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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Feb 22. 2023

보람이라는 덫

당연한 보람의 굴레


 종종 무기력과 권태가 찾아올 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일에서 눈에 보이는 또렷한 성과를 찾기란 힘들다. 내가 만나는 대상자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해도 그것을 성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만 아는 보람 정도겠다. 게다가 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나 조차도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일은 클라이언트에게 인내와 공을 들이며, 작은 변화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덜 지치며 보람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보람찬 일이라고 해도 타인의 인정과 또렷한 보상 없이는 어떤 직업이든 한계를 마주한다. 특히, 희생이 만연한 조직 안에서 지쳐갈 때마다 스스로 보람을 찾고 스스로 독려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 나에게 보상 없는 보람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왠지 모르게 지쳐갔고, 애당초 보람 있는 일이 지속 가능하긴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복지사가 이런 말을 한다면 속물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보람만으론 일을 지속할 순 없다. 우리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보상은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동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누누이 외치고 간혹 뉴스에 비치는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 급여인상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보상은 뭘까? 나의 경우, 보람과 보상의 경계가 모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의 과정 속에서 더욱 보상을 붙잡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내가 고갈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붙잡은 유일한 나의 보상은 대상자의 패드백이었다.


     






 퇴사를 한 지금도 내가 만난 대상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은 무해하고 반짝였다. 때로 서툴거나 뜬금없기도 했다.      



너무 바빴던 날에는 숨길새도 없이 내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마다 “선생님,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라고 내 안부를 먼저 물어봐 준 대상자가 떠오른다. 바쁘게 무언가 열중하고 있을 때, 수행평가라며 종일 기타를 들이밀며 내게 이상한 연주를 해주던 대상자도 떠오른다. 손 끝에서 삐그덕 거리며 나오는 괴상한 한 음 한 음에 바쁜 일을 잊고 헛웃음을 짓다 이내 빵 터지기도 했다. 어느 땐 속임수가 뻔히 보이는 낡은 카드 마술을 보여주고는 내가 속아주면 즐거워했다. 나는 금세 지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듯 헛웃음을 짓더니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번지었다. 그들이 내게 건넨 말 한마디, 작은 행동의 일부를 보상으로 붙잡았기에 나는 다시 힘을 얻었다.

     







어느 날은 출장을 다녀와 쉬고 있던 찰나, 졸업한 대상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와인 따개 있어요?”     


생각지 못한 첫마디에 헛웃음이 나왔다. 



같이 있던 다른 졸업생도 줄줄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시 진로 고민이 많았던 그 아이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그 당시 같이 지냈던 친구들과 술 한잔 하려고 모이게 되었는데, 생각나서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참 신기하게도 그들은 내가 지칠 법하면 불쑥 다가왔다. 서툴지만 투명하고 무해한 그들의 말과 행동은 나를 일으키는 보상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들에게 줘야 할 게 더 많은 사람이어야 하고 우리 안에 보상 체계는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린 당연한 보람의 굴레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까지 보람만으로 충족될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 안에 보상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따라오는 단어가 있다. 희생과 사명감. 세대는 바뀌어가고 그 단어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사명감은 훈장과도 같으니 알아서 치유하고 알아서 보람을 찾으라는 분위기는 우리가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성장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부터 우리가 하는 일의 귀함을 몰라주니 말이다.



결국, 보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보상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와 동료에게 인색하지 않고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우리 함께 고민해 보면 더 좋은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 성찰하며 따스함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그 방향은 어째 낯설고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만났던 대상자들의 무해함과 투명함. 그리고 반짝이는 마음들을 빌려오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하는 일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전부가 아니라, 우리의 반짝이는 스토리로 인정받고 회자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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