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시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 >
한 해의 중학교 경험을 하고 난 후, 다시 찾은 고등학교에 대한 기대감에 조금은 설레었다. 사실 내가 가게 될 새로운 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였다. 거기에서 오는 기대감도 제법 컸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기다릴 테고 거기에서의 적응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였다. 앞으로 5년간을 생활하게 될 나의 새로운 학교, 그 첫 만남은 아마도 2월 전 초빙 인사가 발표 난 후인 것으로 기억난다. 몇몇 초빙교사로 확정이 된 선생님들을 미리 불러 교과별 만남도 가지고, 관리자인 교장, 교감 선생님과의 만남의 시간도 가진 것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서면서 느낀 전체적인 느낌은 학교 부지가 제법 넓었다는 것, 개교한 지 십수 년에 접어들면서 조금은 건물이 노후화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일반적인 학교에서 보지 못하는 여러 동의 구조로 구성이 된 것이 새로웠다는 것이었다. 학교 건물이야 늘 다 비슷하긴 하지만 이 학교만이 가진 뭔가 모를 건물 구조에서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는 느낌보다는 딱딱함과 차가움이 나를 맞이한 것 같다. 아마 본능적으로 느낀 이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더욱 확실해졌다. 그 기운은 단지 건물이 주는 느낌보다 내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더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 학교 학생들의 고단함이 묻어 나와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나와 특목고는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마음속으로 교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월에 접어들면서 정식적으로 신구 선생님들이 모두 모이는 교직원 회의 자리에서 업무분장이 발표되었다. 나는 1학년 3반 담임을 하게 되었고, 신입생과 신입 교사가 함께 그 반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참 많이 걱정을 했다. 특목고는 일반적인 고등학교의 시스템과는 분명 다른데, 아무것도 모르는 교사와 학생의 만남이라니. 그래도 기존에 계신 선생님들과 함께 학년을 할 것이니 많이 의지하면서도 앞으로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전체 교직원 회의 이후, 학년 회의, 교과별 회의를 차례로 거쳤다. 학년 회의에서 처음 본 1학년 부장 선생님은 말수가 많지 않은 이 학교의 5년 차 수학 선생님이었다. 다행인 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 학교에서 경험이 많다는 것. 그리고 학년 기획을 맡으신 다른 선생님은 이 학교의 5년 차 과학 선생님이었다. 차분하신 말투와 편안한 인상을 가지신 여자 선생님이었다. 한 학년에 3개 반으로 구성된 이 학교에서 담임 3명이라는 학년 구성은 경험이 많으신 선생님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전반적으로 흡족하였다. 짧은 인사와 함께 추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약속 후 교과별 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학교는 공식적인 수학과 부장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을 필두로 우리는 서로 통성명도 하고 인사도 나누었다. 이때, 참 반가웠던 것은 대학 후배가 여기서 재직 중이어서 대학 시절 이후 다시 만났다는 것과 구미 인문계고에서 함께 근무했던 E 선생님과 재회를 한 것이다. 교과별 회의에서는 궁금함 투성이에 많은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뭔가 모를 오묘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만 살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너스레를 잘 떨면서 그 사람과의 공통분모를 찾아보며 어떻게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관점으로 서로 잘 지내고자 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이다. 이러한 성격 탓인지 나는 몇 번의 대화와 만남만 가져도 상대에게 성급하게 다가가는 편이다.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어도. 예를 들면 장난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서로를 조금 알게 된 어느 시점부터는 조금은 짓궂은 농담과 장난을 하는 것이다. 그 정도는 이해하면서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 하면서. 하지만 나의 이러한 행동이 간혹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젠 그런 행동도 조심해야 할 텐데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너무 푼수처럼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참 스스럼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겠어? 나의 성격이 이런 것을? 그래도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가식을 떠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그래도 조금씩 익어가는 나이에 맞게 나는 변화하면서 성장하고자 스스로 다짐을 해본다. 아무튼 학기를 시작하는 첫 만남에서 보통은 인간적인 대화도 나누고 서먹함 속에서도 편안한 분위기인데 반해, 여기서는 뭔가 모를 선생님들의 딱딱함 속에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색하고 오묘한 수학과의 모임을 마치고, 대학 후배와 학교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E 선생님과 서로 떨어진 6년간의 대화도 나누었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학교에서의 준비 과정은 모두 끝이 나고 3월이 시작되면서 1학년 담임으로 서서히 이 학교에 젖어들기 시작하였다.
