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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Apr 17. 2022

 사랑 샘물소

어무이  품보다  넓고  깊은  곳이 어디 있을까.

올해는 울 시어머님인 김영순 여사님의 팔순이 되는 해이다.

음력 삼월 삼짇날이 생신이다 보니 해마다 진해 군항제인 벚꽃놀이는 자동코스이자 덤이었다.

가족 모임이 가능했기에 지난 2월부터 어머님을 위한 조촐한 행사 준비를 부산 사는 남동생네와 통화로 의논을 해 오고 있었다.


마을 경로당 어르신들께 떡이랑 과일과 기념 수건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계획들만  잔뜩 세우다

시기상  모이지 못하고  있는 요즘, 수건  드리는 것도 집집마다 찾아다닐 수 없는 노릇.

상황이 나아지면 어머님께서 회라도 주문해 모두 나눠 드신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사정상 일단 돈만 드리면 되는 걸로 자식들 입장에선 간단하고 편해져 버렸다.


가족끼리 근사한 곳에 가 어머님을 위한 케이크와 선물, 용돈을 드리기로 계획을 수정하고.

가기로 한 전날, 울 따닝이  목이 조금 따끔거린다 싶어 키트로 검사하니 두 줄, 병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하니 양성이라는 것이다. 때 아니게 코로나에 덜컥 걸려버린 것이다.

가족끼리 격리해야 했고, 특히 어머님께선 연세가 있으시니 우리들이 더 조심해서 한 동안 가지 않아야 했다.


따닝은 할머니 생신 날에 맞춰 20만 원이 줄줄 딸려 나오는 이벤트 케잌까지 주문해 놨단다.

예약 연기만 가능해서 동서네가 먼저 가서 축하파티하는 걸로. 서운하지만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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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번 주말 진해로 출발하는 날.

그이가 어머님 드릴 용돈을 소파 위에 올려놓은 걸 보니 불현듯 몇 년 전이 떠올랐다.

연세가 들면 누구나 조금씩 증상이 나타난다는 어머님께서도 두 눈을 항상 불편해하셨다.

눈앞이 흐릿하니  침침하고 수시로 눈물이 찔끔 나와 동네에 있는 안과에 가 봐도 그때뿐.

크게 달라지거나 낫지 않아 겨울 방학 중 서울에서 잘한다는 병원에 가 정밀검사를 받아보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 누구든 시간 되는 날에 맞춰 보호자로 동행하며 검사를 받고 치료를 했다. 다행히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 하여 치료받고 며칠 약 처방해주는 걸로 진단을 받았다. 병원을 오가야 할 땐 참을 만하던 아파트 생활이 수술 안 하는 게 낫다는 의사 선생님 얘길 들은 후, 어머님께선 닭장 속에 갇힌 닭들보다 더 갑갑하고 답답해하셨다.


양 사방이 빙 둘러 야산이 보이고 저멀리 진해 앞바다까지 보이는 탁 트인 주택에 사시는 어머님 댁.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구이며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아시는 분들 인사 나누기 바삐 사시다 며칠을 지내봐도 옆 집 사람 얼굴조차 보기 힘든 아파트 생활을 어찌하느냐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다시며 그날 오후 당장 진해로 가시겠다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셨다.

낼모레 손녀 학교 졸업식이니 며느리가 못 가는 대신 어머님이 가보시는 게 어떠겠냐고 해도

손녀 손자사랑의 각별함과는 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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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 중이어서 어머님을 터미널까지 배웅해 드렸다.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는 서울에선 한시도 살기 힘들다며 떠나시는 어머님을 보노라니 각자 터 잡고 지내는 곳이 편한 건 누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명절이나 생신 때 어머님 댁엘 갈라치면 볼일 끝나기 무섭게 주섬주섬 챙겨 돌아오듯 말이다.


버스가 서울을 어느 정도 벗어났겠다 싶을  즈음, 어머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야야, 며칠 동안 잘 있다가 간다. 니도 애들도 할미 병원 델꼬 다닌다고 수고 많았데이.

내가 이쁜이 방 침대 밑에 봉투 하나 두고 왔다. 내 맘이다, 그거 잘 쓰거래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핑 돌았다.

손에 쥐어 주면 분명히 받지 않고 던져주듯 되돌려 줄 것을 알기에 침대 밑에 넣어두고 버스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떠났을 때 전화로 알려주시는 어머님의 맘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가슴이 찌릿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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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건 어디 먼산 아지랑이뿐이겠는가.  훍이  키운  생명 먹고 사는 사람 맘도 때론 몽실 거려 길거나 짧은 감탄과 함께 눈가가 자주 촉촉해지는 감동으로 일렁거릴 때가 있는 것이다.


주말이라 차가 많이 막혀 오후 늦게 우리가 도착함과 동시에 어머님께서 분주해지셨다.

다음 날 갈 때 가져갈 걸 빠트리고 보내는 일 없이 하려고 숨은 보석 찾아오듯 하나둘씩 꺼내 놓으신다.

언제든 오면 챙겨주려고 꽁꽁 얼려 놓은 조기, 민어, 새우, 홍합, 대구... 바다 생물들과

시방  밭으로 갈텨?”

신기하고 즐거워하며  사진찍는  거  좋아하는 철없는 큰 며느리 위해 캐지 않고 아껴 놓으신 취나물, 부추, 머위, 쑥, 달래를 뜯는 거 보고 계시다 잘 못할 땐 도움의 손길 내미시는.


힘이 드실 텐데, 자식들 오면 챙겨줄 맘으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어머님의 텃밭에선 많은 생명들이 커가고 있었다. 지난 설에 어린싹이었던 마늘과 양파는 이미 수확할 때가 다 되어가고, 감자나 쑥갓, 상추도 한창 싹을 틔우는 중이었다.


봉투 하나 달랑 들고 간 우리에 비해 어머님께선 바리바리 싸매고 봉다리에 담아도 담아줄 걸 찾으시는  어머님인 김영순 여사님의 사랑으로

봄을 지나 무더울 여름, 가을, 겨울도 거뜬히 살아낼 힘이 듬뿍 딸려왔다.

넘치게 받은 사랑 지치고 힘들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면서 이 봄날부터 씩씩하게 살아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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