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꽃이더라

by 서비휘

어떤 일이 있고, 자기도 모르게 그 모습이 떠올라 혼자 미소 지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거래가 흔치 않은 요즘,

매도자이자 매수인이 되신 K여사님의 환한 표정이 어젯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떠오르며

마음이 따뜻하고 흐뭇해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K여사님은 아파트형 빌라 6층에 살고 있다.

15년 넘게 그곳에 살면서 딸 둘 시집보내고 손녀도 키워낸 곳이다.

K여사님은 소일거리 중이라 항상 바쁘게 사신다.

집을 보여주러 가려 해도 오후 5시 30분이 넘어야 볼 수 있다.


손녀가 같이 살았던 흔적은 벽마다 그려진 자유화로 알 수 있다.

피카소도 놀랄 정도의 벽화를 빼곤

방 셋ㆍ거실 ㆍ 부엌 ㆍ발코니 등 집 안 구석구석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집이었다.

네이버 부동산에 사진 광고를 보고 가격도 괜찮고 깔끔한 집이니 많은 사람이 다녀갔었다.

북향이 매번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모델하우스도 아니고, 보여준 횟수에 반비례하듯 성사가 안 되었다.


날이 갈수록 주인 두 분의 얼굴이 덤덤함을 너머 체념한 듯

짜증이 삐져나올 듯한 얼굴을 볼 때면 미안함만 가득했다.

코로나로 어떤 상태 사람인지 모를 불안함을 안은 데다 바깥 볼 일 보는 중에도 막 달려오게 한 적이 많았으까.


장대비가 내리던 지난 금요일 오전, 60대 초반의 부부가 군자역 근처 네 군데를 돌다 공릉역까지 오셨다.

공릉역!

'공룡들의 발자국이나 왕들의 릉이 있었나? '

3년 전 공릉역으로 이사 올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

공덕동의 공과 태릉의 릉을 공평하게 따서 공릉동이 됐다는 얘긴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흔치 않은 이름과 더불어 동네가 참 따사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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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경춘 숲길까지 잘 다듬어져 젊고 아기자기함까지 더했다.

오다가다 늘 젊은 대학생들을 마주할 수 있는 싱그러운 동네다.


공릉동에 처음 와 보신다는 그 부부도 그렇게 느끼셨나 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냥 가셨던 그 집을 보자마자 맘에 들어하시는 거다.

계약금 일부가 바로 들어가고 지난 월요일 오후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 마주 앉았다.


테이블에 앉기 전, 오전 중 K여사님 가족은 15년 살던 집의 바로 맞은편 정남형 8층 아파트를 둘러보시곤

'우리가 찾던 집은 바로 이 집이야!'

그런 맘으로 계약금 일부를 걸어놓은 상태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계약이 연이어 이루어진 거다.


팔린 집을 사서 들어오는 그 부부와 K여사님 부부, 새로 사서 다른 집으로 가실 집주인도!

다들 알뜰히 모아 조금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가는 세 가정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중에서 K여사님과 남편분 대출과 관련된 서류를 마련하느라 주민센터를 여러 번 오가느라 바쁘셨다.


가끔 팩스 받을 일 있을 땐 우리 사무실을 들리셨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저런 분들이셨어? 무표정ㆍ무덤덤은 오데로 갔나, 오데가!!!'

뽀송뽀송 엠보싱처럼 되살아난 상기된 그 표정이

세상에서

젤 아름다운 사람꽃이 되어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오래 살아 정든 집이지만, 북향도 마다하지 않는 새 주인께 넘겨주고,

새 삶의 터전을 꼭 맘에 드는 곳으로 옮겨 갈 준비 과정을 바라보는 그 흐뭇함이란!!!

물건을 팔았다는 그 너머의 기쁨이 있었다.


K여사님, 지난봄에 양평에서 캔 쑥으로 떡을 했다며 그릇에 담아오셨다.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캤을 그 진한 쑥향이 입 안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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