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발산하는 성향과 역량은 부모의 노력이 아닌 타고난 기질이다(1)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인사 발령이 났고, 기대와는 달리 경산의 한 읍면 지역의 작은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교직을 시작하고는 처음으로 가보는 중학교. 아무래도 중학생들은 고등학생들과는 다르게 손이 많이 갈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그렇게 고3 담임에서 중1 담임이라는 극과 극을 경험하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여전히 아이들과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반쯤 알아볼 정도로만 만나고 지냈다. 한 학교에서 5년간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이동한 학교에서의 느낌은 매우 낯설었고, 뭔가 모를 어색함만 가득했다. 사실 교직을 시작하고 10년이나 흘러 이제는 충분히 어딜 내어놔도 잘 적응할 것 같은 교사였지만 그래도 바뀌는 환경 속에서는 나름 초짜 중의 초짜의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은 학교에서 함께 배정받은 선생님도 몇 분 계셨고, 이전에 같이 근무했었던 선생님도 몇 분이 이미 와 계시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오래된 초등학교를 중학교로 바꾸어 운영하는 이 학교는 다소 건물이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중학생들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나는 1학년 4반의 담임을 맡았고, 서로 어색한 담임들끼리 통성명도 하면서 작디작은 교무실에서 나의 중학교에서의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예상대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말 그대로 초등학교 7학년이었다. 이것저것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어야 했고, 사소한 일에 아이들은 교무실 문을 자주 열고 닫으며 찾아왔다가 갔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에만 있었던 나로서는 이러한 경험도 겪으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폭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자기만의 최면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같은 초등학교를 보내고 서로 아는 사이로 중학교로 입성하였다. 그러다 보니 제법 친한 친구들끼리는 많이 친하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는 서로 서먹함이 가득했다. 우리 반도 그러한 관계들이 공존하였다.
전반적으로 교과 지도는 너무 싱거울 만큼 할 것이 없었고,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오히려 진도가 나가고도 시간이 남아서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를 제법 많이 제공하면서 기초를 다질 시간을 주었다. 그래도 중학교 수준의 수학인데 설마 아이들이 못하겠냐 했지만, 수학 자체가 나름 큰 벽이 있는 과목이라는 것을 나는 중학교에서 다시금 느꼈다. 이미 수학 자체에 흥미를 잃어서 초등학교 기초부터 흔들리는 아이들, 잘 따라오려고 하지만 수학적 역량이 부족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 이미 학원 빨(?)로 인한 선행으로 기계적인 계산을 잘하는 아이들, 실제로 수학에 흥미를 가지고 잘하는 아이들. 이렇게 중학교에서도 부류가 대략 나뉘고 있었다. 내가 초등교사로 갈 수는 없어서 사실 더 어릴 때의 실상을 파악하지는 못하겠으나, 분명 우리나라의 수학 교과 지도에 있어서는 무엇인가 올바른 변화가 일어나거나, 아니면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까지 수학에 대한 인식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넓게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중1 때부터의 수학은 분명 중요하다는 나름의 생각에 아이들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흥미가 없거나 기초가 없던 아이들이 잘 따라오다가도 심리적 체력이 떨어져 포기할 때는 나도 마음이 많이 슬펐다. ‘이렇게 수학의 포기자가 자꾸 늘어나는구나...’ 우리는 이렇게 수학에 흥미가 없고, 수학이 버거운 아이들을 이해해야 하는데, 사회에서는 수학이 계속 중요하다면서 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삼고, 하기 싫은 교과목을 사지에 내몰듯 아이들에게 강요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에서의 교직 생활에서도 나름 깨닫고 느끼는 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교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살피면서 고등학교에서 발현되는 아이들의 태도와 성향들의 이유를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기였다. 그렇게 또 나는 짧은 한 달 사이에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중학교 담임으로서 녹아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중학교에서의 담임 생활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고등학교에서 10년간에 걸쳐서 해오던 담임의 경험이 처음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1년간 우리 반 아이들과 주거니 받거니, 때론 울어주고 웃어주고, 아빠와 같은 존재로서, 혹은 엄마와 같은 존재로서 살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사춘기를 적당히 잘 이겨내고, 훌륭한 청소년으로 거듭나면서 성인으로서의 발판을 잘 마련하기 바랐던 것이다. 그런 우리 반에도 아이들의 다양한 상황들의 반복은 있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몇몇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유달리 뽀얗고 약해 보이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또래 여자아이들과 있을 때에는 늘 말도 많고, 함께 지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학생이었다. 나름 집에서 아이의 학습에 관심이 많아서 수학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노력도 하였던 학생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고 적응을 하는 3월을 보내고 4~5월에 접어드는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은 조금씩 더워지는 저 시기에 학교에서는 학생들 사이에 교우관계 문제가 처음으로 빈번히 발생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 학생이 포함된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여자아이들의 무리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유를 들어보면 보통은 누군가의 모난 행동의 반복이거나, 뭔가 모를 기싸움, 혹은 오해에서 비롯되는데, 이 학생의 경우는 오해에서 비롯되면서 서로의 고집을 꺽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이 학생은 그 무리에서 이탈하게 되었고, 주변에 친구 한 명 없이 반에서 매번 그 무리의 눈치를 보며 지내게 되었다. 