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브로드웨이에서 Hadestown을 봤었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Mara Molley의 flower 노래를 듣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뮤지컬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변형하여 현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변주한 작품이다. 어렸을때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로 봤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는 독사가 에우리디케의 발목을 무는 바람에 서로 생이별을 하고,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 지하의 세계로 걸어가는 오르페우스의 용기와, 안타깝게 또 잃는 오르페우스의 슬픔을 다루는 이야기로만 읽었었다.
시간이 지나고보니, 이 이야기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전승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지막 순간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 라는 경고를 오르페우스가 지키지 못했을 때, 한 순간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인해 영영 사람을 잃게되는 슬픔을 보며, 안타까움만 느끼고 끝나는 이야기였다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 없었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인가 형용할 수 없는 스토리 때문에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라는 생각했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지하로 내려가 지하세계의 존재들을 모두 노래로 감동시켰으나, 그 초인조차 '정말 에우리디케가 따라오는 게 맞을까?'라는 그 의심과 불안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순간.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Hadestown의 후반부에서 그 부분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Hadestown에서 헤르메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원전과 달리 '이건 시험이다'라고 명확하게 말하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지상으로 향한 길고 긴 걸음을 시작한다. 운명의 여신들은 끊임없이 오르페우스를 불안하게 만들며, 오르페우스는 노래를 부르며 불안을 치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 기나긴 여정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뒤를 돌아봐, 손으로 잡을 수 있던 그 순간을 놓치게 된다. 나는 이 변주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봉준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자기가 원래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작품에서 불안을 잘 표현해낸다. 그는 불안감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는 불안감에 주저앉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학을 연구하다보면 제일 아찔한 순간이 내가 말한 말이 혹시나 틀리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할때다. 그리고 논문 심사를 보내고, 심사결과 보고서를 받을 때마다 생각하지도 못한 실수를 만들어낼때가 있다. 다 끝났다 싶었으면, 꼭 한번씩 위기가 발생하고, 그 위기때문에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다. 단순한 계산실수 하나가 큰 위기를 만들때도 있었고, 논리적인 순서가 안 맞아서 순환논리가 될 때도 있었고, '존재할 수 없는 가정'을 가정해서 결론을 유도한 위기가 나올 수도 있었고, 이유는 제 각기 달랐다. 무조건 맞아야 하는데, 안 맞는 순간 그간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니, 그 순간을 마주하기가 싫었다. 그 허탈한 느낌을 받기 싫어서, 혼잣말을 하고 돌아다녔던 적도 많다. 그러다가 결과적으로 맞았을 때야 안도감을 느낀다. '아 더 좋은 길로 가는구나'라는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예전에 고등과학원에서 어떤 교수님이 젊은 수학자들을 상대로 조언을 했었던 글에서 봤던 말을 기억한다.
"불안은 치우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 같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어느정도 자리잡은 친구들의 편향적인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
한국에 있었을 때 뵈었던 이상혁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한 가지 가능성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가야 해요. 이거 조금, 저거 조금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돼요. 결국 시간만 낭비하고, 그 어떤 문제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전환은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오는 겁니다."
나는 아직도 불안을 담는 그릇이 크진 않다. 문제를 바라보는 힘, 풀기 위해서 도전하는 힘, 오랜 시간 기다리는 인내의 힘이 아직까지는 많진 않다. 그러나 이제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한 문제를 풀기 위해 1주일 고민했던 것이 1개월이 되고, 1개월 고민 할 수 있던 인내심이 5개월이 되고, 1년 이상 종종 생각하는 순간도 생기는 걸 보면, 옛날보다는 더 나아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