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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Dec 30. 2020

참된 친구가 있나요?

산책의 시간 / 예수 그리스도 009


  작년(2019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3,799명이다.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하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해마다 자살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처럼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 곁에 진정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 곁에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의 친구라고 하신다. 먼저 제자들에게 자신을 그들의 친구라고 하셨다. “이제부터는 너희를...친구라 하였노니”(요 15:1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제자들에게) 말하노니...”(눅 12:4). 그분은 제자들에게만 친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던 세리와 죄인들도 친구로 부르셨다. “인자는...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 11:19;눅 7:34).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자신을 팔러온 가룟 유다에게도 여전히 친구로 부르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 26:50).




  이렇게 제자들과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가룟 유다에게까지 친구라고 부르신 예수님은, 입술로만 친구처럼 행세하지 않으셨다.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심으로써 친구를 향한 사랑을 몸소 증명하셨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다. 그분은 그 죽음을 통해 친구인 우리를 향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셨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2-13). 서로 사랑하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셨다. 그러므로 주님보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친구 맺자고 제안하신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벌레 같은 우리가 친구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지만, 그분은 그 제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인류 역사상 이것보다 더 위대한 발견, 더 위대한 관계가 있을까? 그런 분이 만약 우리의 친구라면 그 무엇이 두려울까? 그런 분이 만약 우리의 친구라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두려울 것 하나 없고 부족할 것 하나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람들처럼 자살할 이유도 전혀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와 친구 맺기 원하시는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기 원하신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런 분을 친구로 거절한다면, 도대체 그 어떤 존재를 친구로 삼아야 할까?


  그분과 친구 맺는 방법은 쉽고 간단하다. 그분을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분의 약속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고(요 1:12), 그에 따라 자동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고, 그분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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