3월 개학 첫날에 이 학교 학생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내 평생 교직 생활에서 한번 경험하기 힘든 특목고라는 곳이 궁금하였고, 그러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기대감에 꽤 흥미를 가졌던 듯하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은 여느 보통의 고등학교 학생들과는 달리 차분하였다. 물론 3월 첫날이다 보니 서로 탐색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인가 느껴지는 분위기가 이전 학교에서의 3월 첫날과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과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 한 학반의 담임으로서의 학급 운영 방침에 대해 안내하며 함께 잘해보자고 다짐하였다. 늘 그렇듯 신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매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남아 학생들과 개인 상담을 실시하면서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짐작은 하였으나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대다수의 학생들이 나름 출신 중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이었고, 상위대학으로의 진학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이 학교의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상위대학으로의 진학을 위해 이 작은 학교생활 속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스스로가 다짐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 학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기숙사 생활 2주째가 되는 금요일 정규수업이 마치면 그제야 귀가하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학교로 복귀한다. 특히, 학생들이 가진 핸드폰 및 전자기기는 학교로 돌아오는 시점에 학년 교무실에 비치된 핸드폰 전용 사물함 속에 들어가고, 학생들은 2주간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가끔 꼭 필요한 통화는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수신자 부담 전화기를 사용하곤 하였다. 어른도 쉽사리 하지 못하는 휴대전화와의 이별 속에서 학생들은 이러한 생활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수학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준은 기존의 학교와는 달리 질적으로 매우 높았다. 교사가 소화하는 전체적인 수업시수는 적지만 학생들과 함께 할 교재의 수준이 높아 교재연구 시간이 평소의 몇 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진지한 교재연구의 시간을 거치는 시간이 나에게는 나름 행복이었다. 그렇게 나와 아이들은 쉽지 않은 학교생활에 적응 중이었다.
교사의 구성은 보통의 학교처럼 다양한 연령층이 포진되어 있지만 특히 젊은 선생님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내가 지나온 학교를 돌이켜보니 난 늘 밑에서 순번을 헤아리기가 빨랐다. 심지어 지난 중학교에서는 교과 교사 중에서는 거의 막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위에서 헤아리기가 더 빠른 순번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하긴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내 나이가 어느덧 불혹을 지나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급변하는 순번에서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학교 건물이 여러 동으로 구성된 만큼 관리를 해야 하는 장소가 많은 관계로 선생님들이 생활하는 교무실은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4명 정도로만 구성된 소규모로 곳곳에 편성되어 나뉘어 있었다.
나는 그해 일 년을 특목고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부단히 노력했고, 점차 특목고의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을 적정히 맞추려고 하였다. 아마 그 시기쯤부터 나는 교직 11년 차에 접어들면서 학교를 바라보는 시야와 생각이 넓어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학교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생각도 해보았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관심이 없던 관리자의 성향과 학교 운영 태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도 해보았고, 부장 교사들과 그 외 교사들의 면면에 대해서도 꽤 관심을 가지며 지켜봤던 것 같다. 아무튼 그 해에는 특목고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학생들의 연구 활동 지도, 주말 동아리 지도, 자연 탐사 활동, 수준 높은 수업과 이에 준하는 정기고사 시험문제 출제 등의 시간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1학년 행사인 야영과 학기별 대학 탐방, 서울 G본사 체험활동까지 다녀오면서 더욱 바쁜 시간을 보냈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학생들도 학교에 점차 적응하면서 우리 학교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힘겨워 보였다. 3월과 4월 학교 적응과 동시에 꾸준히 학습에 열중하던 많은 아이들은 중간고사 이후 좌절을 느끼기도 하였고, 5월부터 시작되는 여러 과학 행사들과, 연구 활동, 체험활동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6월에 접어들면 밀려있는 여러 수행평가 준비와 기말고사 준비로 바빴고, 기말고사 이후 또다시 좌절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한 학기의 과정이 고스란히 2학기에도 반복이 되는 빡빡한 1년의 과정이었다. 나는 성인도 소화하기 힘든 빠른 교육과정과 엄청난 학습량, 그리고 외적으로 하는 여러 활동들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염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한 학생이 결국 부적응 끝에 자퇴를 선택하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분명 아이들도 행복하고자 선택한 학교지 않은가? 너무 많은 과업 탓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그때는 많이 안쓰러워 보였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 사이에 이상한 문화가 있다. 바로 학업 성적의 결과가 학생들 사이의 힘의 서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서로 간에 그러한 서열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교우관계가 원만한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싸움을 잘하는 아이, 예체능에 능한 아이 등등 다양한 아이들이 공존하였고 그 특색에 맞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서열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싸움을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는 우선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더군다나 1학년 성적 순위가 결정되면 조기졸업과 상급학교 조기 진급이라는 자격이 부여되는 아이들은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무엇보다 학교 성적에 매우 집착하였다. 그리고 준수한 성적을 받았을 때의 안도감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좌절감은 극과 극으로 대비되었다. 물론 현시점에는 고등학교에서의 내신성적으로 대학 가는 문화가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내신에 집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중학교 시절 우수했던 학생들이 그러한 성향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는 곳이었다. 성적이 무엇인지? 대학이 무엇인지? 교사 입장에서 성적에 너무 집착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러한 문화 속에 놓여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언젠가 훌륭한 지도자가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분명히 변화를 주리라 믿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늘 학업 성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담임으로서 학생들과 많은 상담을 한 기억도 남아있다. 교사를 하다 보면 맡는 학생들의 전반적인 성향이 해마다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전체적인 그 해의 아이들의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내 기억에는 우리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1학년 아이들의 성향이 그렇게 정이 넘치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은 학교 탓인지 그 해 전국의 고1 아이들의 전체적인 성향인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감정적 교류가 깊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이 담임 입장에서 아쉬움이 가득하였지만 또 그렇게 한 해를 보낸 것이다.
