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발산하는 성향과 역량은 부모의 노력이 아닌 타고난 기질이다(2)
어딜 가나 한 학급에는 분명히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도 존재하는 법. 그렇게 우리 반에도 대표적으로 두 명의 학생이 있었다.
한 학생은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는 학생이었다.(물론 아버지의 사랑도 많이 받았으리라. 하지만 보통 어머님과의 통화를 많이 한 탓에, 어머님에 대한 기억만 있다.) 이 학생을 표현하라면 딱 장난이 많은 철부지 어린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문제는 그 학생이 덩치가 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조심도 하고 열심히 하려는 모습도 내비쳐 줬던 짓궂은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3월이 지나고부터는 지속 적으로 여러 아이들로부터 많은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교무실 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수시로 학생들은 번갈아 가면서 와서는 나에게 이 남학생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했다. 문제의 핵심은 이 학생이 어린 마음에 자기가 싫어하는 학생에게 좀 지나치게 표현을 한다거나, 학생이 치는 장난이 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 좀 지나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덩치가 크다 보니 키가 작은 아이들은 그러한 장난이 위협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 학생에 대한 누적된 학생들의 불만 사항에 대해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님과 통화하면서 학생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하였다. 처음 통화를 통해 어머님은 참 많이 미안해하셨고, 집에서 학생 지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이 학생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빈도는 줄었을지 모르겠으나 아이의 행동은 여전하였고, 심지어는 선을 넘는 경우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나는 이때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하였다. 고등학교 교사로만 재직하던 나의 10년간의 교직 생활 중 내가 늘 하던 생각은 학교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분명 중학교 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실제로 그 당시 학부모와 통화를 해보면 아이가 중학교 시절 많은 탈선이 있었고 그로 인한 고충으로 부모가 아이 문제에 손을 놓으면서 포기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물론 그중에는 꾸준히 힘든 상황을 버텨가면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려는 부모도 제법 있긴 했다. 아무튼 이러한 생각을 해오던 나로서는 정작 중학교 현장을 경험하고 있는 나의 상황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중학교에서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보면서 말이다. 나는 순간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중학교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이 가정에서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서 이렇다는 말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면서. 어떻게 보면 고등학생을 대하며 생각했던 사고를 그대로 연장시켜 더 이전의 시기로 내린 것이었다. 나도 너무 궁금했고, 과연 어째서 그런지 어머니와 진지하게 통화를 하였다. 어머님은 분명 그 학생이 초등학교 시절에도 또래보다 큰 덩치 때문에 간혹 오해를 사기는 하였지만 그때마다 학생에 대한 지도를 부단히 하였고, 학생은 가정에서 큰 문제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무사히 지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문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중학교 시절이 당혹스럽기만 하다는 어머니의 말씀과 더불어 더욱 아이를 사랑으로 지도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저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짠하기만 하였다. 아마 이때부터인가? 학교에서 발생하는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가정에서의 교육이 잘 못 되어서 그렇다고 막연히 가정환경 탓만 하던 나의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관점은 낙인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분명 아이의 삐뚤어진 행동은 가정의 문제일 테고,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가정의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쭉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반복될 것이라고. 그렇게 낙인이론을 들어가면서 아이를 낙인 시키고 한 가정의 부모조차 낙인 시켜 버리려 하는 아주 무서운 생각. 바로 그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그 학생은 일 년 내내 자잘한 여러 사항 때문에 나와 많은 상담도 했고, 주의를 듣기도 했고, 잔소리 속에서 깊은 한숨을 쉬면서 자신도 답답함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큰일 없이 무사히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부디 2학년에서는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 잘 보내주었다.
또 다른 한 학생은 이미 인근 초등학교 시절부터 짓궂은 태도와 더불어 말썽쟁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학생이었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또래의 순진한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의 교우관계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떠한 무리에 속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학교 밖 친구들과 꽤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생은 학교를 단지 의무감으로 나오기만 하였고, 하교 후 생활에 대해서만 기대감을 가지면서 학교 생활을 버티기만 했다. 보통 이러한 성향을 지닌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는 무기력감에 빠져있지만, 학교 정문을 벗어나는 순간부터는 내재된 성향을 주체 못 하고 마음껏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많은 탈선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학생은 1년간 굵직한 많은 사건들을 일으켰고, 교내에서 징계까지 받게 되었다. 분명 아이의 문제는 아이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나의 교직에서의 철칙(?)으로 인해 학부모님과 전화 상담도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학부모님과의 면담의 시간도 가지면서 가정 분위기와 아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학생은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학생은 부모님과 형들로부터 늦둥이 아들과 동생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은 아주 행복한 학생이었다. 내가 만나본 아버지는 항상 도를 넘지 않으시고 예의가 바르시면서 아이에 대하여 늘 진지하게 임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어머니 또한, 이 학생의 주체 못 하는 행동들에 대해 늘 힘들어했지만 고민하고 어르고 달래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그렇게 올바른 부모님의 관심과 이해 속에서 컸지만 학생은 날이 갈수록 엇나가기 시작했다. 음주, 외박, 흡연, 가출. 그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탈선이란 탈선은 다 하였다. 1년 동안 부모와 협력을 하면서 아이를 잘 이끌고 밀고 나가려 노력하였지만 늘 아슬아슬하게 터지지 않은 폭탄을 안고 가듯 그런 심정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고, 학생의 태도는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담임을 하는 동안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이 학생과도 이별하게 되었다. 이후의 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부디 스스로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길 나는 바라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참 소중한 존재이고 우리의 미래인데 좋은 미래를 더 잘 그려나갔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람은 모두에게 다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사히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번 더 마음을 써본다.
