD를 둘 다 진단받았다고 했다. 속마음은 착한데 학교생활을 오면서, 점점 커가면서 여러 가지로 많은 상처들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혼자서 센터에 올 수 있을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과 자조능력을 갖추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어떤 아이들은 커 갈수록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는 말도.


치료가 없는 중간시간에 선생님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께선 자신이 아이들과 대화를 아이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향어 등으로 고생을 하신다며 앞으로 많이 이야기를 나누자 하셨다. 연차 높은 심리 선생님의 의사소통에서 놀랬을 아가씨 선생님에게 건네는 배려편안함느껴졌다. 선생님께선 현재 내가 어린 아동들만 주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떠올렸던 두 아이에 대한 생각은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드는 시간 어김없이 떠오른 내 담당 아이들의 생각에도 스며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나를 '열심'이게 하는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도 언젠가 열 살이 되고, 열다섯 살이 되고.


그리고 더 나이가 들 터였다.


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보다 컸을 때 처음 만나게 된 사람들은 어떤 눈빛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보게 될까.  


발달하는 시계가 느리다고 해서, 장애가 있다고 해서 세상의 시간이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우주는 계속해서 무언가로 채워질 터였다. 그 당연한 사실을 발견한 어느 날. 난 그 무언가가 최대한 어둡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함과 동시에 두려웠다. 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언어치료를 하면서 어떤 아이와 만남이 시작되기도 했고, 또 끝나기도 했다.

끝이 나면 또 다른 아이를 만났다.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내가 여긴 아이의 시간은 '나와 만나는 동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내 우주 속에서의 아이'까지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당연했을 그 정의가 어느 날,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나와의 만남이 끝나면.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아이는 지금의 모습까지이겠지만 사실 그 아이의 우주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날.


나와 언젠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보다 나은 소통을 하기를. 그러기 위해 지금 아이와 만나는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조금은 두려워서, 조금은 힘들어서

보지 않으려 했던 부분들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들이 이렇게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더 공부할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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