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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Mar 13. 2024

익숙함이 가져다준 나쁜 버릇 -2

속단 대신 이해, 버릇 대신 습관.



그냥 누군가에게 나 사는 얘기.

내 얘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오늘 붙잡아주셔서 감사해요.



여느 날처럼 첫째의 치료가 종료되고 어머님과 상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오늘따라 어머님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머님의 입술은 몇 번이나 움찔거리다 다시 붙었다.

 

상담을 끝내고 일어나 치료실을 나가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뒤돌아 나를 바라보셨다.


"선생님은 정말 예쁘고 똑 부러지세요. 선생님이 너무 부러워요."


어머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돌아서 치료실 문을 열고 나가셨다. 어머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마디였지만 짧은 찰나, 어머님의 눈빛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말들이 담겨 있었다.


예상치 못한 어머님의 말씀에 순간 당황함이 스쳤다. 그리고 찾아온 마음은 어머님을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어머님은 아이들 신발을 신기고 계셨다.


"어머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


마침 뒷 시간에 다른 치료 일정이 없었다. 나는 어머님 다 내 치료실로 모셨다.


 




료실로 돌아온 뒤.

우리는 상담을 이어갔다. 아니, 대화를 나눴다. 


어머님은 결혼 전 중소기업에서 경리직을 하셨다 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 사람들 속에서 제 몫을 수행해 낸다는 보람과 뿌듯함으로 하루하루 행복했다고 하셨다. 오랜 기간 직장인으로 생활하다 보니 혼기가 가득 찼고, 직장동료 소개로 아버님을 만나 조금은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하게 되셨다고 했다. 아버님은 다자녀를 원하셨다. 어머님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연년생으로 세 자녀를 연이어 낳으셨다.


세 아이들을 내리 출산하시면서 어머님은 변해버린 몸과 육아라는 현실에 대한 책임도 함께 떠안게 되셨다. 아버님은 경제적 책임을 위해 일하셨고,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시간은 대부분 어머님이 함께 했다. 어머님의 하루는 세 아이들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어머님의 하루하루는 일전의 삶을 송두리째 잊을 정도로 정신이 없고 힘들었다 하셨다. 아이가 생겼는데 도와줄 사람은 없고. 하나를 키우다 보니 하나가 또 생겼고, 그러다 셋째까지 태어났다. 어머님은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는 몇 년 동안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잊어버리셨다. 잊어버렸고 잃어버렸다 하셨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온 지 몇 년이 더 흘렀을 때, 첫째가 또래보다 말이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셨다.


센터를 처음 방문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아이의 발달이 느린 것 같다고 아버님에게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함과 호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셨다. '네가 잘 못 키워서 핑계 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하셨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들만 키워오며 사신 어머님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고 모든 것은 다 자기 탓인 듯했다 하셨다.






선생님에게 매번 죄송하다고.

열심히 치료해 주시고 상담해 주셔서 누구보다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집에서 가정지도를 할 때마다 아버님의 눈치를 많이 보셨다던 어머님.

퇴근하자마자 TV와 일체가 되는 아버님 때문에 차마 미디어 노출을 줄이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는 어머님.

이렇게 핑계를 대는 것도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님.

어머님은 치료센터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부터도 이미 많은 고개를 넘으신 거였다.

  

그간 어머님과 1년 여 동안 만나오며 상담시간마다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정말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시던 어머님은 어느 순간부터 속사포처럼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그런 이야기들.


"내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아 너무 슬펐어요. 그런데 그렇게 나를 돌볼 여유도 없으면서 키워온 애들이 느리다는 게.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엄마자격도 없는 것 같고.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 같아서 애들한테도 너무 미안하네요."


"냉장고 안쪽에 깜빡 잊고 넣어둔, 손이 잘 안 간 반찬통 있잖아요. 그러다가 결국 상해버린 반찬. 가족들 줄 순 없어서 내가 꺼내서 먹으려도 해도 이미 너무 상해버렸어요. 제가 그런 반찬통 같아요. 아무도 찾지 않고 냉장고에 들러붙어 버린 반찬통."






어머님께 어떤 위로의 말씀들을 드렸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러움을 다해 어머님과 대화를 나눴다.


냉장고에서 아무도 찾지 않고 깜빡해 버려 굳어지고 상해버린 음식이 담긴 반찬통. 음식은 상해버렸지만 눌어붙은 반찬통을 끄집어내 깨끗이 씻으면 새것을 담을 수 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만나는 상담시간에는 첫째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기도 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6개월쯤 지났을 무렵, 어머님께서는 파트타임 경리직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 늦은 오전에 출근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오기 전까지가 업무시간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많은 두려움과 아버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아버님을 설득했고 어머님은 용기를 내셨다. 일을 시작하셨지만 시간이 가능했기에 아이들 치료도 지속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가량을 더 만났고, 내가 그 기관을 퇴사하게 되며 헤어지게 되었다.  






어머님 덕분에 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내가 치료하게 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어머님 성함을 여쭙고, 기억해 두는 습관.

'OO어머님'과 함께 'ㅁㅁ씨'로 내 마음속에 기억해 두는 습관.


속단이라는 나쁜 버릇을 가졌던 나에게 새로운 좋은 습관을 만들게 해 주신 그 어머님.

헤어진 지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계시는 어머님.

우리 둘의 모든 이야기를 다 쓸 수는 없지만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은 우리의 역사와 시간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어머님께 용기와 행복이 흐르고 있을 거라 굳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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