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특수목적고에서의 교사 생활

< 학년 부장으로서의 부담감 >

by 육아하는 수학교사

업무분장 조직을 위해 학교는 12월 말부터 분주해졌다. 나는 교감 선생님의 요청에 의해 고3 부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되었다. 나의 교직 생활 14년 만의 첫 부장이었다. 아무리 학급 수가 적고, 입시지도를 위해 살펴볼 대학이 적더라도 사실 입시 실적에 대한 부담감이 큰 자리다. 부장 역할을 피할 수 없었던 나의 입장이었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나는 고3 부장 자리를 수락하였다. E 선생님은 수학과 부장 자리를 1년간 하고는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든 자리인 2학년 부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만큼 교장, 교감 선생님의 신임을 많이 받은 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직된 부장들의 첫 회의에서 허심탄회하게 학교 운영을 위한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 당시 E 선생님과 나는 그동안 안고 있었던 학년 운영의 문제점들에 대해 건의하였고, 꼭 수정되기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회의는 흐지부지 끝나면서 우리의 요청은 수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2월로 접어드는 어느 시기에 E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과의 장시간 담판을 통해 몇몇 문제 사항에 대한 요청 사항을 수락하게 하였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학교의 자잘한 여러 불편한 사항들이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관리자 입장에서는 불편했으리라. 하지만 그 불편감을 감수해 준 관리자와 이러한 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여러 부서 부장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 학교는 조금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였다.

업무 부장이 아닌 한 학년을 이끌어 가는 고3 부장이라는 자리가 평생 담임만 해오던 나에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한 학급만을 운영하는 담임교사가 아닌 학년 전반을 아울러야 하는 학년 부장의 위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어찌하랴? 이미 나에게 주어진 과업인 것을. 나는 함께 일할 여자 기획 선생님과, 퇴직을 몇 년 남겨두지 않은 연세 지긋하신 계원 선생님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학년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내가 함께 근무해 온 여러 학년 부장 선생님들을 떠 올리면서 어떠한 학년 부장이 되어야 할지 며칠을 고민했던 듯하다. 아마 여러 부장 선생님들의 본받아야 할 덕목을 하나씩 섞으며 청사진을 그렸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S 부장 선생님의 책임감과 배려심을 더욱 떠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년이 시작되면서 학년 부장으로서 함께 할 담임 선생님들을 모시고 가볍게 식사 자리를 하면서 학년의 시작을 알렸다.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과 더불어 인간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함께 나아가자는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릴 듯 말 듯 건네면서. 3월 학기 초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정신없이 바쁜 기간이다. 업무부서는 업무부서대로 업무 추진을 위해 바쁘고, 담임 선생님들은 담임 선생님대로 각 반 학생들과 무에서 유를 만들어 가며 하나의 학급을 구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년 부장은 더군다나 학년 전체를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요청하는 학년 운영 방식에 대한 질의에 고민하고 대답해 주어야 했다. 내가 각오한 것보다 더 정신없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아마 이 시기에 너무 많은 긴장 탓이었는지, 책임감으로 인한 스트레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4월에 접어드는 시기부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한의원과 내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기대 반 두려움반의 나의 학년 부장으로서의 첫 발걸음은 순탄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여러 일정 속에서 나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아마 이 시기쯤 몇 해 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동안 끊었던 정신과 상담을 실시하면서 다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내가 이겨내려 해도 몸이 못 이겨내면서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무거운 학년 부장 자리를 맡으며 꾸역꾸역 해내리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버텨나갔다. 아마 이 시기쯤 대학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각자 학교에서의 힘든 이야기들을 공유한 적이 있다. 교직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부단히 노력하는 소제를 이야기로 삼았다면, 4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에는 많은 선생님들과의 마찰에 대한 소제로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나와 같이 이러한 곤란함을 겪는 동기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들으며 스스로 위안 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동시대에 동년배들이 겪는 이 문제점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면서 안도를 하였던 것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그 많은 기초대사량을 소비해 나가면서 삼시 세끼로 채우지 못하는 열량을 겨우 작은 하나의 밴딩 기계로 보충한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큰 학교처럼 많지 않아 매점이 들어서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물론 제한된 조건 범위에서 기숙사 냉장고에 몇몇 간식을 쟁여두고 먹을 수 있으나 한계가 있다. 또한 다양한 간식거리를 암암리에 택배로 주문하여 먹고 있으나 그 공산품들로 허기를 지우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특히, 야간자율학습 1부가 마치는 시간은 저녁 식사 이후 3~4시간이 흐른 시점이라 이후 2~3시간 후의 취침 시간에 들어가기 전에 배고픔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 궁여지책으로 아이들은 기숙사 방 안에서 규칙을 어겨가며 몰래 컵라면을 먹곤 한다. 벌점을 받는 한이 있어도. 나는 별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학생들에게 공식적인 컵라면 취식 시간을 제공하고자 교감 선생님께 허락받고 야자 1부가 끝나는 휴식 시간에 이를 허용하였다. 별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해 주고자 한 나의 행동은 졸업 이후 찾아온 학생의 고마움에서 의미가 있게 되었다. 처음 이 시간을 이용한 학생은 많았다. 뒤로 갈수록 학생들이 줄긴 하였지만. 아마 공식적으로 허용된 저 시간이 처음에는 생소하고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숨어서 먹는 그 맛에 익숙한 아이들로서는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기숙사로 돌아갔으리라. 그렇게 자유로운 시간 제공과 더불어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1학기 성적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9월 수시 원서 접수를 위해 입시상담에 부단히 노력하였다.(참고로 우리 학교는 3학년으로 진급한 학생들도 충분히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졸업생들의 이전 연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들의 상담을 이어가며 아이 한 명 한 명에 맞게 선생님들의 노력이 곁들여지며 충분한 원서 상담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상담의 시간이 끝나고 원서접수가 이루어지고 나면 이후 학년에서 또 빠짐없이 해주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각 학교별 적합한 야간 면접 특강이었다. 집중적으로 하는 그 기간에는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시는 선생님께 고마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그렇게 신경을 쓰는 우리 교사들을 위해 감사함을 표하는 아이들이 참 이뻐 보였다. 나의 3학년 부장으로서의 시간은 다사다난한 일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잘 흘러가 어느덧 학년을 마무리하는 2월이 되었다. 졸업 준비로 바쁜 겨울방학 기간을 보내고 무사히 학생들 36명을 졸업시켰다. 이 학생들과는 1학년 때 같이 신입으로 시작하여, 3학년에서 다시 만나 내 손으로 졸업시킨 셈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었지만 잘 이겨내고 버텨준 아이들이 기특하였다. 그중 3학년 시절 우리 반 아이였던 한 학생은 졸업식 소감에서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졸업하였다. 다른 아이들보다도 그 아이의 감사하다는 그 소감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사실 그 학생으로 인해 나도 고민이 참 많았지만 잘 버텨내 준 그 학생에게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기에. 그렇게 특목고에서 나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나의 그 해 3학년 부장으로서의 역할은 모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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