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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씨 Feb 08. 2023

우린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자립준비청년과 어른아이


 매년 약 250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사회로 나와 홀로서기하고 있다.



 그냥 청년도 아니고 앞에 붙은 ‘자립준비’는 영 낯설다. 보호종료아동에서 자립준비청년으로 명칭이 바뀐 건 2021년 무렵이다. 이들은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이나 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정위탁에서 자라 만 18세가 돼 홀로 자립하는 청년을 말한다. 원래 만 18세가 되면 더 이상 시설에서 보호받을 수 없으나, 현재는 제도 개선으로 그들의 의사에 따라 만 24세까지 보호연장을 받을 수 있다. 가시적으로 그들을 위한 제도는 나날이 개선되는 듯하나 허점도 많다.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인력부족, 자원연계 및 네트워크 부족, 생애주기에 따라 일상적으로 자립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 등.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체감하는 자립준비청년의 복지 정책과 서비스는 순탄치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그들이 성인이 된 후에야 '자립'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 건 급한 불 끄기나 다름없어 보였다. 숫자로 보이는 정책 말고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것만 같다.





      



 내가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것은 2020년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다. 그녀는 만 18세가 되어 아무런 준비 없이 시설에 나와야 했다. 자립 후에는 사소한 것조차 물어볼 어른이 없어 쉽게 사기를 당했고 이런 일을 겪었다고 주위에 말하면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를 당하냐...’는 식의 비난과 무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만 18세의 자립준비청년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인터뷰 당시의 그녀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어릴 적 꿈이었던 무용수가 되기 위해 학업과 생계를 어렵게 이어가고 있었다. 홀로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은 나쁜 생각에 빠지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방송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용기 있게 꺼낸 그녀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대변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았다. 자립준비청년을 평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연히 예능프로그램을 돌려보다가 알게 된 그녀의 이야기는 부끄럽게도 내가 처음 자립준비청년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그녀가 세상에 홀로 마주할 자잘한 일부터 막중한 일까지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웠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매일 용기를 내야 하는 그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때마침, 나는 새로 이직한 곳에서 자립준비청년의 사례관리 업무를 맡았다. 지금은 퇴사를 했기에 그들과 만난 건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그들의 삶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기에 내가 그들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겠다. 하지만 내가 그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들,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은 기록해야만 했다.








 한 사람의 삶과 살아온 가치관을 이해하며 줄다리기하듯 가까이 또는 멀찍이 관조하며 그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충분히 자립을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청년이 스스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을 나에게 요청하거나 생계비를 당당히 요구할 땐 얄궂게 느껴지기도 했고 정말 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을 겪나 싶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할 땐 위로보다 분노와 한숨을 먼저 삼켜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에게 어른흉내만 냈을 뿐 담대한 어른이 되어주지 못했다.



곧이어 나의 멘털이 바사삭 부서지는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한 통의 메시지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선생님. 죽고 싶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인수인계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한 한 청년의 죽고 싶다는 메시지에 몸이 저릿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선임 사회복지사가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년은 지속적으로 불면증과 불안, 우울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죽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바로 연락해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나는 두 마디의 메시지에 ‘도와주세요.’라는 말에 희망을 걸어보며 긴장된 마음으로 청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울어서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정황은 이랬다. 일전에 직장 내부 사정으로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한 데다 주식투자 손실로 생계가 급격히 어려워져 인터넷 대출 사이트의 글을 보고 손쉽게 대출을 받은 것이다. 그 후 대부업자가 그녀가 있는 직장으로 찾아와 원금과 무리한 이자를 요구하며 협박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녀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후였다.



