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에스라와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 10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2차 귀환 당시의 유다 사회는, 이방 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는 통혼 문제가 횡행하였다. ‘통혼’(通婚)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 말씀에 대한 불순종, 약속 불이행, 거룩함의 상실로 인한 부정(不淨)한 삶 등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그런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심히 가증한 일이었다.
에스라서 10장에는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바람, 즉 종교개혁의 불길을 소개하고 있다. '개혁'은 ‘제도나 기구(機構)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은 이전에 구축된 제도나 기구에 대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그 인식이 방백들의 고발로 전면 노출되었다(9:1-2). 이 말은 그 고발 이전에 통혼 문제에 대하여 백성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쉬쉬하였다. 즉 뒤에서 은밀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드러내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것이 일부 방백들의 고발로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에스라는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통곡하면서 자복하고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간절히 구하였다. 그 회개 운동에 백성이 동참하였고, 그 운동이 종교개혁의 불길이 되었다. 이것은 문제 인식과 종교개혁 사이에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더라도 회개가 없다면 종교개혁은 추진력을 잃어버린다. 인식은 객관성에 대한 ‘인지’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인식은 개혁의 출발점이지만 반드시 개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개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를 낳게 하는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회개에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과 죄에서 떠나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삶의 변화를 통하여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욥 42:6;고후 7:9;히 6:1). 그래서 그것이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회개에 있어서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개의 ‘진정성’이다. 만약 회개에 진정성이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또 있다 하더라도 그 강도가 약하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개혁은 공염불이 되어 버린다. 설사 개혁되더라도 제대로 탄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타다만 나무 조각처럼 불완전한 모양이 된다.
‘개혁’(改革)은 ‘고치다’는 말과 ‘가죽’이라는 말이 합해진 단어이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보면, 기존에 덮고 있는 가죽을 벗겨내고 새로운 가죽으로 교체한다는 뜻이다. 가죽을 벗겨내면 그 사람은 고통으로 자지러질 것이 빤하다.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쉽게 이루어진다면 한자어를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개혁은 그 같은 고통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수많은 개혁 속에 무수히 많은 사람의 피(목숨)가 들어 있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그 가운데 종교개혁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회개의 진정성 문제는 종교개혁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에스라처럼 엎드려 통곡하면서 자복하는 기도, 즉 진정성 있는 회개가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지닌 전염성 때문이다. 회개는 개인의 내부 문제로 파고 들어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되어 회개를 확산시키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유다의 종교개혁은 에스라라는 한 사람의 회개로부터 불길이 옮겨붙었고, 마침내 통혼 문제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현대 한국 교회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그와 같은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은 오늘도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