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에게 없는 것
집 가까운 곳에 시설 좋은 헬스장이 생겼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헬스장에 상담하러 갔다. 대표와 상담을 마치고 언제부터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대기가 꽤 있었고 선생님 중에 시간이 비는 분이 생기면 순서대로 연락을 준다고 했다. 급한 것도 없었지만 마냥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동네를 벗어나 헬스장 공급이 많은 곳을 검색했다. 몇 군데를 보던 중 홍보문구 하나가 관심을 끌었다. 10년 이상 경력의 트레이너가 직접 가르칩니다. 나이나 경력이 꼭 실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끌리듯 그곳에 연락하고 상담 약속을 잡았다.
찾아간 곳은 번화가의 1층에 있는 작은 피티샵(개인강습 회원만 다니는 헬스장)이었다. 유리로 된 입구에 서자 상담을 하기로 한 분인 듯 문을 열고 맞이해주었다. 출입구 바로 옆에 놓인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사장님과 마주 앉아 운동의 목표와 몸의 상태 같은 것들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운동은 3년 전에 6개월 정도 배웠지만 워낙에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배운 거라 체력 올리는 데 집중한 운동이었다, 상체 운동이 아주 부족하고 고질적인 목, 어깨 통증도 좀 고치고 싶다, 8년 전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누운 적이 있다, 지금은 일상생활과 운동을 하는 데에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조심스럽다. 브리핑을 마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사장님이 운동은 교정이 아니라서 아픈 것을 고치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을 하다 보면 불편한 것들이 좋아질거라 했다. 과장되지 않고 솔직한 대답에 신뢰가 갔다. 카운터에는 강사들의 명함들이 꽂혀있었다. 명함 속 사진에는 방금 상담을 해준 사장님도 있었지만, 다른 분들도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 배우게 되는지 물었더니 사장님보다 젊어 보이는 다른 강사님을 추천했다. 사장님은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다른 수업이 있다고 했다. 상담해 주신 분과 운동하고 싶다, 주차장 없는 불편함 때문에 나도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다른 곳을 다시 알아봐야 하나 하던 중 사장님에게서 시간 조율이 됐다는 연락이 왔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조르듯이 얻어낸 결과였지만 막상 느낌만 믿고 선택한 공간과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걱정을 하면 뭐하나. 중요한 건 몸을 움직여 운동한다는 거다.
헬스를 처음 하게 된 것은 3년 전, 4개월의 댄스 강습을 그만두고 나서였다. 댄스를 하면서도 내 마음은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있는 헬스장에 자주 기웃거렸다. 댄스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헬스장이 있던 4층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틈에 헬스장 안을 구경했다. 평생 약하고 마른 몸을 달고 지내다가 언제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 채 약하고 부은 몸을 갖게 된 내가 짱짱한 근육을 가진 몸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몇 개월의 댄스로 최소한의 체력을 회복한 상태에서 못 올라갈 나무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일터로 돌아가기 한 달 전인 어느 날 헬스 개인 강습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아직 월급도 받기 전에 돈 쓸 계획부터 세우고 있었다. 당장 아이 돌봄에 대한 걱정도 들었지만, 남편과 조율해서 어떻게든 운동시간을 확보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댄스 선생님에게 이제 헬스 pt를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댄스 선생님은 아주 잠깐 네가 그걸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의심의 눈길을 보냈지만, 곧 선생님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를 담아 응원해 주었다.
일과 육아를 하며 새롭게 운동까지 배우려면 장소는 무조건 집과 가까운 곳이어야 했고, 선생님이야 누구든 지금의 나보다는 전문가일 테니 헬스장 선택에 고민은 없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을 만났다. 일주일에 두 번, 하루는 하체 다른 날은 상체 운동을 했다. 처음 보는 기구들 사용법과 기본적인 몸의 움직임부터 배워나갔다. 체력을 올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에 하체에 집중해서 단련했다. 이미 체력을 다 썼는데 헬스장 끝에서 끝까지 워킹런지를 왕복 몇 번 더 해야지 운동이 끝났다. 한겨울에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란 회의가 교차했다. 하나 더 걸어가는 런지 걸음에 울분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다. 현실과 정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에 대한 울분이었나.
상체 운동도 쉽지 않았다. 하체운동은 힘들어도 해내는 성취감이 있었는데, 상체는 하다가 괴로워서 하라는 대로 다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짧은 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했다. 몸을 써보니 내 몸이 어느 만큼 안 좋은지 가늠이 되는데 얼마나 해야 좋아지는지는 가늠도 안 됐다.
운동을 갈 때는 출산 전에 입었던 작은 운동복에 몸을 꾸역꾸역 끼워 넣었다. 부끄럽지만 강사에게 내 몸을 제대로 보여줘야 나에게 맞는 운동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통해 스스로 몸을 제대로 보고 싶기도 했다. 한두 달 운동하면 티브이에서 보던 몸짱들처럼 멋있어지는 건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몸은 여전히 작은 옷 밖으로 울퉁불퉁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활력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 후에 스트레스와 피로가 덜어지는 개운함이 있었다. 운동을 힘들게 하는데도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전보다 덜 힘에 부쳤다.
예정했던 6개월의 강습이 끝났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측정한 체성분표와 비교해 보니 몸무게가 그대로다. 일과 육아를 하며 식단까지 할 수는 없다고 강습 시작부터 선을 그었다. 대신 건강한 음식으로 잘 먹으려고 노력했다. 몸무게는 그대로였지만 근육량이 늘었고, 체지방이 줄었다. 이런 걸 상승 다이어트라고 한다고 했다. 옷 치수도 줄었다. 눈 뜨고 일어나면 몸무게가 늘어나는 시기를 겪으며 언제까지 (치수가 더 큰) 새 옷들을 사들여야 할까, 생각했었다. 비좁아지는 옷장이 싫어서 전에 입던 옷들을 다 버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놔둘걸. 세상사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몸도 상황도 금세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건강과 일상을 잃은 절박함, 운동하는 한 시간 오로지 내 몸만 생각한다는 위안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 거다.
혼란스러움을 안고 다시 헬스장을 찾는다. 건강과 일상만 되찾으면 삶은 위기 없이 굴러가는 줄 알았다. 나는 당장 그동안 공들여 쓴 공책을 모두 찢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에 스스로 위기 경보를 켜고 새로 생긴 목표에 닿을 길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