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특수목적고에서의 교사 생활

< 새로운 만남 > & < 참된 교육과 교사의 의미 >

by 육아하는 수학교사

겨울방학이 시작하고 중순이 지난 올해 어느 시기였다. 학교 행정실에서는 이 시기쯤이면 연말정산을 하라고 방학 중인 선생님들께 단체 문자를 보낸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문자를 받고는 날짜를 맞춰 학교로 방문하였다. 안내 문자에 따라서 서류를 준비하고 작업을 마친 후 연말정산 관련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행정실에 방문하였다. 보통 행정실은 1월과 7월이 시작하는 첫날에 인사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때 새로 부임되는 행정실 선생님들이 계신다. 이전에 친하게 지내시던 몇 분도 이동하는 바람에 12월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이런 탓에 행정실에는 새롭게 오신 남자 선생님이 계셨다. 방학으로 인하여 처음 뵙게 된 연말정산 담당 선생님께 서류를 건네면서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뭔가 어색한 인사와 말투가 나왔다. 옆에는 업무 보조 선생님이라고 한 여성분이 계셨다. 나와 대화를 하던 담당 선생님께 보조 선생님은 태블릿을 이용하여 대화의 내용을 알려주셨다. 순간 느낀 것은 청력이 많이 좋지 않으셔서 보조를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좀 어설픈 대화가 오고 가며 무사히 연말정산을 마무리하였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일 때문에 다시 행정실을 찾아가 뵌 그분은 알고 보니 청각장애가 있으신 농아인이셨다. 넉넉한 인상을 지닌 중년의 아저씨인 그분. 동정이라기보다는 그분의 불편함이 얼마나 클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 문득 예전 나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끝나고 셋째 누나한테 배운 수화가 기억이 났다. 요즘은 수화라고 말하기보다는 하나의 언어로 공식화하기 위해 수어라는 단어를 쓴다. 그 당시 셋째 누나는 장애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수어를 공부하고 자격증까지 따며 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무료한 졸업 이후 시간을 무엇이라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누나한테 짧게나마 수어를 배웠었다. 시간이 벌써 20년이 지난 터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수어를 통해 그분께 나의 이름을 서툴게나마 알렸다. 지문자를 중심으로 수어를 하는 나를 보면서 그 선생님은 놀랍다는 표정과 함께 감사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그분과의 인연을 시작하였다. 나는 서툰 나의 수어 실력이 못마땅해 스스로 검색과 책을 통해 부족한 수어 실력을 채워가며 공부하였다. 그렇게 공부하고는 바로 찾아가 서툰 수어를 하면서 그분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런 나의 모습이 반갑고 고마웠는지 서로 왕래를 많이 하면서 급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를 유지하며 이제는 나와 형 동생 사이로 지내면서 나는 형에게 많은 수어를 배워나가고 있다. 단둘의 대화가 서툴어 겁도 났지만 먼저 내가 용기 내어 술 한잔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 그 형은 환한 미소로 수락해 주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가볍게 술도 한잔 하며 서툰 수어로 꽤 진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지금은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가볍게 캐치볼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언젠가 형과의 대화에서 형이 한 말이 있었다. 먼저 배려해 주면서 수어를 해주는 내가 너무 고마웠다고. 그때 나는 오히려 형의 그런 말이 나에겐 고맙다고 서로 격려하였던 시간이 있었다. 문득 그때, 내가 물어본 말이 있다.

“형! 잘 안 들려서 불편하지 않아요?”

그때 형의 대답은 오히려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난 선천적으로 들리지 않았기에 상관도 없고, 오히려 안 들리니깐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안 들을 수 있어서 좋아~”라고.

어떻게 저렇게까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나의 내면에 깊숙이 박혀 있었던 작은 동정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간혹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체육관에서 운동하던 형은 언젠가 서툴게 지문자와 수어를 곁들여 인사하는 학생 한 명이 있다고 나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그 학생은 작년 우리 반 학생의 동생이었다. 올해 신입생으로 들어온 여학생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수어를 할 줄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그렇게 수어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순간 나는 저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의미 있는 과학 연구를 통해 우리와 같은 청력을 되찾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보았다. 그것이 참 의미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지 않겠냐며. 그리고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겠냐며. 아무튼 나는 그런 마음 따뜻한 상황을 이 학교에서 보고 느끼며 또 하루를 보냈다.

