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조율조차 쉽지 않구나!

by 서비휘

"지금 뭐하시잖거예요?

출근 도장 찍듯 사무실 문을 여는데, 매도인 K씨가 따라 들어서며 다짜고짜 따지듯 물었다.

목소리에 날이 제대로 서 있다.

"청소하신다고 한 거 아니에요? 비밀번호 알려준 거예요?“

따발총처럼 3초에 3가지를 묻는 통에 뭐부터 답을 해야 할지 멍해졌다.


순간, 무슨 일이 잘못됐나 싶으면서 심장이 ‘쿵’ 소리를 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비밀번호는 같이 가서 열어주었다.

청소 끝났다고 해서 문을 잠궜다.

" 청소만 안 되고 무슨 일이라도 ...?"

말끝이 흐려졌다. 오만 생각이 한꺼번에 들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8월 31일 월요일은 작은 빌라의 잔금 날이었다.

매도인 K씨의 집에 친정 엄마가 살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동네 L여사께서 그 집을 사게 된 거다.

계약할 당시, 석달 후 오전 11시 잔금을 치르고 집을 비워주면 바쁘게 바로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28일 금요일 아침 일찍 친정 엄마가 이사를 나가셨단다.

이웃에 살던 L여사가 오가다 분리수거함의 이사 흔적을 본 거였다.

L여사는 월요일 아침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있는 나와 동시에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 집 친정 엄마가 이사를 나간 것 같으니 비어있는 집 청소를 깨끗이 하고 싶으시단다.

아침 일찍 찾아오신 이유는, 오늘 청소할 수 있도록 따님인 매도인 K씨께 잘 얘기해 달라는 거다.

L여사님 그럴 수 있겠다싶었다. 새로 이사할 집 깨끗하게 닦고 싶은 맘은 누구나 있을 수 있으니까.

매도인 입장에선 잔금을 다 받기 전이라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원칙대로 하자면 안되는 일이기에 정중하게 부탁드려야 했다.


조심스럽게 매도인 K씨께 전화를 걸었다. 직접 따라가서 문을 열어주고 닫겠다고 했다.

'청소를 핑계로 이삿짐까지 옮겨놓고 돈은 내몰라라 하면 어쩌냐?' 말로 내뱉진 않았다.

'문을 열어주고 닫겠다'라고 했으니 크게 걱정은 안하셔도 될거 같다며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이사 나가고 바로 들어가야 했던 3년 전, 우리 집 일이 생각났다.

출근 한 나를 빼고 아들과 딸, 남편이 알아서 했다. 아직도 남아있다. 찜찜함이.

이사할 집 하루 종일 청소를 하면 힘은 들겠지만, 얼마나 개운할까.

청소 하시고 들어가실 걸 생각하니 3년 전의 내 찜찜함도 같이 씻기는 듯 기분이 좋아졌다

청소가 끝난 뒤 혹시 짐이라도 들였나 싶어 K씨가 들렀는데,

방 방에 무를 하나씩 세워놨더란다.

그걸 보는 순간 놀랐단다. 어떤 사람은 이사한다고 하면 안방 한가운데 밥 솥을 먼저 갖다 놓는다든지

소금을 미리 갖다 놓는다는 말은 들었다. 무는 처음이라 조금 놀라긴 했다.


이삿짐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은 찰나,

기분이 상당히 나쁘니 당장 빼라고 하란다.

'어차피 이사는 나가셨고, 들어올 사람 피치 못할 사정 있겠지.'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 냈다간 불 난 집 기름 붓는 꼴 되니 말이다.

31일 오전 11까지 자기 집이니 무조건 무 치우게 하라고 말하곤 돌아갔다.

L여사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삿짐을 갖다 놓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게 좋다고 해서

무 몇 개 가져다 놓은 게, 뭐가 문제되냐는 거다.

이 쪽 저 쪽 전화 통화를 하며 좋은 방향으로 전달했다.

두 쪽 다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팽팽히 당긴 줄 위에 내가 서있는 둣했다.

약간은 출렁거려야 자유자재로 몸을 놀릴 수 있을 텐데, 한 발도 떨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L여사님, 전화 통화로는 안 되겠는지 곧 쫓아오셨다.

그 맘 충분히 알겠는데, 내가 매도자가 아니니 들어주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매도인도 청소까지 해주시게 한 건 배려를 많이 해 주신거다.

청소조차 안 된다고 할 수 있었다 등등.


매도인이나 매수인 입장에서 서로 맘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했다.

'짐을 갖다 넣은 것도 아닌데, 젊은 사람이 참 매정하다고 느꼈겠지!'

하는 일이 잘 안 풀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잘 봐 주는 사람을 찾아갔더란다.

이사 할 이 쪽 방향이 안 좋다며 무 몇 개를 미리 갖다놓는 처방을 해주셨단다.

L여사님 그렇게 함으로써 맘이 편해진다면, 맘 치료를 받은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를 뺐다가 한 밤 중에 갖다 놓는다고 하셨다. 간절함이 느껴져서 알았다고 했다.

다음 날, 새벽같이 전화가 왔다. 매도인 K씨였다.

올 것이 또 왔구나 싶었다. 출근하기 전 확인하러 왔단다. 할 말이 없었다.

L여사님 사정을 말해줘도 소용없었다.

앞이 깜깜했다.

어쩔 수 없어 계약은 할 건데, 수수료는 못주겠다고 했다.

계약은 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알 수도 없었다.

오전 11시가 되었다.

L여사님과 매도인K씨의 남편, 친정엄마가 대리인으로 오셔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셨다.

친정어머니는 그럴 수 있다며 이해를 한다고 했다.

서로 이해를 하네 어쩌네 하며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잠시 후, 매도인 남편이 L여사님께 현관 문 여는 방법을 알려주러 나가셨다.

그 틈에 친정엄마 다가오셔서

“저어... 우리 딸이 주지 말랬는데... 10만원만 빼고 넣었어요."

주는 것만도 감사해야 하는지,

빼고 넣는 것을 기분 상해해야 하는지 내 맘 조율조차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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