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고르기

1장. 나에게 없는 것

by Jamie

자신을 돌보는 건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해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을 관리하는 선한 행동이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적절히 돌보는 일은 수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ㅡ 파커J.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Let your life speak>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남편은 요즘 흰머리가 부쩍 많이 보이고 주름살이 늘어서 속상하다고 했다. 나이 마흔, 이제 미모가 경쟁력이 아니라 전만큼 외모에 관심이 안 간다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래, 당신 요즘 외모를 놓고 지내는 것 같더라. 염색도 안 하고. 전에는 옷도 예쁘게 입고 했던 거 같은데.

일과 가정생활을 하며 내 능력과 체력 안에서 일도 가정도 좋은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를 위해 가장 먼저 놓은 것이 나를 가꾸는 일인 것은 맞다. 맞는 말을 너무 꼭 맞게 하니 말에 맞은 곳이 좀 아팠다. 심심한 잽을 날렸는데 스트레이트를 맞은 듯했다. 내 에너지는 한정돼 있어. 그 에너지를 더 중요한 곳에 쓰기 위해서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는 거야.


길게 이어지는 속마음을 속에 남겨두었다. 머리카락 씻고 말리는 힘과 시간도 아까워서 꾸준히 짧게 유지했다. 옷도 활동하기에 편하고 유행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것 위주로 사 입었다. 배터리로 치면 최대 충전량이 60퍼센트쯤 되는 에너지를 가지고 24시간 안에 꼭 처리해야 할 일과 우선으로 마음 써야 할 것을 밀어 넣었다. 시간과 마음과 경제에 다른 틈을 내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알아주리라 기대했나 보다. 식탁에 놓은 것들을 치우고 침실로 들어갔다.

화장대 앞에 앉았다. 화장대의 역할을 해본 지 오래라 너저분했다. 핀셋 하나를 집어 들고 앉아 눈썹을 뽑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썹부터 한올 한올 뽑았다. 왼쪽의 정리 안 된 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도 뽑았다. 왼쪽을 뽑다 보니 오른쪽이 굵어 보인다. 다시 오른쪽에 손을 댔다.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면서 이러다 눈썹이 칼날만큼 얇아질 것 같은 위기감이 올 때까지 털 고르기를 계속했다. 아이가 다가와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눈썹을 뽑고 있다고 하니 왜 뽑느냐고 했다. 왜인지는 나도 알 수 없어 대답을 못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아이가 거실로 나갔다.

예쁘게 옷을 입던 시절의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하던 전 남친이 생각났다. 현 남편이 된 그에게 예의 그 여자를 돌려줄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몸에 편한 옷을 적당히 사 입을 것이고 외모도 적당히 가꾸며 늙어갈 것이다. 나이 듦에 대한 큰 그림은 남편의 펀치 한 방에 바뀌지 않는다. 결혼 후 30대를 지나며 남은 게 뭔가 하는 생각도 진부하다. 모두 내가 한 선택의 결과다. 하지만 놓고 지내는 것이 외모뿐이었을까 하는 생각에는 멈추게 됐다. 엄마 어디 있어? 남편이 아이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엄마가 저 안에 있다고 대답했다. 눈썹을 뽑는 중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문밖에 들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욕실에 들어갔다. 천천히 샤워하고 바디로션도 찾아서 발랐다. 머리도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아 정성껏 말렸다. 후닥닥 방을 나와 또 다른 할 일을 찾지 않았다. 그런 여유만으로도 기분이 가벼워졌다. 고양이는 깨어있는 시간의 반을 그루밍하며 보낸다. 그루밍을 하면서 털을 건강하게 유지할 뿐 아니라 그루밍이라는 행동 자체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질병 등의 이유로 그루밍을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심하면 병까지 얻게 된다. 고양이가 자신의 털을 돌보는 것처럼 나에게도 있는 자기돌봄의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을 눈썹을 뽑으며 맞이했다. 눈썹을 고르는 것은 당장 할 수 있고, 별로 표시가 안 나면서도 정성이 많이 드는 자기돌봄이었다. 털을 고르며 숨도 골랐다.


빵을 만들 때 효모를 이용하여 빵을 부풀게 한다. 효모는 빵 반죽 속의 단당류(특히 설탕)를 분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빵이 부푼다. 내 삶을 부풀게 하는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친구 재인이는 대학 친구이자 직장동료이자 아들 친구의 엄마다. 가까이에서 자주 나를 보는 재인이는 나에게 길티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쾌락을 느끼는 심리적 용어)가 없다고 했다. 설탕이든 쾌락이든 무슨 이름을 가진 것이든 타버리고 없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들도 처음엔 나를 부풀게 하는 무언가였을 텐데 언제 이것들이 부담과 압박, 허무를 조장하는 무의미로 변했을까.

최근 몇 년 공허감의 물살이 나를 스쳤다. 물살이 훑고 지날 때 나의 일상과 마음에 틈과 구멍을 만들었다. 그 물살이 빠르고 거세지고 있었다. 물살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막막한 마음만큼 자주 눈썹을 뽑고 있게 될 것 같았다. 본능엔 잘못이 없다. 눈썹이 풍성한 생명력으로 자라주기를, 깨어난 본능이 바른길을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버텨주기를 바랐다.


*<삶을 살지 않고 죽지 않으리라, 도나마르코바, 2024,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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