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일년살기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덕분에 만성포도막염(눈에 오는 자가면역질환)이 나았고, <사교육 대신 제주살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제주 덕분에 난 아프고 분주한 엄마에서 공감하고 성장하는 엄마로 변할 수 있었다. 당시 9살, 6살이던 아이들과 맑은 자연을 마음껏 쏘다녔고, 바다 수영도 원없이 누렸다. 온가족이 한라산 백록담도 등정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알알이 박혔던 일 년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 하나가 있다. 그것은 ‘자연 속 휴식’이 행복한 삶을 좌우하는 단초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네모난 모니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만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태초부터 짐승을 쫓아다니고 나무와 풀냄새를 맡으며, 햇볕을 쬐도록 창조됐다. 그래서일까? 자연과 교감할 때 충만한 기쁨이 차오른다. 소박함 속에 깃든 만족과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도 퐁퐁 샘솟는다. 현재 육지로 돌아와서 바다와 뚝 떨어진 신도시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자연 속 휴식’만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배우고 크느라 바쁜 아이에게도 자연과 체험은 중요하다. 오감을 자극하는 자연물은 집중력을 높이고 모래와 흙, 바다수영, 나무타기, 곤충과 식물 채집은 호기심과 자유로움을 돋운다. 정형화되지 않은 놀잇감이 다양한 궁리를 자극하여 창의력도 키운다. 탁 트인 바다를 보거나 향긋한 숲속을 걷노라면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자기 우물을 살필 줄 아는 아이라야 속마음과 소망, 꿈도 일찍 발견한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와 함께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화될 예정이다. 앞으로는 수능 시험에 생각을 쓰는 논술형이 도입된다. 그러니 개성과 적성을 찾고,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요즘 대세가 될 중요한 공부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연과 다양한 체험이다. <사교육 대신 제주살이>에 썼듯, 미래를 대비하는 자녀교육의 정공법은 ‘공감양육’이다. 아이와 가슴으로 소통하며, 함께 체험하고 배우는 공감양육이 행복한 가족, 단단한 아이를 만든다.
제주를 떠나도 자연을 가깝게 누리고, 공감양육을 지속하고 싶었다. ‘맞벌이를 다시 시작되면 체력이 따라줄까? 수도권의 주말 고속도로 정체를 뚫고 산과 바다로 갈 수 있을까? 매번 여행지를 검색하고 숙박 예약을 할 수 있을까? 원터치 텐트라면 모를까, 거대한 캠핑 장비를 옮기고, 텐트 설치와 해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오토캠핑이 간편해 보여 폭풍 검색을 했다. 캠핑카가 있으면 편리하지만 가격도 비싸고 유지와 관리가 쉽지 않아 보였다. 또 주택에 살지 않는 이상, 주차 공간도 마땅히 없고 말이다. 4인 가족이 미니멀하게 오토캠핑을 하려면 SUV에 루프탑 텐트를 올리는 게 최선이었다. 고심 중, 카니발을 캠핑카로 개조한 차를 봤다. 일체형 루프탑 텐트, 장비 보관이 가능한 평상형 뒷자석, 특별한 차량 관리 없이 주중에는 데일리카로 주말에는 캠핑카로 변신, 주차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쏙, 경제적이고 신박했다.
고심 끝에 오토**의 ‘큐브밴’을 계약했다. 루프탑 텐트 소재가 좋고, 2열 좌석을 회전하면 6인용 테이블 혹은 성인 두 명이 누워도 넉넉한 침대로 변했다. 밤에는 4인용 침실, 낮에는 오토 카페가 됐다. 천정 뚜껑을 들어 고정시키면 성인이 서도 될 만큼 층고가 높아져서 차에 앉아도 답답하지 않았다. 차량에 달린 어닝을 펴놓고, 그 아래 캠핑 의자만 놓으면 바로 캠핑을 시작할 수 있다. 또 루프탑 텐트와 차량이 선루프 구멍으로 연결돼 있어 자유롭게 내통 가능했다. 굳이 외부 사다리가 없어도 주차장 한 칸이면 감쪽같은 스텔스 차박이 가능했다. 큐브밴에는 무시동 히터와 전기 배터리, 전기 콘센트와 조명, 텔레비전이 내장돼 있다. 따로 전자렌지와 티포트, 버너, 식기류, 침낭과 베개를 갖췄다. 이제 음식과 옷가지만 챙기면 캠핑 준비끝이었다.(2박 이상을 하면 짐이 많아지니 원터치 텐트를 챙겨 가서 그 안에 짐을 넣어 놓으면 좋다.)
큐브밴을 타고 아이들과 캠핑장, 강원도 숲, 동해안, 한강변, 휴양림을 누비는 중이다. 주말 교통체증을 피해 금요일 저녁에 목적지로 간다. 차에서 밤잠을 자고 눈을 뜨면, 설레는 여행 시작! 캄캄했던 대지에 햇살이 비추면, 오늘의 탐험지가 정체를 드러냈다. 낯선 곳의 자욱한 밤안개와 달큰한 새벽공기는 매번 지친 일상을 위로했고. 맑은 숲과 탁 트인 바다는 일상에 지친 나를 토닥였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도 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걸!” 캠핑지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야채를 씻고, 상을 차린다. 새소리는 바비큐의 감칠맛을 돋우고, 마시멜로우를 장작불에 구우면 생크림마냥 부드럽다. 입 주위에 깜장 수염을 만드는 군고구마도 놓칠 수 없는 별미이다. 캠핑지에서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물총놀이, 보드게임, 숲과 바닷가 탐험을 자유롭게 한다. 때론 나도 혼자서 루프탑 텐트에 누워 책과 뒹굴거린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면 캠핑 사이트마다 추억 쌓는 소리에 정겹다. 캠핑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느린 듯 활기차고, 분주한 듯 여유롭다. 늦은 밤 모닥불 앞에서 가족 장기자랑을 하고, 때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도 한다. 스스럼없이 까부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부부는 함박 웃는다.
아이들과 신나게 공감했으니 공부도 즐겁게 해야 하는 법. 가는 길에 체험지 한 군데를 꼭 들른다. <사교육 대신 제주살이>에 쓴 질문 여행을 실천하는 중이다. 체험지를 아이들이 고르고, 관련 책과 영상으로 함께 공부를 한다. 각자 질문거리를 하나씩 만들고 호기심 탐험을 떠난다. 공부를 즐기는 아이는 공부 정서가 좋다. 머리 아픈 공부를 좋아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하는 부모와 즐겁게 체험하고, 배우는 경험이 쌓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결국, 공감 잘하는 부모가 공부 즐기는 단단한 아이를 키운다. 카니발 캠핑카는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행복할 용기이고, 공감 잘하는 부모가 되겠다는 공감양육에 대한 의지이다. 경쟁 속에 매몰되지 않고, 제 빛깔대로 소신껏 사는 아이, 대한민국 꿈나무들이 모두 빛나고, 튼실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