전화통화가 끝나고 그녀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만났다. 경제적 어려움을 당장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 자문을 통해 당장 해볼 수 있는 방법과 위로를 전했다. 혹여나 그날 밤 나쁜 생각을 할까 염려되어 하루 밤을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서 잘 수 있다며 축 쳐진 몸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그 일이 일단락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맥없이 멍해졌다. 그러다가도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했던 밤이었다.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매일 비슷한 나의 안부 연락이었다. 어느새 내 걱정 어린 연락이 귀찮은지 읽고 답장을 안 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종종 생뚱맞은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곤 했다. 대충 보낸 답장처럼 보여도 ‘오늘 하루도 힘들지만 살아냈어요.’라는 뜻으로 느껴져 내심 안도했다.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처음 봤을 때 보다 씩씩해 보였다. “선생님, 그때 봤던 모습 저 아니에요.”라며 퇴근 후에 쿠팡 아르바이트하면서 조금씩 빚을 갚고 있다고 했다. 청년저축상품에 가입해 소액이지만 꾸준히 저축하려는 나름의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목돈 생기면 선생님 소고기 사드릴게요.”라며 전보다 한층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또 쉽게 웃고 말았다. "그래. 꼭 얻어먹을 거야!"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을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뭘 믿고 낯선 나에게 자신의 아픔을 내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자립준비전담요원이라는 새로운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전하는 말을 제삼자 그리고 감시자로서 들어줘야 했다. 그리고 믿어줘야 했다.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자다가 같은 시설 언니에게 성추행을 당했어요. 그 일을 시설 선생님께도 알렸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시험을 못 볼 때마다 때렸어요. 지금도 시험 기간만 오면 불안해요.” 과거의 아픔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다. 그들은 어른으로부터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차별, 폭력, 방임의 기억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성인이 된 후, 그 기억은 큰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아 선명했다 흐려지길 반복하곤 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고 나면 한 발짝 나아가는 것조차 힘들다. 마치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굴레처럼 말이다. 그럼 그걸 바라보는 이 업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사람 쉽게 안 변해."라고. 그 말이 우리를 덜 지치게 하는 일종의 푸념일 수도 있겠지만, 부끄럽게도 나 역시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그들의 삶의 무게에 같이 무력해지며 “맞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라고 말한 적 있다. 그 말을 내뱉고 나면 지친 내 마음이 가벼워지기는커녕 좌절감 같은 것이 전해졌다. 내가 점점 지쳐갈 땐 사회적인 내 모습과 진짜 내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사이의 거리가 극명해질수록 내 가면은 더 두터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그들과 함께 무력한 시간을 지날 때가 있다. 그럼 내가 만난 청년들은 빠른 눈치로 자신보다 내 안위를 먼저 걱정해 주었다. “선생님 힘들죠? 괜찮아요?” “저도 그렇지만 선생님도 궂은일 하시잖아요. 고생이 많아요.”라며 무뚝뚝하면서도 따스함이 묻어난 말을 건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퇴사를 전할 땐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자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어른스러움도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우리의 일을 응원해 주는 이는 바로 내가 만난 대상자들이었다.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이슈로 떠들썩하다. 자립준비청년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 개선정책과 제도, 어느 기업이 후원했다느니 그리고 마음을 짓누르는 자살 소식까지. 자살 소식을 처음 접한 날, 나는 여러 생각이 밀려왔다. 우리가 하는 일의 무게. 그들이 계속해서 말고 있지만 끝내하지 못한 남겨진 말은 무엇일지. 남아있는 그 주변 사람의 얼굴도 생각났다. 나는 자주 연락이 닿지 않던 청년들에게 안부 연락을 했다. 이 소식을 알게 될 누군가의 마음도 걱정되었다. 마음의 전염성은 그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시간은 일분일초 무겁게만 지나갔다.



그때, 업무용 단체톡방에 보지 말아야 할 말을 보고 말았다. 무심히 던져진 기사와 함께. 


“그 지역은 정착금도 많이 주는데, 왜 자살했데?”라는 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할 말이 아니었다.








 한 청년의 자살 소식 이후 TV, 언론사, 기업 후원처 그리고 개인 후원자까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불이 나도록 전화가 왔다. '자립준비청년의 어려움을 더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싶다.' '1:1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기관과 협력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등. 그분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동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돕고자 하였다.     



선한 마음을 정말 순수한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기준 삼아 젤 수는 없지만, 잘 몰랐던 세상의 또 다른 이면에 관심을 쏟고 행동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의 시선은 그 사이 어디쯤일까. 어떠한 의도와 방식이든 한순간에 사라질 들끓는 관심과 동정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내가 만났던 청년들을 돌이켜 보면, 남보다 조금 빨리 세상에 나와 매 순간 작은 것에 용기를 내었던 이들이다. 그들의 용기는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우여곡절은 있지만, 진짜 오롯이 혼자였을 때 온 힘을 끌어내야 하는 생의 의지와 용기는 그들만이 가진 것이다. 그 순간들이 모여 보이지 않게 그들을 단단하게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생앞에 함께 좌절하고 희망하기를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살겠다는 마음을 충분히 보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30대 초 언저리인 나는 여전히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안정치 못한 말만 어른인 어른아이이다. 그러나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을 알게 되면서 어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내 안위와 심리적 안정감, 사회적 또는 경제적 성공을 가진 겉보기에 뛰어난 어른보다 그저 '좋은 어른'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면 될 것 같다. '좋은 어른'이라는 말이 참 두리뭉실한데, 각자가 정의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난 아직 가진 것이 많지 않아 내가 가진 따스함의 일부를 나눠주는 어른을 좋은 어른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은 지금 당장 떠오르는 누군가에게 내어 줄 수 있는 것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어쩌면 당신도 좋은 어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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