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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3. 2022

개로 길러진 아이7

아동학대 소설

그리고 그 날은 조 대표의 심기가 많이 언짢았다. 무엇 때문인지 오전 11시부터 쇼팽 피아노 소품집을 틀어놓고, 서준에게는 청소를 시켰다. 고분고분 청소를 끝내자 그녀는 창틀이나 이곳 저곳을 다 손대본 뒤, 어디가 잘못되었다면서 다시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서준씨는 뭘 할때 왜 그렇게 크게 부스럭대죠? 좀 조용히 쓸고 닦고 할 수는 없는거에요? 정신 사나와서 집중을 못하겠네. 난 오늘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는데, 서준씨가 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네요.


애초에 청소는 서준의 일이 아니다. 당연하다. 청소노동자는 따로 있다. 서준은 지역사회사업관리로 배정되었다. 그간 이런 일이 종종 있어왔다. 서준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지 싶어 참아왔다. 대학도 안 간 자신은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고, 경력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거절하지 않았다. 배달 음식의 잔해를 치우고, 비품을 채우고, 자료를 정리하고, 오래된 자료책에서 필요한 것을 꺼낼 때 다른 직원 대신 가고, 하다못해 신발장 내부를 정리하는 것까지 서준이 했다. 그리고 그걸 시켰을 때, 맞은 편에서 상황을 관망하던 지혜 씨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보통은 이런 일을 서준 자리 사원에게 시키지 않는다. 일종의 에둘러 하는 괴롭힘이고, 나가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그것을 느낀 지혜 씨는 본인 일이 아닌데도 불편함을 느꼈고, 그것이 얼굴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리고 시끄러운 정도를 따지자면, 청소노동자가 훨씬 심했다. 육십대 후반이 넘는 그 사람은 화가 나기라도 한 듯한 쿠당탕거리는 발망치와 함께 사무실에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조 지부장의 책상 밑에 있는 쓰레기통을 덥썩 집어서 커다란 쓰레기통에 탕탕 털고, 먼지가 일어나거나 말거나 거칠게 그것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았다. 그 와중에 플라스틱 쓰레기통의 한쪽 면이 조 지부장의 무릎을 스치기도 했다. 그걸 보고도 조 지부장은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서준은 대꾸는 좋지 않다는 걸 체득했다. 내용이 어찌됐든 말대꾸를 하는 행위 자체가 조 지부장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양이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러저러해서요. 어허, 지금 변명하는거예요? 바로 반성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리고 나서는 고래고래, 서준 씨는 이래서 문제다 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좁은 사무실에 있는 인원 전원이 두 사람을 쳐다보게 되고, 몇 초 뒤 그 시선에는 당연한듯이 서준에 대한 비난이 섞였다.


그들에게 조 지부장이 서준의 잘못이라고 우긴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큰 소리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으례 떠올리는 것은, 아, 저 신입이 뭔가 잘못했나보군. 뭔가 실수를 했나보군. 이 정도였다. 그들은 남의 인생에 일어나는 부당함이 무엇인지 파고들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몇 초만에 제한된 단서로 다소 편협한 판단을 마친 다음에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분량을 소화하기 위해 모니터에 코를 박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몇 번이나 그것이 반복되는 사이, 그들의 내면에서 서준은 신입인데 또렷하지도 야물지도 못해서 대표에게 직접 질책을 당할 정도로 큰 잘못을 반복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원래 애초에 그런 것은 중간관리자의 몫이다. 하지만 조 지부장은 직접 서준을 혼내는 것을 선호했다. 왜였을까? 


서준은 나중에 생각했다. 왜 나였어야 했을까?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그렇게 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 자신은 그렇게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어머니가 형과 자신을 달리 대우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됐을 때처럼 서글프고 슬프고 아쉽고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보고 뭔가를 캐치한 그 여자는 이내 그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는 희열에 맛들이고 만 것일까.


그러나 그날 그녀는 영리하지 못했다. 만약 괴롭히는 즐거움을 지속하고 싶었다면 서준을 해고해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허영만이 <꼴>에서 굴곡 많은 인생의 상징이라고 적었던 진한 콧잔등 가로주름을 잡은 채로 서준을 자신의 업장에서 당장 치우고 싶어했으며, 서준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나름대로의 자비를 베풀었다. 그냥 나갈지, 괴롭힘 당하다가 나갈지, 아니면 다음 사람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나갈지. 그 선택지에 대한 불필요하게 문학적인 서사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서준은 묵묵히 서 있었다. 당장 노동부에 부당해고로 전화한다던가, 이렇게까지 된 바에야 화라도 시원하게 낸다던가, 따져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킨다던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 엄혹한 자리를 뛰쳐나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던가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얌전했다. 


어머니가 형과는 달리 자신을 조금도 원하지 않았고, 지금도 원하지 않고, 앞으로도 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시점부터 서준은 계속 이런 상태였었던 것 같았다.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라는 약이 들지 않았던 순간부터 마음에 든 멍이 계속 낫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존재감을 상징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발현하는 아픔에 심적으로 대항하느라, 외부를 향해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불균형한 무게가 쏠려 벨트가 이탈한 뒤 느슨하게 탈탈거리면서 돌아가지만 정작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포도당을 주기적으로 투여하고 일을 시켜도 유연하지 못하게 둠칫대곤 했다. 


그래서 서준은 그날 몇 시간을 더 그 사무실에 있었다. 곧 나갈 것이라는 것을 전해 들은 직원들과의 대화는 맘 편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그날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불법이다. 노동부에 신고하면 한달 치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던가. 하지만 서준은 그저 이 자리를 빨리 떠나고만 싶었다. 어머니가 아닌데 어머니를 만난 것만 같아 도망치고 싶었다. 어머니는 안전하지 않았다. 이 여자도 안전하지 않다. 짐은 많지 않았다. 서준은 골판지 박스에 자신의 물품을 대충 쓸어 담은 뒤, 작업하던 폴더도 그대로 남겨 두고, 자신을 그런 식으로 대우한 사장에게 욕 한번 뱉지 않고,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본 동료들에게도 비난 한 번 던지지 않고 얌전하게 그곳을 나왔다.  

그런 식으로 서준을 해고하고도 조민채 대표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랬다.


서준씨, 그래도 오늘까지의 밥값은 해야겠죠. 나가서 직원들 커피라도 사 와요. 


그거 말고는 쓸 데도 없는 것 같으니까요, 가 생략된 듯한 말이었다. 법인 카드를 내준 것은 이대혁 과장이었다. 그는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어떤 감정도 섞지 않은 중립적인 태도로 카드를 건넸다. 

NGO라는 곳이 그랬다. 월드비전같은 큰 단체는 아니었지만 기독교단체의 후원을 받아 나름 좋은 사업들을 펼쳐나가는 곳이었다. 가난한 아이들, 반찬이 없는 초등학생들, 미혼모들에 대한 정책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그에 따라 모금을 받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같지 않고 어머니와는 다른 경력과 인생역정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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