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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Mar 01. 2023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

우리 안의 목소리


 아무리 AI의 출현으로 사람이 설 곳이 줄어든다고 해도, 휴먼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회복지 영역의 직업은 기계나 로봇이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뉴스에서 독거노인 곁에서 재잘거리며 말하는 인형을 본 적 있다. 그 인형은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머니, 약 챙겨드실 시간이에요!”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인간의 감정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기도 하고,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식사 시간이나 약 챙길 시간을 알려준다. 그런 로봇을 귀엽고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는 TV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미소와 기술에 감탄하는 앵커의 브리핑을 들으며 나는 조금 슬픈 감정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감정적 교류가 점점 줄어들고, 인간이 로봇에 기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마지막 영역은 감정이나 심미안, 창조, 융합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역에 떠오르는 몇 가지 직업군이 있다. 예를 들어, 건축가나 예술가 같은? 나는 이 영역에 사회복지사 직업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복지사는 대상자의 욕구와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교류가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심미안은 대게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이라 하지만, 나는 인간의 잠재력이나 강점을 발견하는 능력 역시 심미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에게 풍기는 아름다움과 귀한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조와 융합은 우리에게 일상다반사였다. 더 나은 복지 서비스와 정책, 프로그램 기획 및 개발을 위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도 한다. 나는 단연코 이러한 우리의 업무 역량과 쓰임이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인간다움에서 점차 멀어지고 마치 로봇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는 일의 평가 기준이 행정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전통적인 평가방식인 서류. 종이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는 무수한 종이가 갈겨나가는 현장이다. 종이 낭비의 안타까움뿐만이 아니다. 서비스 제공자인 우리는 누구보다 이 일의 복합성, 역동성을 알기에 기존의 평가 방식에서 허탈감이 크게 밀려온다. 



물론, 나라의 세금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만큼이나 투명하게 평가해야 함은 맞다만, 정말 이 방식이 최선일까? 이러한 방식은 투명하다기 보단, 우리가 생경하게 해온 일들이 형식화되고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평가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기존의 형식은 또 다른 새로운 형식만 낳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상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인간다움을 상실한 로봇처럼 변하지 않을까?








 내 경험에 의하면, 기관평가를 받을 때마다 최악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종종 어느 사회복지 기관은 보조금을 악용해 적발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의 경험에 근거한 경우, 3년 치의 일이 1시간가량의 평가로 끝이날 때, 평가자와 평가를 받는 기관 종사자 모두 안도의 얼굴이 되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말이다. 하지만, 그 평가과정에 꼭 무언가 빠진 것만 같았다. 누굴 위한 평가인지 말이다. 



서류로 체크사항을 확인하는 평가방식에서 대상자의 목소리, 직접적으로 교류한 서비스 제공자의 목소리는 얼마큼 반영될지 의문이다. 그러기에 적절한 피드백 또한 당연히 기대할 수 없겠다. 이렇듯 평가방식의 질적인 측면보다 효율이 중요시된다면 결국, 사회복지사의 행정력만 키우게 되는 꼴이다. 행정력은 뒷받침되는 역량에 불과한데,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보다 앞서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을 서류상 꾸며낼 수 있는 일도 없을 리 만무하다. 언제든 속임수와 부정함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제야 나는 이 업계에 ‘전시행정’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인간이 AI보다 앞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우리가 하는 일의 역동성과 복합적 측면을 알고 휴먼서비스에 초점을 맞춰 기존의 관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폐쇄적이고 부패함의 길로 가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래의 사회복지 분야엔 어느 누가 자리할지. 그것이 AI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서두에서 AI에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당당히 말했던 것처럼 감히 우리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째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다.



우리 안의 생경한 목소리, 인간다움일 것이다. 이는 대상자와의 상호작용, 기관 또는 사회복지사 개인의 철학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꺼내고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우리는 인간이기에 좀 더 고민할 수 있고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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