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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3. 2022

개로 길러진 아이5

아동학대 소설

어머니는 언젠가 건조하게 그런 말을 했다.


널 떼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지금 떼면 다시는 여자 노릇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해서. 그런데 결국 너 낳고 나서 묶긴 했어. 너희 아버지가 워낙..


그 다음에는 웃음으로 떠오르는 단어를 뭉갰는데, 서준은 그 단어가 무엇인지 어른이 되고 나서 유추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피임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덜컥 임신은 됐는데, 성격이 안맞아 새출발하고자 하던 시기였는데 하필이면 네가 들어서서, 그래서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 헤어지지도 못하고 이날 이때껏 살고 있다, 너는 재수 없는 애다,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애다, 나에게 잘하면 약간의 정상 참작은 해 주겠다, 그러니 나에게 충성을 다 바치고 효도해라, 내가 하는 말은 다 실행을 해라, 그러나 내가 한 말이 무색하게도, 네가 아무리 열심히 내 비위를 맞춰도, 나는 네가 너무 싫다, 너는 내가 안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다.


같은 행동을 해도 형이 하면 아이라서 가능한 귀여운 실수지만, 서준이 하면 절대 하면 안 되는 무례를 아무렇게나 남에게 저지르는 못되고 예절이 없는 아이라는 평가가 붙었다. 형이 아이스크림콘을 가지고 가다 뛰는 바람에 그 위에 붙어 있던 아이스크림만 톡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면, 아유 우리 강준이 아쉬워서 어떡해, 하면서 먼저 아이의 마음부터 살며시 만져 주었다. 그러나 그런 위로를 받고도 울상이 되기 시작하는 강준의 표정을 캐치하자마자 어머니는 재차 말했다. 떨어뜨렸어요? 별 거 아니야. 엄마가 하나 더 사줄게. 저기가서 하나 사 먹자 괜찮지?


서준은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어머니가 형에게 했던 그대로, 일단 실수마저도 나쁜 게 아니라 네 나이에는 그럴 수 있지, 그러니까 괜찮아, 툭툭털고 일어나면 돼, 나는 네 편이야. 라는 말을 하거나 혹은 행동으로 증명해 줄 것을 믿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날 어머니는 형에게만 사 주고 서준에게는 안 사준다는 평소의 방침을 거스르고 둘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서준은 아이스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건 형이었다. 하지만 그걸 원한 건,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동등한 애정의 상징,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인, 형에게 뒤쳐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원했다. 그리고 그날의 요청은 쉽게 이루어졌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 변해서도, 서준이 뭘 잘 해서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동창들을 때마침 그 가게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와 오랫만이야, 쟤가 둘째구나 세상에 와 첫째도 너무 예쁘다, 라며 관찰은 아니지만 쳐다보는 지인이 있는데 대놓고 평소대로 할 수는 없었겠지. 그리고 그녀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고작 몇 천원의 추가 소비에 대한 불쾌감으로 보기에는 과했다.


오랫만에 신이 난 서준은 형이 며칠 전 했던 행동을 따라했다. 그때 형은 혼자만 아이스크림 콘을 손에 쥐고, 서준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서준이 조금만 줘, 라는 말을 삼키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리고는 촐랑맞게 뛰다가 서준의 부러움의 대상을 떨어뜨렸다. 서준은 무의식중에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그것을 따라함으로서 어머니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다. 일부러는 아니었다. 실수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부러였다. 

그러나 뒤를 돌아봤을 때, 그녀는 서준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온 신경은 형에게 쏠려 있었다. 오늘 형은 전과 달리 얌전히 콘을 한 손에 쥐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아, 그래? 맞아. 그렇구나. 어쩜 그렇게 영리하고 착할까, 대단해, 희미하게 그런 반응이 들렸다. 길 가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아이스크림콘이 떨어져버린 자신의 사소한 불행을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뻘쭘해진 서준은 콘만 남은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곁눈질로 서준이 자신의 곁에 왔다는 걸 본 그녀는 아이스크림콘이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래서 서준이 알려줘야만 했다. 서준은 알아야만 했다.


엄마, 내 콘 떨어졌어.
아, 그래.


엄마는 대답하면서도 이쪽으로 시선을 바꾸지 않았다. 서준보다 세 살이나 많은, 그래서 돌봄이 덜 필요한 것이 확실한 형에게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형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연인 같았다. 형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엄마를 올려다 본 뒤, 학교에서 만난 친구 하나가 축구를 좋아하고, 이번 주 주말에 만나서 집 근처 운동장에 갈 거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실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서준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엄마 나 콘 떨어졌다고.
그래, 네가 그렇지. 네가 뭐 제대로 들고 가는 게 있니.


이번에도 그녀는 서준을 보지 않았다. 당연히 따라오라는 듯이, 곧 그녀는 형의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엄마, 그래서 그게 그렇게 됐어요, 대단하죠? 어 그랬어요? 정말 그렇네. 아무렴 누가 하는 건데. 역시 우리 잘 생긴 아들은 달라. 그림에 그린듯한 아름다운 모자의 대화는, 어머니의 커다란 몸과 자신보다는 큰 형의 등에 가려서 단어들과 문장이 제대로 들리지 않고 드문드문 끊겼다. 그들은 앞서 걸었으며, 서준이 자신들을 쫓아오고 있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서준은 그들의 관심을 끌어야만 했다. 재빨리 몇 걸음 앞서 뛰쳐나가서, 정면에서 엄마와 형을 마주보았다.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얼굴로 엄마는 서준을, 그리고 형은 천진난만하면서도 의아한, 그리고 의문이 섞인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은 말했다.


엄마, 나 콘 다시 사줘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네 잘못으로 떨어뜨린 거잖아. 주워 먹던지.


형아는 사줬잖아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나중으로 미뤘다. 힌트를 주지 않아도 엄마는 정답을 말해야만 했다. 형과 같은 크기로 나를 사랑한다고 얘기해 줘야만 했다.


그리고 사달라는데 말투가 그게 뭐야, 사주세요, 해도 사줄까 말까하는 판에 그런 따지는 듯한 말투야? 버릇없이.
알았어요, 그러지 말고요. 네 엄마?


그렇게 끈질기게 묻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스크림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정답이었다. 엄마는 서준도 사랑해요. 강준만큼 사랑해요 라는. 그러나 엄마는 서준을 뒤로 가볍게 밀었다. 뒤로 나자빠지며 소리가 났지만, 대단한 상처를 입을 만한 행동은 아니다. 몸의 상처는 말이다.


아 정말, 저렇게 칠칠치 못하다니까. 자빠지기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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