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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Mar 10. 2022

제주 살아보니, 괸당보다 수눌음

아이들과 제주 일 년

 

제주 사람들은 투박하고 텃세도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제주는 혈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쳐 사는 괸당문화가 있다. ‘괸당’은 ‘권당(眷黨)’에서 비롯된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옛날부터 육지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난리와 소동이 끊이지 않았기에 섬사람들은 이렇게 똘똘 뭉쳐 마을을 이뤄 살아야 했다. 또 사람들이 자주 들고 나는 섬이다보니 이별도 자주 접했다. 무정한 헤어짐은 남겨진 도민들에게 말 못할 헛헛함을 안겨주었을 터, 자연스레 육지 사람에게는 마음을 잘 주지 않고, 텃세도 부리게 되었을 것이다.


나도 입도 초기에는 이 괸당 문화를 의식하며 도민들과 거리감을 두며 이웃 사귀기를 퍽 조심하였다. 혼자 있기를 즐겼고, 소규모 모임에도 일절 가지 않았다. 우연히 친해진 동네 엄마들에게는 처음부터 일년살이를 왔다고 일러두었다. 그것이 도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또 제주에는 예로부터 마을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농사뿐 아니라 집안일도 서로 돕고 사는 ‘수눌음’ 문화도 있다. 신기하게도 내가 만난 주민들은 배타적이지 않았고 내가 만난 제주 이웃들은 맑은 자연처럼 마음씨가 순수하고 정이 많은 분들이 많았다.   

   

 아이들에게는 주일 학교 예배가 중요했기에, 집앞 교회에 찾아갔다. 방문 첫날 안내하시던 집사님이 해사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셨다.

 “아, 일 년 살이 오셨다고요? 여기에 그런 분들 많아요. 괜찮으니 어서 등록하세요. 이왕 오시는 거, 내 교회다 생각하며 편히 다니셔야죠.”

 예상치 못한 반갑고 적극적인 권유에 못이기는 척 등록을 했다. 아이들은 주일마다 선물과 간식 그리고 사랑과 관심을 한아름씩 받아 왔다. 힘든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걱정도 해주시고 힘껏 도와주셨다.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고 고백한 다윗 왕처럼 우리의 제주살이도 하늘이 보내준 천사 이웃들 덕분에 전혀 외롭지 않았고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삼양에서 ‘숨비둠비’ 두부 가게를 운영하는 조권사님은 생전 처음 본 나를 일 년 내내 살뜰히도 챙겨주셨다. 몸이 아픈 날에는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맛집에 데려가 밥을 사 먹이셨고, 아이들의 옷과 신발, 장난감까지 아낌없이 물려주셨다. 무엇보다 퇴근길에 잠깐 들려서 맛있는 두부를 한아름씩 안겨주시곤 했다. 천사가 만든 두부여서 였을까?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강렬한 고소함은 독박육아의 고단함을 언제나 따뜻하게 달래주었다.         


 우연히 만난 제주민들도 인심이 좋았다. 낯선 동네에서 만난 어르신도 아이들의 힘찬 인사 후에는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 귤 밭에 서성이고 있으면, 귤 한 봉지가 손에 들렸고, 당근 밭에 서 있으면 당근이 생겼다.



담장에 핀 접시꽃에 홀려서 머물러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갑자기 주인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다른 꽃들도 구경하고 가라며 권하셨다.동화 속 비밀의 화원인 듯 황금빛 하귤이 가로수를 이룬 화사한 정원에 이끌리듯 들어갔다. 순결한 백합과 이름도 생소한 각양의 꽃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꽃 이름을 설명해주시더니 급기야 바로 옆 텃밭에서 상추와 깻잎, 고추, 당근, 파 등을 순식간에 뜯어 한보따리씩 안겨 주셨다. “마당에 있는 작물은 언제든 봉지 가져와서 따 가요.”라는 인심 좋은 말과 함께.     

 서로 데면데면한 도시의 이웃과는 달리 제주에 오면 모두가 가족이 되는 건가? 나처럼 육지에서 온 엄마과는 무척 가깝게 지냈다. 애월에 사는 고향 언니, 대전에서 온 영희 언니, 윗집에 살았던 도영 엄마. 우린 육아와 여행, 신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자주 만났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자유의 몸이 되어 오름과 곶자왈을 함께 누렸다. 꾀꼬리가 노래하고 꽃무리들이 재잘대던 정원 카페에서 마시던 비엔나 커피는 얼마나 향긋했던가! 주말이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시끌벅적한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남편들이 오지 않은 주말에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가족이 되어 주었다.      


 우리도 이 ‘수눌음’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연말 이웃사랑 저금통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고, 식사 때마다 돈을 조금씩 넣었다. 칭찬스티커를 모아 푼푼이 용돈을 받는 다솔이는 내가 돈을 넣을 때마다 저도 꼭 따라 넣었다. “여기에 돈을 넣으면 마음이 행복해져요.”라며 맑게 웃었다. 새해 아침 우리들은 그 저금통을 털어 생필품들을 샀다. 아이들은 저보다 더 큰 휴지보따리를 낑낑대며 보육원 사무실로 옮겨놓았다. 하늘이 보내준 천사 이웃들 덕분에, 우리들의 겨드랑이에서도 투명한 날개가 덩달아 돋아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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