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목표

1장. 나에게 없는 것

by Jamie




털 뽑기 소(小)동이 있기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월 2일, 응급실에 가셨단 소식을 듣고 제주에 내려갔다. 19일간 가족들과 교대하며 병원에서 지냈다. 생의 마지막을 선고받고 누운 야윈 아버지의 몸에는 여러 장치에 연결된 복잡한 선들이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질문 하나가 집요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나는 잘살고 있나. 눈을 감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가 눈을 뜨면 답 없는 현실만 놓여있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버지를 보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찾아온 질문은 빡빡하게 채워져 있던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넓혀갔다. 질문이 반복될수록 다르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을 성공이라 여기며 최대한 흠집 나지 않을 선택을 해왔다. 질문과 열망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닿은 곳이 사랑이었다. 다른 것 말고 진짜 이거 맞냐고 되물어도 사랑이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지금 나는 사랑을 하고 있나. 사랑이 뭔가. 어떻게 하는 건가. 생전 처음 보는 말인 양 생소하고 나와는 상관없어 보였다. 처음 던진 질문에 처음 보는 열망과 목표가 생겼는데 그게 사랑이라니. 뜬구름만큼이나 잡기 힘들 것 같은 열망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아이가 1학년에 들어가면서 1년간 직장을 떠나 아이 입학 적응을 돕기로 했다. 3월이 되어 새로운 환경에 분주한 와중에도 마음은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멈춤 없이 가동되던 마음에 낯선 질문이 자리 잡았고 그걸 피해 다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는데 대면하는 방법도 모르는 상황,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은 때때로 찾아온다.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고, 낮잠을 푹 자면 괜찮아지는 무력감이 있다. 달콤하거나 나른한 것 말고 단단한 것이 필요했다. 눈썹만 뽑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지난 3년간 가장 윗줄에 고정되어 있는 문구를 확인했다.

-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운동을 하자.

3년 전, 퇴근 후 집으로 운전하던 중이었다.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려면 근무 시간 동안 1분의 낭비도 없이 집중적으로 일해야 했다. 유독 업무가 많은 해였다. 시간에 쫓겨 일을 쳐내느라 긴장하고 굳어있는 몸으로 차에 오르면 하루 중 처음으로 깊은숨을 한 번 쉬고 운전을 시작한다. 15분. 퇴근하는 차 안에서의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쌩쌩 달릴 수 있는 길을 우회전으로 벗어나면 어김없이 30개월 된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건널목이 있다. 좌회전을 해서 길목으로 들어가는 데 급한 마음과 움직임이 관성이 되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마침 길을 건너던 사람을 보지 못했고 가까스로 사람을 피해 멈췄다. 보행자가 화난 얼굴로 창문 너머의 나를 바라봤다. 창문을 내리고 놀란 보행자에게 사과했다.

퇴근길에 아이를 차에 태우는 순간부터 돌봄 시작이다. 작고 소중한 아이에게 녹초가 된 엄마의 감정을 전달할 수는 없다. 밝은 표정과 태도로 아이를 대하려고 하지만 한창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많이 필요한 아이의 욕구를 혼자서 모두 감당하기에 힘든 날이 많았다. 사고가 날 뻔한 그날은 유독 밝은 기운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귀신같이 느끼고 그럴수록 더욱 자신을 봐달라고 요구 적이 된다. 피곤한 아이는 차에서 쉽게 내리지 않으려고 했고, 식사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자신 옆에 있으라며 보챘다. 요리하고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면서 아이와 함께 잠들면 다시 아침이 되어 아이 등원부터 시작해서 똑같은 날들이 반복됐다. 다 해내고 싶은 마음과 소모되기만 한다는 느낌 사이에서 시달렸다. 일도 육아도 어느 것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대상포진이 왔다. 차에서 타고 내리는 것조차 힘겨웠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약 3년을 운동이 없는 상태로 불량한 식습관과 수면 부족과 함께 보냈다. 고갈 상태가 됐다. 반년간 일을 쉬기로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누워만 지냈다. 한 달여를 아이가 없는 동안은 눕고 먹고 쉬기만 했다. 느슨한 날들이었지만 마음까지 평화롭지는 않았다. 내 능력과 노력으로 풀 수 없는 숙제를 앞에 두고 혼자 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내 힘으로 내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해야 했다. 체력부터 올려야 했다. 내 체력이 소화해 낼 수 있으면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 뭘까. 가까운 곳에 댄스 교실을 찾아갔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는 수업이 젊은 분들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내가 만족하지 못할까 봐 우려를 비췄다. 그렇다면 나에게 딱 맞는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 10분 거리의 학원에 걸어서 수업에 갔다. 간단한 동작을 따라 하는데도 20분이 지나면 숨이 차고 힘이 달렸다. 벌써 지쳤어요? 큰일이다, 진짜. 강사님의 우려 섞인 놀림을 받으며 4개월을 운동했더니 50분의 수업을 끝까지 따라 할 수 있는 체력이 되었다. 작은 성취였지만 고무적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핸드폰을 열고 메모장에 굵고 큰 글씨로 적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운동을 하자.


3년 전 그때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운동에 간다. 새로 생긴 목표와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실천 계획이었다. 사랑과 운동이라. 내가 닿으려고 하는 곳에 닿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채, 헬스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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