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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Mar 20. 2024

나는 언어치료사, 아이는 무발화

말문을 터트려주고 싶다. 너무 간절하게.  



언어치료사로 하루를 보내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는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게 가능했지만 또래 아이들 수준보다는 느린 경우였다. 그러나 내가 치료를 하고 있는 몇 아이들은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무발화'아동이었다.


당시 '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언어치료를 잘 모르는 주변인들은


"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어디를 다쳐서 그런 거야? 왜 말을 못 하는 거야?"


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하루도 많은 말을 하고,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다. 만약 아이가 있거나 아이를 본 적이 있다면, 아이가 떼떼 거리며 아직은 덜 여문 의사소통을 하는 귀여운 모습을 본 적도 있었을 터.


'말을 못 한다'는 이야기에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간은 말을 하고,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숨을 쉬듯이.






'무발화'라는 것은 '발화가 없다'는 뜻이다.

언어치료사들은 통상적으로 일련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10개 미만일 때, 무발화 아동이라 칭한다.  

아이들은 사실 하루하루에 굉장히 많은 발달들이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아이들을 보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래서 아이의 행동들에 숨겨진 의미와 치열함을 발견할 때마다 정말 인간은 존귀하고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의 하루는 의사소통으로 꽉 차있고 숨 쉬듯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소중함이 때때로 당연하다.

누구나 누린다고 생각하는 이 당연함.


하지만 몇 아이들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어릴 때의 발달이 순조롭지 못하다.

그래서 또래만큼 발달하기 위해 우리가 보내는 하루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보통 한 살쯤 되면 아이들은 미숙하게 걷기 시작하고, 미숙하게 '엄마'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어떤 아이는 두 살쯤 되어야 걷기 시작하거나, 두 살쯤 되어야 미숙하게 '엄마'소리가 나오게 되는 경우다.


한 살 반쯤 되면 '엄마'라는 소리가 '내 엄마'를 뜻한 다는 걸 알고 수십 개의 단어가 이렇게 '소리''뜻'을 지닌다는 걸 알아채 쓰기 시작하는데, 세 살이 되었는데 아직 어떤 '소리'가 어떤 '뜻'을 지닌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경우다.


무발화 아동들은 아직 어떤 '소리'가 어떤 '뜻'을 지닌다는 걸 인지해 내지 못하거나, 혹은 어떤 소리가 뜻을 지닌다는 걸 인지했지만 그 소리를 잘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이러한 상태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채 아이의 시간이 흘러가면 이의 결과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많은 제약으로 귀결된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떨까. 말이 안 되니 아이는 여태껏 통용되었던 방법을 쓰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가 했을 때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었던 방법들. 아직 말소리를 능수능란하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있어 통용되었던 방법은 울음, 소리 지르기, 몸으로 표현하기, 직접 자신이 해버리기, 혹은 포기해 버리기 등이다.


머릿속에 뭔가 원하거나 말하고 싶은 '뜻'이 있는데 그걸 약속된 소리로 표현하지 못할 때, 모든 인간은 답답함을 느낀다. 답답함은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아이는 그걸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답답하고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무발화 아동에 대한 내 가장 오래된 강렬한 기억.

자폐스펙트럼 및 지적장애로 판정받은 5살 아이를 만났다. 아이의 어머님도 경한 지적장애를 진단받은 분이셨다. 어머님은 일상생활은 가능하셨지만 심도 있는 대화나 높은 차원의 지적기술을 활용하는 일은 힘드셨다.   


이 아이는 항상 잘 웃었다. 매일 과자 사탕만 먹어서 이가 새까맸다. 이는 새까맸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에는 때 묻음이 없었다. 국가지원을 받아서 아이는 엄마, 누나와 함께 치료실을 다녔다. 아이의 누나도 지적능력의 지연으로 언어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이는 '무발화'였다. 내가 어떤 소리를 따라 하라고 하면 '따라'하지 못했다. 그런데 혼자서는 외계어 소리를 내었다. 아이는 '따라'한다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내 치료실에 입실하면 매번 보는 건데도 장난감들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 경제적 여건 때문에 아이의 집에는 장난감이 없었다. 키즈카페는 구경도 못해보고, 늘 TV와 친구였던 아이.