나는 사실 어느 학교를 가거나 동료 교사보다는 행정실 직원분들과 급식소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조리원분들에게 늘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격려하는 편이다. 아마 장모님께서 한때 급식소에서 일을 하셔서 남 같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아내가 있었기에 행정실 직원분들에 대한 친근감이 있어서 일수도 있다. 간혹 선생님들 중에는 행정실과 급식소 분들을 교사와는 다른 직종의 학교 직원분이라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교사들과의 관계만큼 노력하지 않고 데면 데면 하는 경향이 좀 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와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시고, 동등한 학교에서의 직원들이다. 바로 교직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게 교사처럼 다 똑같이 학생을 위해 노력해 주시는 분들이고, 함께 일을 하시는 여러분들도 똑같이 동등한 교직원분들이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마음 표현 중 하나는 종종 아버지께서 시골에서 농사지어 생산한 농산물을 교사들보다는 행정실과 급식소 직원분들께 먼저 더 드리곤 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들의 노고가 잘 드러나고 있으면서 충분히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 독자들께 부탁말씀 드리자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꼭 인지해 주시고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며 더욱 노력해 주시는 분들의 노고를 꼭 알아봐 주시길 당부드린다는 것이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나는 첫 부임 때부터 시작된 긴 14년이라는 담임의 시간을 잠시 내려두고 업무부장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3월이 되면서 학교의 구성원도 많이 바뀌었다. 이전 시기보다 젊은 선생님들의 유입이 더 늘어 나의 순번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젊은 선생님들끼리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고, 늘 즐겁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인다. 얼핏 떠올려 보니 14년 전 부임지에서 경험한 처총회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 풋풋함에 부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나이의 무게감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지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적응하면서 잘 지내야 하는데 7월에 접어드는 지금도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학교 구성원의 비율의 변화보다는 아마 늘 부대끼던 아이들과 잠시 거리를 두는 시기를 가지다 보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좀 외로운 느낌도 들었고, 무엇인가 허한 느낌이 많았다. 대신 그래서 늘 우리 반이라는 나의 품 안에서 아이들을 이해만 하려 했던 입장에서 잠시 벗어나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한 발치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는 아이들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아이들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언젠가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학업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특징을 분류해 보았다. 우리 학교에는 학업에 특히 타고난 아이, 적절한 실력도 갖추었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아이, 때론 특목고 진학을 위해 만들어진 아이, 그리고 정서적으로 조금 아픈 아이들 정도로 구성이 되어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더 이상 아프지 말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그 바람은 아마 교직이 끝나는 그 어느 시기까지 계속 이어질 나의 생각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간이 날 때 조금씩 글도 써 보면서. 올해 나에게 펼쳐질 1년간의 생활과 마지막 해인 내년의 생활까지 은근히 기대해 보면서. 그렇게 나의 특목고에서의 5년이라는 시간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이제 교직 15년 차에 접어드는 나에게 엄청난 철학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쌓아온 나의 생각들을 토대로 참된 교육과 교사의 의미에 대해 늘 고민해 보고 있다. 나 자신의 삶을 살기도 버겁지만 수십 명이 되는 아이들의 인생에 순간순간 영향을 미치는 교사로서의 역할은 더욱 제대로 하여야지만. 그래서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나 보다. 언젠가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명학 선생님이란 분을 보게 되었다. 어느 대학의 교수로서의 생활을 마무리하시고는 서울 강남이라는 곳의 한 사립고등학교의 교장으로서 생활을 이어가셨다고 하였다. 그분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학업 하나만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믿고 여러 기회를 제공하면서 천천히 성장하는 자녀들을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이 얼마나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지. 그 유명한 강남 학군에서 그러한 확고한 교육철학으로 교장의 역할을 수행하기가 참 힘드셨을 텐데. 나의 가슴을 후벼 파시는 저 교육철학이 한동안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아마 내가 희망하고 바라는 교육이 저런 부분이 아니었을지.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던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신 분이 계셨기에 나는 매우 흡족했다. 사회는 다수가 함께 어우러지지만 그 속에 올바른 생각을 통해 그것을 실천에 옮기시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저러하신 분들이 사회적으로 귀감을 줄 수 있어서 미디어를 통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명학 선생님의 그 교육철학을 기반으로 나의 교직에서의 철학을 조금 더 확고히 정립하고자 한다. 물론 저분처럼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서지도 못하겠지만. 그리고 그렇게까지 용기가 없겠지만. 하지만 나는 교사로서 나의 영향을 받게 되는 학생들에게 절대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올바르게 많은 말들을 전해주고자 한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 우리 사회가 본질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한 영향력. 바로 사회가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분명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이 곳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그 선한 영향력을 몸소 실천하신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한참 시청을 하는 동안 가슴이 뭉클하면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다시 사회로 환원하신다는 그 선생님. 과히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참 어울리는 분이시다. 과연 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한동안 나의 몸뚱이가 부끄러워졌다. 물론 돈이 많아야지만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겨우 빠듯한 생활 속에 살아가는 나로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그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올바른 교사로서 퇴직까지 열심히 살아보리라 나는 오늘도 다짐을 해본다.

교사 한 명 한 명은 독립된 교육기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님마다의 교육적 가치관과 철학이 다르기에 올바른 사고를 통해 학생들에게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교육기관으로서 잘 역할을 하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투철한 교직관을 가지신 선생님들이 교직에는 아직 많이 있다. 또 그렇게 성장할 연차가 적은 선생님들도 분명 많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교권 실추로 인한 사회적 문제로 인해 교직에 대한 비선호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현장에 계신 많은 선생님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부디 사회에서는 교사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시고 믿어주시면서 함께하고 응원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15년 차 수학 교사이지만 개인적인 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과외 활동만으로도 10년이라는 기간이 더 가산된다. 그만큼 나는 수없이 많은 학생들을 개인지도 및 단체 지도를 하며 수학에 대해 고민하면서 학습지도를 해왔다. 아마 독자들도 어느 정도 느낄 것이다. 수학은 분명 개인이 가진 역량과 기질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수학이 중요한 평가 지표로 활용되는 것은 알지만 부디 부탁하건대 학생이 가진 역량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수학이라는 교과목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업도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무작정 듣는 수업보다는 기본적인 내용 학습과 예제문제를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가 부단히 많은 문제를 풀어보면서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기에 수학을 잘하는 방법은 왕도가 없다. 열심히 탐구하고 고민하면서 노력하는 그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거기서 개인 역량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을 바라봐 주길 부탁드린다. 굳이 옆의 잘하는 학생과 비교하지 않기를 당부드린다. 사교육을 비판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너무 현란한 보여주기식의 강사들이 잘 가르친다고 무조건 그 강사의 수업을 들으면 학생이 수학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중에 한두 명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수학이라는 교과목은 누군가 남이 떠 먹여주는 교과목이 아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수업을 많이 듣는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많은 고민과 사고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을. 그리고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개인 역량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것이 수학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15년 차 수학 교사가 전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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