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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Mar 27. 2024

나는 언어치료사, 아이는 ADHD



여덟 살짜리 어린이의 고민이나

여든 살 어른의 고민이나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 캐스터너 -




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막 되었을 무렵 만났다.

눈과 입이 엄청 커서 시원함과 똘망함이 얼굴에 묻어나던 남자아이.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았고 주의력으로 인한 학교생활의 어려움과 충동적 성향으로 인한 단체에서의 과행동을 주원인으로 나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를 만나 처음 언어능력평가를 진행하던 날. 치료실에서 나는 검사를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시작했다. 아이는 대부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지금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을 나에게 해대었다.


"선생님 근데 몇 살이에요?"

"선생님 같이 어린 사람도 선생님이 될 수 있어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은 완전 아줌만데."

"선생님 핸드폰 구경할까요? 핸드폰 꺼내봐요"

(혼자 험한 말을 한 뒤) "아, 선생님한테 한 거 아니에요. 반에 OOO가 생각나서."



아이는 내 검사 질문에 여전히 모른다고 답했지만, 내가 던지는 질문의 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어른에 대한 '예의'라는 선 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던 아이. 그게 그 아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어머님과의 상담시간.

아이의 어머님은 아이의 무례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하였다. 아이를 통제하기가 어렵고 얄미운 말과 행동만 골라서 한다고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여 아이는 아버지 앞에서는 맥을 못 추린다고 하였다. 어머님은 2년 동안 학교에서 수차례 전화를 받았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혼도 내 보았지만 들어 먹히질 않는다 하셨다.


아이는 2학년 무렵부터 ADHD관련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학교 수업시간에는 어느 정도 얌전해졌지만 친구들과의 대화, 교우문제에서 지속적인 갈등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족관계도 긍정적이지 못하다 하셨다.


아이는 작년 언어치료와 심리치료를 권고받았는데 어머님께서는 아이가 말 '자체'는 잘하니 언어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셨다 하셨다. 아이는 한글도 다 익힌 상태였고, 해당 학년 수준의 수학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배우지도 않은 얄미운 말을 너무 해대서 문제가 되었다 했다. 그래서 2학년 1년 동안 심리치료 받았는데, 아이가 거부가 심해 1년 만에 심리치료는 종결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치료를 안 다닐 수는 없겠다고 느끼시고는 언어치료를 시작하기로 하셨고, 그래서 나와 인연이 되었다.


아이는 형이 한 명 있었다. 형은 똑똑하고 운동도 잘했다. 다양한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하였다. 똑똑한 형과 너무 비교되었던 그 아이.


 




검사에 너무 비협조적이어서 비공식적인 검사와 관찰결과를 우선하여 치료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본격적인 언어치료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나이에 걸맞은 문장을 구사하거나 단어를 표현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대화기술적절하지 못했다. 대화를 진행함에 있어 상대를 고려하거나, 대화의 순서를 지키거나, 대화의 주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보였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 상대방의 대답도, 상대방의 이야깃거리도 아이에겐 중요치 않았다.  


우리는 다양한 '목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아마도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오늘 하루의 여러 가지 말들에는 어떤 '목적'들이 있었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친구들과 하는 대화에는 '즐거움을 공유하기'나 '상황을 공감하기', '어떤 정보를 설명하기', '내 의견을 주장하기', '관계를 유지하기' 등과 같은 목적이 주로 담겨 있다.


이는 사실 우리 어른도 다르지 않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친구나 연인을 만나면서, 업무를 하거나 동호회에 나가서 우리는 저러한 목적들을 가지고 일련의 대화를 한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나'를 세상에 알리고,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하는 말의 끝에는 마침표 대신 날카로운 낚싯바늘이 붙어있는 것 같았다.

대부분 하는 대화의 목적이 '상대를 약 올리기''상대를 화나게 만들기'인 듯던 아이의 모습.

일전 아이의 치료를 담당했심리치료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다. 심리치료사 선생님 아이의 '말발'에 혀를 내둘렀다고 하였다. 리고 아이가 보이는 심리적 어려운 부분들을 보다 자세히 전달받았다.


 




아이를 만난 지 6개월이 조금 넘었을 때, 일이 터졌다.

여느 날처럼 그 아이의 치료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어머님이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들어오시더니 아이에게 소리를 치시는 게 아닌가.


"얼른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못해?"


아이는 부루퉁한 얼굴로 나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아이의 손에는 작은 자동차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내 치료실의 것이었다.


