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이 한 명도 없던 문제 앞에서

학사 에스라와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 08

by 박준택

레위 자손이 한 명도 없었던 문제 앞에서레위 자손이 한 명도 없었던 문제 앞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아닥사스다 왕 7년(기원전 458년)에 이스라엘의 2차 포로 귀환이 있었다. 그 여정에 5천여 명(남자만 1,500명)이 동참하였다.




귀환을 이끌었던 에스라는, 출발 전에 귀환자들을 바벨론 북서쪽의 아하와 강가로 모이게 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3일 동안 머물면서 백성을 ‘살피던’ 중에 레위 자손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레위인’은 제사장은 아니지만, 제사장이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돕는 임무를 맡았던, 중요한 성전 관리인이다. 따라서 그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성전 제사를 비롯하여 성전의 여타 업무도 마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2차 귀환의 주목적이 성전 제사를 바로 세우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에스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지도자와 명철한 사람을 부른 후, 그들을 가시뱌 지방에 있는 족장 잇도와 느디님 사람들에게 보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려오도록 하였다. 이에 그들은 에스라의 명령에 따라 40명의 레위인들과 220명의 느디님 사람들(성전 일꾼)을 데려왔다(스 8:16-20).


발견한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에스라의 모습은,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만약 에스라가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지 않고 미루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룬 시간만큼 예루살렘을 향한 출발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또 만약 그 문제를 외면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전 제사를 비롯한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 안에 문제가 있다면 애써 외면하거나 미루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자원의 부족 문제라면 채워 넣어야 하고, 그것이 죄 문제라면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것을 미루거나 외면하면, 그에 반비례해서 문제는 악화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도우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다. 에스라의 문제 해결 방법은 그 방법의 최선 여부를 떠나,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위인들이 모이지 않았던 사건의 전조는 1차 귀환 때부터 발견할 수 있다. 그때 제사장들은 4,289명이었지만, 레위인들은 341명에 불과하였다. 돕는 자들이 도움을 받는 자들의 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형적인 구조이다. 그리고 마침내 2차 귀환 때에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은, 그들이 바벨론에 정착하면서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어쩌면 그곳에서 금융업으로 부자가 된 유대인들에 속하였을지도 모른다.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던 레위인들에게 그곳에서는 그런 제한도 없었다. 그것과 비교할 때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맡게 될 성전 봉사는 업무가 과중할 뿐만 아니라 보상도 바벨론의 그것과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그들은 이민 삼사 세대이기 때문에 도전 정신이나 신앙의 열정도 희박하였다. 그런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2차 귀환 대열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220명의 느디님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혈통 상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의 신분은 평민도 아닌 종이다. 그들이 돌아가서 맡게 될 업무도 존재감 없고 힘들기만 한 성전 막일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새롭게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할 동기는 더욱더 희박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귀환 대열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설명이 불가하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신속하게 임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문제를 우리가 주체가 되어 해결하려고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렘 33:2). 이렇게 일의 주체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있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그분께 의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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