나의 첫 중학교에서의 생활은 단 1년 만의 생활로 끝이 났다. 아니 사실 내가 끝을 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라밸이 좋은 중학교 생활이 나름 무르익어 적응이 되어 가는 동안 가슴 한편에서는 야간에 남아 학생을 지도하고, 야간자율학습 감독도 하고, 조금 더 성장한 고등학생들과의 티키타카를 했던 시절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경산의 고등학교 중에서 이동이 가능한 수학 교사 자리를 알아봤고, 그중에 현재 내가 재직하고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자리가 비어있음을 알고 초빙교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의 시간을 더 두고 중학교 교사로 있어 볼 걸 그랬나 후회도 되긴 하다. 하지만 이제 교직으로서 반환점을 돌기 직전인 이 시기에 아직도 남은 기간이 지나온 기간보다 더 긴 만큼 언젠가는 기회가 있겠지 하고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이 중학교 교사 경험이 내 인생에서 한 가지 생각에 대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바로 “아이들이 발산하는 성향과 역량은 부모의 노력이 아닌 타고난 기질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한 가지가 누구나 태어날 때 다들 자기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듯이, 이러한 말씀을 조금만 더 확장을 해보자면 누구나 자신이 걸어갈 길에 대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다. 즉,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릴 땐 누구나 누워 있으면서 울기만 하니 잘 모르겠으나 점점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자아를 실현시키고 발현시킨다. 그 속에는 분명 내재되어 있던 아이의 기질이 발산된다고 보인다. 그 기질에 따라 아이의 성향과 역량이 주어진다고 나는 본다. 물론 후천적인 부분이라 볼 수 있는 부모님의 사랑과 가정환경, 주위의 인간관계도 분명 중요한 역할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내재된 기질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다고 본다.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님들은 늘 자신의 자녀가 자신이 그려나가는 방향의 성인으로 자라길 바라며 다양한 볼거리와 학습 거리, 그리고 학원 및 과외 학습을 제공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소위 성공적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했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부를 얻거나 명예를 얻었다. 그러면서 성공적으로 길러냈을 때의 부모를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따라 하기만 바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부모의 욕심과 불안을 먹고살기 위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다양한 사교육에 자신들의 노동의 대가인 급여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고만 보인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기질을 잘 살피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 천천히 사회를 알아가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지 하고 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기질이 너무 강렬하여 간혹 사고도 치고 할 수도 있다. 때론 청소년 시절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은 힘들겠지만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결국 철이 드는 어느 시기에 아이가 제자리에서 자신을 솔직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본다. 그리고 아마 올바른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그 힘든 시간이 조금은 덜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아이의 교육에는 부모와 교사의 지속적인 올바른 방향으로의 안내와 관심, 사랑과 기다림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조금 더 한 가정의 학부모와 학생을 이해하고자 나는 중학교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많은 생각 끝에 나의 생각을 이렇게 정립해 보았다.
나는 또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많은 혼란을 겪으면서 새로움을 배우고 떠나게 되었다. 교육을 하면서 나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처음 교사가 되려고 했을 때의 나의 교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는 시점이었다. 많은 생각과 물음을 던지면서 나는 홀연히 중학교를 퇴장하였다.
그 당시에 중학교 담임을 하면서 느꼈던 고충(?)에 대해 소소하게 써 본 시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를 마지막으로 나의 1년 간의 중학교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겠다.
지각생
처음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건강이 안 좋은가? 그렇게 생각했다
집이 많이 먼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잦아지는 너의 행동에
나는 그만 지쳐간다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일 년이 다 지나가지만 변함없는 너의 모습
뒷조사를 해봤다
집은 학교서 1분 거리...
폭발했다
그 뒤로 바뀐 너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전 모습이 가끔 그리웠다
내가 길들여졌나 보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나 보다
담임쌤
아침부터 콜센터
늦는다고 전화오고
안온다고 전화한다
오전에는 사무실
많디 많은 통신문
처리하기 바쁘다
오후에는 민원창구
아프다고 찾아오고
힘들다고 찾아온다
수시로 경찰서
도망간놈 쫓아가고
작은사건 해결한다
퇴근해선 상담원
학부모와 전화상담
학생들과 카톡한다
도대체 수업준비
어느 시간에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