집 안에 놀거리가 없어 아이는 놀이터나 공터에서 자주 놀았고, 그 덕인지 대소근육은 언어능력에 비해 많이 발달되어 있었다. TV 밖에 없는 아이를 위해 치료가 끝나고 상담 때마다 어머님이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숙제'를 내어 드렸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은 없었다. 아이는 밝았지만 아이의 발달상황은 밝지 못했다.






지난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아이에게 언어를 배우기 위한 인지개념들과 소리를 발성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다. 아이에게 입을 붙였다 떼어 내는 /ㅂ/, /ㅁ/소리, 다양한 모음소리 등을 훈련시키고, '따라 한다는 것',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것', 무언가를 원할 때는 '약속된 소리'를 내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치료실에 들어올 때마다 내 훈련을 마치 '처음'보는 것인 양 행동했다.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반복되는 수업내용에 조금씩 지쳐갔다. 아이를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한 상황에 대한 좌절감.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조급함. 이 훈련을 아이와 언제까지 해야 할까 하는 불안감. 내 노력이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내 마음이 조금씩 새카매져갔다.


여느 날처럼 내 치료실에 입실한 아이. 나는 어머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손에 닿지 않던 교구장의 장난감을 언제 그랬었냐는 듯 자기 손으로 훌쩍 꺼냈다. 얘가 언제 이렇게 키가 컸지. 아이의 신체가 제법 '성장'했음을 느꼈던 그날, 나의 마음은 더 새카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

고심했지만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결론 냈고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새카매진 내 마음을 걷어내는 것이었기에. 퇴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한참 새카매졌다가 그걸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내 마음속에 사진으로 저장되어 있는 여러 날 중 하루가 찾아왔다.

내가 들이 민 엄마의 사진을 보고 아이가 '엄마'라고 소리를 낸 날.


엄마의 사진을 보고 아이가 '엄마'라고 소리 내었다는 것은 아이가 '엄마'라는 뜻을 우리가 약속한 '엄마'라는 소리로 상황에 맞게 '표현'했다는 뜻이다. 나는 감격해서 아이 손을 붙잡고 당장 치료실 밖 대기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를 가리키고 아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이는 엄마를 쳐다보고 '엄마'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의미 있는 첫 단어를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아이고, 드디어 엄마 했네. OO아, 드디어 배웠나?"


어머님은 그리 말씀하셨다. 상담시간에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하루동안 나는 흥분에 차 있었다. 구름 위를 둥실 거리는 기분.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새카맣던 마음이, 지우개로 박박대도 그리 지워지지가 않더니 짠 하고 매직블록이 나타나 순식간에 닦아낸 기분이었다.  


치료의 기간이 거듭되자 아이가 의미를 내어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적지만  몇 개 더 생겼다. 여전히 또래 아이들의 언어발달 수준에 비하면 한참 늦은 모습이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내가 아이의 우주에 작은 변화를 기여했다는 것에 너무 큰 행복을 느꼈던 날.






무발화 아동을 만나서 아이의 말을 트여준 내 첫 경험. 이후로 대상 아동들을 대하는 내 마음속 프레임이 변했다. 연구결과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40%의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이 무발화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배워오면서 스며든 생각들. 생각들로 만들어진 프레임. 그게 변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과정은 치열해야 한다'로.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살아오면서 내 마음속 깊게 자리 잡은 소망이 있었다.

이 세상 최대한 많은 아이들이 보다 행복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

그에 대한 큰 줄기가 된 '이성'과 '지혜'.

그렇기에 아이를 대함에 있어 치열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이 의사소통이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큰 언덕이다.

언덕을 넘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넘더라도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럼에도 나는 내가 손 붙잡은 아이들과 함께 이 언덕을 기꺼이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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