E 선생님과의 재회는 나에게 분명 반가움이었다. 왜 그동안 연락 한번 없었냐며 내가 먼저 서운함을 드러냈다. E 선생님은 그 말에 그저 웃으면서 나를 반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E 선생님은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많이 표현하지만 평범한 일상 대화에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인간관계를 두루두루 넓게 지내기보다는 깊어진 사이와 오랫동안 지내려고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나와의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1년이 E 선생님에게는 깊어진 사이로 느끼기엔 다소 부족한 기간으로 이었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E 선생님은 나의 기대대로 한동안 구미의 한 여고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하였다. 입시에 있어서 더 깊이 있는 활동들을 하면서 입시를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게 익혀 나갔다고 하였다.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 교직에서 회의감도 가져보았고, 이 학교로 이동하기 전 학교에서는 조금은 한숨을 돌리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고 했다. 그 6년이란 시간 사이에 E 선생님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힘든 시간도 겪었다고 하였다. 그 말에 나는 솔직히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왜 장례식에 연락 한 번 없었냐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E 선생님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며 말을 아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둘의 살아온 삶은 다른 듯 비슷했다. 나는 한 번도 빠짐없이 담임으로 생활하며 입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며 배우려고 해 왔고, E 선생님은 담임보다는 업무 부장으로서 활동하며 입시에 대해 더욱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러면서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이제는 이 특목고에 각자의 이유로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로의 갈망에서 선택하게 된 특목고였고, E 선생님은 단지 특목고에 대한 궁금증으로 선택을 한 것이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체중이 무려 15kg이나 증가하여 몸이 많이 무거운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E 선생님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후 들은 이야기로는 지난 1년 동안 어떤 계기인지 모르겠으나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러닝을 하였다고 들었다. 그로 인해 여전한 몸을 유지하였고, 나는 운동 한번 하지 않아 점점 살이 불었던 것이었다. 그해 나는 건강검진에서 건강에 적신호 성적표를 받고서야 금연과 함께 E 선생님의 권유로 러닝을 시작하며 체중감량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한 상황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사인곡선처럼 인생도 흐름을 탄다. 나는 그 해부터 건강이 염려되어 꾸준히 겨울 방학 때만큼은 러닝을 열심히 하면서 건강을 챙겼다. 반면에 E 선생님은 구미를 떠나와 사택 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아 건강하던 몸이 점점 중년의 아저씨로 바뀌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와 E 선생님은 서로 이 학교에서 적응을 하면서 종종 쉬는 시간에 함께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E 선생님은 수학과 부장 선생님과 함께 수리 기획으로 업무 부서를 담당하고, 나는 1학년 3반 담임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는 언젠가 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이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 형태와 선생님들의 면면 그리고 학교 학생들의 기질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E 선생님의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서로의 성향이 정반대이지만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지내온 얼마간의 느낌은 똑같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와 E 선생님의 가치관은 많이 비슷했다. 그렇게 우리는 둘 사이에 수없이 많은 대화를 하며 학교에 대하여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야를 공유하면서 교직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대화를 계기로 나도 조금은 객관적으로 학교의 전반적인 환경에 대해 살피려고 노력하였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학교에 맞추려고 하며 한 해를 보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