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족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 금기시하는 이유?

정치 양극화 지수 3.61로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 사회

by ChartBoss 차트보스


출처: Airi Ryu


가족끼리도 정치 얘기 못하는 나라

Varieties of Democracy(V-Dem)의 정치 양극화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심각한 분열을 보여준다. 2024년 미국의 정치 양극화 지수는 3.61로 측정됐다. 이는 0-4 척도에서 "대부분 적대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최고 단계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 수치가 얼마나 극단적인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일본은 0점으로 "전혀 양극화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과 독일이 2점, 인도가 3점이다. 미국은 조사 대상국 중 가장 양극화된 국가가 됐다.


양극화 지수 3.61의 의미는 구체적이다.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 모임, 시민단체 활동, 여가 활동, 직장에서조차 우호적 관계를 피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해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돌이킬 수 없는 분열

미국의 양극화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1900년부터 2000년까지 약 100년간 양극화 지수는 1-2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심지어 1941년 진주만 공습이나 1950년 한국전쟁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변곡점은 2000년경부터 시작됐다.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 앨 고어(Al Gore) 대선의 플로리다 재검표 논란을 계기로 양극화가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더욱 가속화됐고, 2016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당선 이후 급격히 치솟았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는 3.75까지 올라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 록다운 정책 등 방역 조치조차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양극화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2024년 현재는 3.61로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극도로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에도 분열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걸을 위험이 있다

이런 미국의 양극화 경험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심각하다. 한국도 최근 몇 년간 정치적 갈등이 일상생활로 확산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가족 관계의 정치화다. 명절 때 정치 얘기로 다투는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나 취업에서도 정치 성향을 고려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는 미국 양극화의 초기 단계와 유사한 패턴이다.


둘째, 소셜미디어의 증폭 효과다. 미국의 양극화가 200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의 확산이 있다. 알고리즘에 의한 정보 편향과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효과*가 양극화를 가속화했다. 한국도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 반향실 효과(反響室 效果, echo chamber): 뉴스 미디어에서 전하는 정보가 해당 정보의 이용자가 갖고 있던 기존의 신념만으로 구성된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증폭 및 강화되고, 같은 입장을 지닌 정보만 지속적으로 되풀이하여 수용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


셋째,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결합이다. 미국에서 양극화가 심화된 시기는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된 시기와 일치한다. 한국도 부동산 문제, 세대 갈등, 취업난 등으로 경제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위험하다

양극화 지수 3.61이 의미하는 건 단순한 정치적 의견 차이를 넘어선다.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충성한 반대(loyal opposition)"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상대방을 "경쟁자"로 보되 "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선거에서 지면 결과를 인정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룰이다. 하지만 양극화가 극심해지면 상대방을 "국가의 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실제로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선거가 도난당했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습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는 양극화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파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업들도 정치적 중립성 유지가 어려워졌다

양극화의 경제적 영향도 심각하다. 기업들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중립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환경, 인권, 다양성 등의 이슈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든 고객층의 절반을 잃을 위험이 있다.


실제로 많은 미국 기업들이 "고객의 정치 성향에 따른 보이콧"을 경험하고 있다. 나이키(Nike), 스타벅스(Starbucks), 칙필에이(Chick-fil-A) 등이 정치적 입장 표명 후 양극화된 반응을 받았다.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ESG 경영, 젠더 이슈, 역사 문제 등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든 논란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양극화 완화를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양극화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의식적 노력으로 완화할 수 있다.


첫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중요하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둘째, 정치를 개인 정체성과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견해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지, 그 사람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공통 관심사 발굴이다.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문화, 자원봉사 등 활동들을 늘려야 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미국의 3.61이라는 수치는 경고등이다. 한국이 같은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양극화 완화를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도 일상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 정치적 승부와 관계없이 민주주의 룰을 존중하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정치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과제다.


미국이 보여주는 건 양극화가 어떻게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지다. 한국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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