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아이 이지샘 Feb 04. 2024

나를 채우는 단어, #3. 상식

03. 상식



#상식 :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




'아니 사람이 상식이 없어'

'이런 몰상식한 사람을 보았나!'



우리는 일상에서 통념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상식이 없다'는 말을 쓰고는 한다. 살다 보면 어쩌다 한 번씩 우리는 상식이 없는 상황에 마주할 때가 많다. 참 신기한 일이다. 상식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라고 한다. 그럼 상식이라는 건 사람이면 웬만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는 건데, 혹은 사람이면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데, 사람 속에서 사는 우리는 어째서 상식이 없는 상황을 이토록 자주 마주하게 되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은 으레 퇴근길이 바쁘다.

나의 경우 아이가 학원이 모두 끝나고 하원하는 시간에는 주로 내가 아이와 함께 해야 하기에 퇴근길이 바쁜 직장맘 중 하나다. 여느 날처럼 아이의 하원시간에 맞춰 서둘러 퇴근을 하던 길이었다.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자주 그렇듯 이중주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란 말인가. 이중주차를 직선으로 놓아야 차를 밀어내고 차를 수가 있는데, 차를 주차장 공간에 대각선으로 놓았다. 주차 문제로 곤욕을 겪은 일이 이미 여러 번 있었지만 이건 처음 겪는 일이었고, 정말 상식 밖의 일이었다.


차를 살펴보았는데 전화번호가 따로 없었다. 전화번호가 없는 걸 확인한 순간 화가 났다. 내 차로 돌아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머릿속에서 이런 상황일 때 내가 꺼내 쓰는 매뉴얼을 끄집어냈다. 타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상식 밖의 일이 생긴 상황일 때 내 1번 매뉴얼은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건물을 오는데 급똥이 오신 걸 지도 몰라.'

'잠깐 아이를 픽업하거나 배달음식을 찾으려고 해서 얼른 대고 올라갔다 와야지 하는 생각에 저랬을 수도 있어.'

'오죽 급한 일이니 저리 차를 대고 쏜살같이 나갔겠지. 잠깐 기다려보자.'



전화번호가 없지 않은가. 2번 매뉴얼은 어차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면 잠깐 기다려보며 내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5분 동안 못 읽은 문자를 확인하고, 부재중 전화 한 통을 처리했다.


안 온다.

아들 학원 차가 집으로 출발할 시간이 됐다.

마음이 급해진다.


3번 매뉴얼, 이 상황에서 해결에 도움 되는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해 보는 것이다.

마침 관리사무소 불은 꺼져있었고 대각선으로 차가 주차되어 있어 차를 밀었다가는 앞쪽이건 뒤쪽이건 다른 차에 부딪히게 될 모양새다.

그러던 차에  퇴근시간다 보니 다른 차 주인들이 내려왔고, 다른 차가 빠지고 대각선 차를 한쪽으로 최대한 밀자 내 차가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집으로 운전하는 동안 생각해 봤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차를 저리 대고 올라갔을까. 자신은 잠깐이라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얼굴 모를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걸까. 아니, 이건 배려의 차원도 아니야. 단지 일직선으로만 이중주차를 했어도 얼마든지 밀어서 나갈 수가 있는데. 저 얼굴 모를 차주의 세상은 얼마나 좁은 걸까. 처음엔 순간적으로 짜증과 화가 밀려들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며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내 상식선으로는 이해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 상식이라는 게, 일반적인 사람이면 알법한 이 지식이라는 게 말이다. 명확한 잣대나 경계가 모호하지 않은가. 무엇까지는 상식이고 무엇부터는 몰상식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걸 그래프로 한 번 구경해 보자.



이러한 모양을 우리는 정규분포라고 부른다. 여기서 가장 가운데가 표준, 평균이다. 가운데에서 시작해 오른쪽과 왼쪽의 일정 부분까지가 평균범주다. 오른쪽의 끝, 혹은 왼쪽의 끝으로 갈수록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다. 이 속에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들어있다고 가정을 해 보면,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은 저 색칠된 어디 즈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특성이 평균에서 많이 벗어날 때 저 오른쪽이나 왼쪽 끝쪽 어딘가로 치우치게 되고, 이는 세상의 소수들이 된다. 다양한 측면에서 소수들이 존재한다.


그럼 상식이라는 측면은 저 그래프에서 어디 즈음까지로 색칠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저 그래프가 만약 이런 모양이었다면 상식과 상식밖이 좀 더 구분하기 쉬웠을 것 같다.



이렇게 그 경계가 확 차이가 난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우주들이 있기에 직선으로 가로지어 결정 내리기 어려운, 부드럽고 완만하게 그 경계를 자르기 어려운 그런 모양이다.






예전엔 이런 적도 있었다.


내가 언젠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명절과 관련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중 나이가 지긋하신 한 분께서 '상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분의 댁에 손주가 명절이라 왔는데, 손주가 씻어야 할 상황이라서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고 한다. 손주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집에서 샤워를 한 셈이다. 그런데 다 씻고 난 뒤 욕조와 세면대에 물기가 그대로 있어서 그분께서 손주를 엄청 혼내셨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썼으면 뒷사람을 생각해서 씻은 물기를 다 닦아야 한다고 하셨단다. 내가 조심스럽게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를 여쭈니, 자기 몸을 닦고 난 뒤 그 수건으로 욕조와 세면대 등을 다 닦아놓고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손주의 행동을 몰상식하다고 하시며 손주에게 앞으로 어떤 집에 가서든 씻는 일이 생기면 그렇게 하라 가르치셨다고 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엄청 충격이었다. 한 번도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욕조나 세면대를 수건으로 닦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변기 시트를 닦거나 물이 묻은 슬리퍼를 세워 놓는 정도까지가 내 상식이었다. 내 상식이 이 분께는 몰상식이라는 생각에 혼돈의 카오스였던 그런 날도 있었더랬다.






이처럼 상식의 범주와 경계는 참 어렵다. 누가 좀 정해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누군가의 몰상식으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나 또한 몰상식의 범주에 속할 때가 있음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한 번씩 '이 정도는 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우주가 좁아진다는 걸 기억하며 살고 싶다.

부드러운 경계로 이어지는 이 정규분포표에서 나의 어떤 면은 굉장히 가운데에 있지만 또 혹시 모른다. 내 어떤 면은 굉장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지도.


나의 우주를 넓혀가고 싶은 나는 상식 밖의 일을 만나면 또 하나 경험했구나 하고 감사하고 싶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싶은 나는 경험을 통해 또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채우는 단어, #2. 긍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