그 어린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아마 심리적 고통은 컸을 것이라. 사실 어른들 중에도 누구나가 한 번쯤은 평생 살아오면서 왕따나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 당시가 아무리 성인이더라도 얼마나 쉽지 않고 마음의 불편함이 지속되면서 힘든 시간을 겪는가? 하다못해 이제 고작 인생이라고 자아를 느끼고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한 지 고작 7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14살 여중생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학교에서 친구라는 존재가 거의 모든 비율로 차지하는 입장에서 그 여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그 학생은 한동안 많이 우울해하면서 표정에서는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기쯤 학생의 어머님과 한동안 잦은 통화를 통해 학생의 적응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도 하였다. 보통은 여자아이들 사이의 금이 간 관계는 아무리 누군가가 개입하여 좋게 만들려 해도 쉽사리 붙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커오면서 친구를 통해, 그리고 교사가 되면서 학급 아이들을 통해 여러 번 보아왔다. 결국 그렇게 친구들 사이의 관계는 회복이 되지 않았고, 학교에서 겨우 꾸역꾸역 적응하면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그 학생을 보면서 나의 긴장의 끈을 그제야 놓였다. 하지만 이후 학교를 떠나면서도 그 학생이 많이 염려가 되어 많이 궁금해했으나 나름 잘 적응하고 무사히 중학교 생활을 마친 것으로 들었다. 그 학생에게는 그 경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나는 해가 거듭될수록 감정 이입이 더욱 되면서 마음이 아파 온다. 사람들이 살면서 집단속에서 마찰이 없을 수 없겠지만, 다들 잘 지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다. 그래도 그러한 경험들이 앞으로의 삶에서 많은 밑거름이 되길 바라면서 그렇게 교직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또 다른 사례의 학생도 많이 약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아직 나도 학생들에 대해서 파악하는 3월 초에 이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학생에 대한 배경지식을 듣게 되었다.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의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 덕에(?) 수영을 배우고 수영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에 준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충분한 입상 성적도 내고 있는 중이었다.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수영 연습에만 몰두하느라 학교에서의 수업에 참여를 많이 하지 못해 기초가 흔들린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목표와 꿈은 꽤 높았다. 우리나라의 일류대학을 진학하거나, 체육 쪽에서 유명한 최고의 대학으로 진학을 시키고, 꾸준히 수영을 통해 이름을 날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자신의 재능 덕에, 그리고 어머니의 관리하에 많은 연습을 하고 있었고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학생과 수업하면서 혹시 많이 뒤처질까 걱정하였으나, 어머니의 많은 관심 덕에 학생은 수업에 곧 잘 따라오고 오히려 우수한 성적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내가 담임을 하는 동안에도 전국소년소녀체전에서도 입상하는 등 학업과 체육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학생을 본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원래 인근 체육 중학교로 진학해도 되지만 어머니는 학생이 공부도 곧 잘해야지만 좋은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시고 일부러 일반 중학교로 진학시킨 것이었다. 학생은 나름의 강단 있는 역량으로 두 가지를 다 병행하면서 최선을 다하였고, 그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저 여리고 어린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자신에게 주어진 저 많은 과업들을 해결하느라 얼마나 고충이 많았을지 일일이 헤아려 보지 않아도 알만 했다. 결국 그 학생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시기에는 인근 체육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사실 이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나라의 예체능 특기자들에 대한 교육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학생이 잘하는 예체능 한 분야를 위해 최소한의 공부도 등한시시키고 오직 훈련과 좋은 입상 성적에만 중요한 목표를 설정하는 교육방식이 옳은 것일까 하고 말이다. 약간의 재능만 발견하고 그쪽으로만 목표를 설정하여 부모의 계획하에 움직이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물론 성공 사례는 주변에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스포츠에도 강국인지라 그렇게 성공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교육적 생각은 적어도 학생들에게 앞으로의 삶을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수준을 습득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도 즐길 줄 알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경험을 해보면서 천천히 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어리고 여린 아이들이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가 설정되어 부단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과정들을 수행해 나가는 모습에서 너무 안타까웠을 뿐이라는 고작 작은 나의 생각이지만, 많은 학부모님과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이 함께 고민해 봐줬으면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