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는 심리상담도 겸해야하리.

지금, 그 마음 끝까지 변치 않기를!

by 서비휘


오늘의 이야기는 80대 할머니다.

공직에 계셨던 남편 분의 월급이 만 오천원 일때부터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7남매 중 맏이였던 남편 분과의 슬하에 4남매를 키우는 동안

남편의 동생들 뒷바라지하랴, 자식들 챙기랴 말로 다하지 않아도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짐작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내가 어찌 할 수 있으랴! 그 삶의 깊이를!


지금은 공직생활 오래 하신 덕에

월 삼백이 넘는 연금이 나오니 두 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셨다.

자식들 또한 용돈은 잘 챙겨주니까.

문제는 할아버지께서 치매를 앓아 정신이 오락가락 집에만 누워계신단다.

어르신도 온 몸이 수술로 인한 칼자국이 안 거친 곳이 없다 보니

한 밤 중 또는 새벽녘이면 여기저기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셨다.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고통이 정말 지독해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픔이나 고통을 알기나 할까(?)

당장이라고 죽고 싶은 맘이 하루 열 두 번이라고.

혹시 내가 먼저 죽기라도 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늘 걱정이 끊일 날 없다셨다.

왜 안 그러실까.


어느 날, 둘이 잠자리에 누워

정신이 잠깐 돌아온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우리 둘이 손 꼬옥 붙잡고 한 날 한 시 갑시다.

준비는 내가 다 해 놓았어요.”


그 말은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

“이 좋은 세상 난 지금 떠날 수 없다. 한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억울해서 못 떠나겠다. 우리 애들 효자, 효녀, 효부들인데, 얼마나 가슴 아픈 짐을 남기는 것이냐!”


그 말을 듣는데, 어르신께서 정신이 번쩍! 하더란다.

한 평생 남편이 동생들 뒷바라지에 자식들 건사하느라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받쳤다는 생각에 다시 맘을 고치셨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통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데,

스스로 우리 목숨을 끊는 일은 없을 거라며

여든 넘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TV뉴스나 신문을 볼 때면 자식들이 여럿 있지만,

고독사를 했다거나 노부부가 자살한 뒤,

여러 날 뒤 발견됐다는 얘기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몸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견뎌내며,

할아버지 곁을 돌보시는 할머니!


굵고 두툼한 초에 심지 튼튼한 초를 꺼지지 않게

정성껏 돌보는 수행자를 보는 듯

지금 그 마음 끝까지 변치 않기를,

할머니나 할아지의 아픔이 사그라들기를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으고 있었다.


애들이 어렸을 때, 문화회관이나 도서관에서 양성하는

미술심리상담사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꼬챙이 하나만 들고도 쓰슥 잘도 그리는 그림을

온갖 그림 도구를 갖추고도 늘 제자리인 나인데,

그림을 못 그려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에 이끌렸다.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과 관련된 상담사가 될 수 있다는 문구에

호기심이 더 발동된 듯싶다.


참가자들은 대개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그림을 못 그리지만, 호기심에 찾아온 이도 있었으니

많은 위안이 되었다.


A4용지와 스케치북에 나를 그리고, 살고 싶은 집을 그리고,

맘속에 생각하는 나무,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주제는 같았지만,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그림을 그려냈다.


벽에다 참가자들의 그림을 쭈욱 붙여놓고,

내가 내 그림을 보면서 든 생각을 말하고, 참가자들도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내 그림 네 그림들을 보면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하였다.


내가 아는 내 마음과 미처 몰랐던 내 마음도

다른 사람의 얘기를 통하여 더 선명히 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시간엔 전지를 이어 붙여 전신 그림까지 서로 그려주고

그걸 벽면에 쭈욱 이어 붙였을 때의 연민과 감흥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던 나를 뚝 떼어놓고,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 때!

많이 자유롭지 못하고, 틀 안에서 소심하게 움직이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림에서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기억이다.


앞으로의 꿈이나 비전도 구체화 시키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장점을 새롭게 알게 된 계기이다.

나중에 나이 들어 상담사가 되겠다는 생각에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1급 미술심리상담사까지 공부했다.

그것이 지금 공인중개사의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못하고 살았네.


어르신들이 사무실에 오셨을 때,

물건을 찾는 쪽보단 팔 물건이나 임대할 물건을 의뢰하는 분이 아무래도

여유가 있으시다.

그 집이나 상가, 오피스텔을 어떻게 장만하셨는지 부터

살아오신 이야기가 무지개 빛 명주실을 뽑아내듯 쭈욱 쭉 끊임이 없으시다.

눈을 맞추고 가끔씩 추임새도 넣어가며 마음을 내어 들어드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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