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우리는 새벽 5시 30분까지 김밥 집에 가야했었다. 긴장한 탓인지 자주 깼더니, 5시 알람소리를 못 들었던 것이다. 성판악 코스는 한 달 전에 예약이 차버려서, 우린 전문 산악인들도 오르기 힘들다는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을 등정할 계획이었다. 그것도 아이젠을 끼고, 눈길을 헤쳐 가며 말이다. 정상까지 어른 걸음으론 5시간 걸린다. 아이들과 함께인 우리는 최소 6시간의 트래킹 시간이 필요했다. 1시 30분에는 정상에서 하산 명령 사이렌이 울린다. 백록담에서 점심 컵라면을 먹으려면, 늦어도 7시에는 등산을 시작해야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늦잠을 자 버린 것이다.
이렇게 제주살이의 최대 목표였던 백록담 등정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11월 중순인데도 한라산엔 이미 눈이 쌓였다. 앞으론 더 춥고, 해도 짧아질 테니 어쩌면 그 날이 마지막 기회였다. 이대로 산을 안 가기에는 아이젠과 등산 스틱, 아이들 등산화를 구비하느라 주말내내 종종거린 것이 억울했다. 그랬기에 우린 단풍놀이라도 가자며 한라산 입구를 8시에 들어섰다.
아침 산 공기는 시리도록 청량했다. 어제까지는 무서운 산이었는데, 막상 오고 나니 엄마 품처럼 포근했다. 힘든 줄도 모르고 산을 올랐다. 마음이 즐거우니, 오르막도 그저 걸을 만한 평지로 보였다. 아이들은 월요일에 교실이 아닌 산에 와 있다는 것, 산에서 첫눈을 만난 설렘에 종일 깔깔거렸다. 눈을 뭉치다가, 스틱으로 찔러보며 설산을 마음껏 만끽했다.
예상보다 빨리 삼각봉 전망대에 도착했다. 11시 30분, 결단의 순간이 왔다. 이제 2시간 올라가면 정상이었다. 하지만 1시 30분엔 칼 같이 하산 사이렌이 울린다. 지금 올라간다해도 사진만 얼른 찍고 내려와야 했다. 점심도 못 먹고, 2시간을 쉼 없이 올라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린 이미 한라산의 매력에 완전히 홀려버린 터였다. 최선을 다해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눈밭에 ‘할 수 있다’를 쓰고선, 손을 모아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소문대로 삼각봉 전망대부터는 가히 환상의 절경이었다. 산 정상의 대담한 화구벽, 장구목의 숨 가쁜 능선, 왕관 모양의 대담한 기암괴석, 아찔하게 뾰족 솟은 삼각봉. 봉우리마다 피어난 새하얀 상고대는 눈이 부셨다. 남한 최고의 산인 한라산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다. 지독한 고행이 시작됐다. 절벽에 몸을 바짝 붙여 눈길을 조심조심 내딛었다. 나무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등하산객이 뒤엉켜 좁은 길은 더 옹삭했다. 쉬지 않고 걷다보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밧줄에 몸을 의지하며 기어가듯 올라갔다. 아이들도 힘들다는 비명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엄마, 좀만 쉬면 안 돼요? 너무 힘들어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백록담을 포기하고 잠시 쉴까? 그 때마다 하산객들의 응원과 간식이 날아왔다. “우와, 몇 살이니? 정말 멋지다. 앞으로 너희들은 무슨 일이든 해내겠는걸.”
그 따뜻한 응원 에너지 덕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힘을 낼 수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극심한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자기랑 아이들이라도 먼저 가서 사진 남겨요. 난 혼자 어떻게든 가 볼게”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우리 셋은 남편을 제치고 앞만 보고 올라갔다. 어린 온유를 계속 챙기다보니 다솔이가 한참 뒤로 밀려났다. 뒤처진 아이를 맘속으로 간절히 응원할 뿐이었다. 그 때, 한 젊은 청년이 다솔이의 배낭을 계속 밀어주었다. 순간 눈물이 터졌다. 허리가 끊어질 듯, 허벅지가 터질 만큼 아파서였을까? 고마움과 서러움이 뒤엉켜 엉엉 울고 말았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은 가느다란 저 다리로 이걸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몹시 아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모성은 더욱 비장해졌다. 아이들이 볼세라 얼른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백록담 기념 사진, 엄마 것은 없어도 괜찮아. 하지만 너희들의 오늘은 꼭 기념해주고 싶어. 얼마나 대단한 일이니? 가장 어려운 대상인 ‘자신’을 이겨낸 날이잖아. 지금 쉬면 백록담은 볼 수 없어. 고지가 코앞인데, 우리 포기하지 말자.”
아이들에게 극기와 성취감을 새겨주고 싶은 마음에 괴력이 솟았다. 온 힘을 내어 “할 수 있다. 영차! 영차!” 외치며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두 아이를 번갈아 가며 뒤에서 밀고, 앞으로 끌어올렸다. 역시 부모가 힘을 내니, 아이들도 힘을 냈다. 더 이상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은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신비한 에너지임에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