어머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저번 치료시간에 치료가 끝나고 어머님과 내가 상담을 하고 있던 도중 아이가 몰래 내 치료실에 있던 자동차 하나를 집으로 들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하시려던 어머님이 아이 바지주머니에서 그걸 발견했고, 어머님과 아이가 실랑이하면 논쟁을 하는 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시던 아버님 귀에까지 들어가 그날 저녁  난리가 났다고 하였다.


어머님께서는 아이가 10살이나 되었다 보니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셨고 걱정하셨다. 아이는 아이대로 얼굴이 매우 상해 있었다. 어머님께 상황 설명을 듣고 난 뒤, 어머님을 진정시키고 대기실로 모셨다. 아이와 나는 치료실에 둘이 남았다.


나는 고민했다. 아이가 가져갔다던 장난감. 비싼 것도 아니었고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나 된 아이가 잘 가지고 놀법하지 않은 장난감. 나는 생각 끝에 아이에게 물었다. 이 자동차가 갖고 싶었냐고. 아이는 아니라고 말했다. 아이는 그딴 거 우리 집에 넘친다는 얄미운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OO이가 이걸 가져가는 행동을 했잖아.  OO 이는 그 행동이 나쁘다는 것도 알고, 또 엄청 갖고 싶던 것도 아니었어. 그리고 엄청나게 혼날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행동을 했다는 건, 선생님 생각에는.. OO이가 그 행동을 통해서 선생님한테 무슨 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아이는 우물쭈물했다.


나는 아이를 채근하지도, 달래지도, 혼내지도 않으며 최대한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로 아이와 대화를 이어나가려 노력했다. 아이가 그간 저 끝 어딘가에 구겨 놓은 마음, 감정과 마주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여겨졌기에.


긴 시간 끝에 아이는 말했다.

자기는 혼나는 게 편하다고.

자신이 이거를 가져가면 선생님이 화를 낼 것 같아서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이를 만나 오면서 아이가 낮은 자아존중감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관찰할 수 있었다. 아이의 언어표현과 이해 수준이 높았던 만큼 나는 아이와의 대화에서 단어 선택에 신중했고, 아이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아이를 존중해 주고자 했다. 아이는 그러한 내 모습이 낯설었던 듯했다. 아이는 그냥 혼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혼나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 마음 끝이 시큰했다.

그동안 이 아이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칼날을 마주했었을까.





사랑받지 않고 싶은 아이가 있을까.  

잘하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온전하게 그 존재로서 귀히 여겨지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자신이 가진 ADHD 때문에 그 아이는 남들만큼 앉아있는데 더 노력해야 했다.


남들만큼 공부를 해 내는데,

남들만큼 하루를 보내는데.


그 아이는 항상 더 노력해야 했을 것이다. 더 노력해야 '남들만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감정들이 자리 잡게 되었을까.


그 일이 있은 뒤에도 나는 치료시간에 계속 아이와 '대화기술'을 높이기 위해 수업을 하며 만났다.

나는 엄격한 아버님도, 형과의 비교가 심한 어머님도 변화시킬 수는 없었지만

일주일의 두 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에게 최선의 존중을 다 했다.






아이는 나와의 대화시간에서 언젠가부터 쓸데없는 언급이 줄고 내가 지정한 주제에 참여하는 빈도가 생겼다.  

아이가 대화에서 '감정단어'를 쓰는 빈도가 나타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지정된 주제를 유지해서 주고받기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자발적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빈도가 생겨났다.

'엄마', '아빠', '형', '친구'등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럴 때 내 대답은 '맞다' 혹은 '아니다'로 귀결되지 않았다. 다양하게 밀려오는 감정을 아이가 언어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늘 아이가 감정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자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충동적으로 드는 생각들이나 조절되지 않는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럴 때의 감정,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난 이후의 감정, 내가 그런 행동이 나오는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들.






그 아이를 만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얄미운 말만 가득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아이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이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형은 똑똑했고 학교생활도 험난했다. 그래서 때때로 아이는 힘들어하기도 하고, 한 번씩 여전히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치료시간마다 일련의 대화가 가능했고, 서로를 존중했다. 그 아이는 내가 대화가 잘 통한다고 했다.


언어치료사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중 하나였다.






아이는 형의 진학문제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날. 또 우물쭈물거리다가 아이는 내게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마음을 보여줬던, 그리고 그걸 언어로 표현해 주었던 그 아이. 커다랑 눈망울로 지금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모든 아이들은 사랑을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모든 아이들은 잘하고 싶은게 당연하다.

모든 아이들은 온전하게 그 존재로서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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