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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Jan 11. 2023

뭔가 잘못됐다.

알아차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눈물이었다.



나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창고로 뛰어가 울고 있었다. 부당함을 겪거나 억울한 상황도 아닌, 동료의 작은 실수를 알아차린 순간부터였다. 갑작스러운 눈물이었다. 내가 눈물을 흘린 건 전적으로 동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전공을 사회복지로 전향하고 첫 직장인 지역아동센터에 취업했을 때, 일로서 배우고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를 학점은행제로 이수했다. 남들과 같은 사회복지 자격증이 있어도 4년제 사회복지 전공자와는 다를 것이라 짐작하며 사회복지사 2급을 취득 후, 1급에 도전할 정도로 그 분야에 열심히였다. 그럼에도 현장 경험이 전무한 나는 그 분야에 여전히 배울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과 달리 작은 것이라도 배우려 했다. 그런 나에게도 열정이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일찍 나와 프로그램 준비를 했고 퇴근 후엔 다음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공부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정을 쏟았던 이유는 내가 만난 아동 청소년과의 피드백이 보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투명한 눈빛을 보면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그 당시 일로서 나의 삶은 꽤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새롭게 전공을 전향한 나에게 친구들은 물었다. 



"사회복지 어때?"


"나한테 잘 맞는 것 같아. 재밌어."



'내가 그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고?' 지금의 권태로움을 생각하면 경악할 일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청소년 대상자와 함께한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갔다. 대상자가 커가는 모습은 변화무쌍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특히, 유난히 나와 갈등이 많았던 대상자가 훌쩍 커버려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든든함이 있었다. 순간순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의 느리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보면서 힘들 때마다 원동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어느 날 뭔가 잘못됐다는 몸과 마음의 신호를 알아챈 것이다. 그동안 번번이 무시해 왔던 나의 마음을 뾰족하게 들여다봐야 했다. 



내가 지역아동센터에서 했던 일은 대상자를 위한 일뿐만 아니라 행정업무, 후원 관리, 외부 사업 등 다양한 업무 영역이 수반되었다. 사회복지사라면 멀티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당연스럽게 들어와 미련하게도 그 부분에 크게 문제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일했다. 약 5년 동안 나는 대상자를 위한 일 보다 일명 '처리해야 할 일'로 인해 점차 지쳐갔던 것 같다. 수반되는 행정업무나 펼쳐지는 사업들이 정말 대상자를 위한 일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우리가 하는 일의 과정보다 좋게 포장하면 좋은 일이 되는 것에 집중하는 건 아닐까 라는 의문도 생겨났다. 



사회초년생의 나는 열정만 가득하고 영악하게 일하지 못했다.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군말 없이 했다. 모든 일이 좋은 건 아닐 텐데,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는 내가 하는 일에 의구심을 갖지 못하게 했고 내가 속한 조직과 함께 나란 사람도 도태되는 듯했다. 그렇게 처리할 일에 끌려다니며 나 역시 어디론가 휩쓸려가는 인생과 같이 느껴졌다. 초심의 열정과 배우고자 하는 겸손이 지나친 것인지, 어느새 나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고 사회복지사라는 사회적 가면은 점점 두터워져 갔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상사는 나르시시스트였던 것 같다. 근무태만에 손하나 까딱 안 할 정도로 일은 안 하면서 늘 자신의 아이디어에 칭찬받길 바라고 떠받들어 주길 바랬다. 동료가 힘든 기색을 보이면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더 냉소적인 말로 상처를 주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감정과 대접받길 바라는 욕구, 지나친 성과지향주의로 지쳐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의구심은커녕 나를 돌보지 못하고 이상한 반동형성이 작동해 참고 버텼다. 이 모든 힘든 것들은 '지나갈 거야.' '분명 배우게 될 거야.'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눈물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주는 마지막 경고 같았다.



그날 나는 말로만 듣던 번아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해오던 일을 하는 건 문제 될 게 없었다. 오히려 겉으론 안정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다. 무기력과 권태로 잠식된 내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퇴사를 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몸과 마음의 신호는 일단 가던 길을 멈춰야만 했다. 그다음은 모르겠다. 그저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딘가 기울어진 나의 삶이 갑자기 다르게 살고 싶다고 뚝딱 그렇게 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내 남은 삶을 위해 깊이 고민해 볼 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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