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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3. 2022

개로 길러진 아이3

아동 학대 소설

첫 번째는 서준이 온수역 근처의 지부로 온지 두 달이 지났던 때였다. 그전에는 본부에 있긴 했지만, 지부로 오면 그날부터는 신입과 비슷하다. 일터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고, 여기서 옳았던 것이 저기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데 아니다. 성경에서 코란으로 옮겨올 때도, 불경으로 격변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서준이 ‘열심히만 일하면 사람들이 다 알아줄 것, 진심은 통한다’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도우면 안 된다. 7번 방의 선물 같은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어야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현실이다. 사람들은 오해하는 존재고, 오해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그날 옆 옆자리 직원이 처리할 서류양이 많아 보였다. 지혜 씨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쩌나, 오늘 빨리 가봐야 하는 날인데.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돕기로 했다. 아이를 대신 데리러 갈 순 없지만 일을 분담해 줄 순 있으니까. 덕분에 혼자 하면 저녁 9시까지는 꼼짝없이 사무실에 있어야 할 지혜 씨는 7시30분에 고맙다며 웃는 낯으로 퇴근했다. 덕분에 살았다면서 다음 날에는 커피까지 얻어먹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주였다. 서류에서 실수가 있었고, 지혜 씨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지혜 씨는 본인 잘못이 아니며 도와준 서준이 체크를 잘못한 것이라고 암시했다. 분명히 말하진 않았다. 다만 그런 뉘앙스로 표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 지부장은 그 주장을 믿었다. 지혜 씨는 벌써 2년 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직하고 성실하고 꼼꼼한 직원이었으며, 서준은 본부에서 갑자기 굴러온, 근본도 모르겠고 믿음이 안 가는 사람이었기에 그랬다. 


싸울 수도 없었다. 2대 1이기도 하고, 이미 그렇게 스토리가 정리가 된 마당에 난 억울하다고 해봤자였다. 서준은 억울했지만 그걸 설득할 말발도 없고, 두 사람의 연대를 분석해 파고들 만한 정보량도 없고, 굳이 큰 소리를 내어 제 주장이 강한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기 싫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으로 정리되는 것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나중에 지혜 씨랑 해당 건에 대해 말을 섞어 보니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싸움만 났을 터다. 한 번 실수 카운트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두 번째는 이대혁 과장 때문이었다. 


권력자에게는 책략가, 실세, 최측근이 있다. 유방의 장량이라던가, 유비의 제갈량이라던가, 조조의 순욱이라던가, 수양대군의 한명회라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타케나카 시게하루라던가, 나폴레옹의 베르티에라던가. 그들의 움직임을 그린 책들을 뒤져보면 리더보다 위에 있었던 게 책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시대의 흐름 상 계급에 치여서 2인자에 머물렀지만 결국 본인 뜻대로 하는 게 더 많다. 이대혁 과장이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조민채 지부장은 이과장! 하고 힘있게 그를 불러서는 따로 삼십 분이고 얘기하곤 했다. 업무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은 이 과장의 위치를 가늠하고 몸을 사렸다. 


그런데 그 이 과장의 중요 물품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사라진 날 서준은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서준은 본인 일이 많아도 누군가가 일을 넘겨주면 거절을 잘 못했다. 그래서 혼자 밤중까지 남아 일하는 경우가 잦았다. 문제는 이곳이 무슨 공공기관도 아니고, 야근한 만큼 야근 수당을 챙겨주는 곳도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그런 서준의 노력을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을 못 하나보다, 내지는 남아서 뭐 할 거 있나 라는 의심이 있던 시기에 하필이면 지부장의 최측근이자 실세의 중요 물품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 아빠가 몇년 전에 취직 선물로 사준 시계에요. 그때 당시에 큰 돈 주고 샀던 거에요, 가격도 그렇지만 일단 추억이 담겨서. 낡았지만 저한테는 소중한 거라구요.
어디다 뒀는데 잃어버렸어?
화장실인 것 같아요. 커피 쏟아서 손 좀 닦겠다고 빼서 놔뒀는데. 청소 여사님도 못 보셨다고 했고.
언젠데 그게?
오후 다섯 시쯤.
서준씨 혹시 어제 화장실에서 시계 본 적 있어요?


말투가 무례하다. 서준은 아니라고 답했다. 의심의 눈초리가 오가는 것을 보았지만, 대놓고 네가 훔쳤지 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은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 시선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특히 거절 못해서 일을 쌓아둔 오후 여섯 시에 그랬다. 그리고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이대혁 과장의 일이었기에, 사건은 조민채 지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사건 해결에 기여하진 않았지만, 어느 오후에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서준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은 채, 본인들 물건 간수 잘하고, 제 시간에 맡은 일을 완료하고 정시에 퇴근하여  ‘의심 받는’ 일이 없도록 조처하라고 했다!

그리고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한 달 후에 알게 되었다. 그 날을 전체 회식이라서 이대혁 과장도 서준도 참석했는데, 일하면서 이대혁 과장을 유심히 볼 일이 없었던 서준은 그가 그렇게 찾던 손목시계가 묘사하던 모습 그대로 주인의 손목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거 혹시 저번에 잃어버렸던 시계 아니에요?
아, 이거요?


이대혁 과장은 멋쩍은 듯이 웃더니 덧붙였다. 술이 좀 들어간 상태라 그런지 약간 혀가 둔해져 있었다. 그렇게 찾느라 고생했는데 엉뚱한 곳에 있었다, 어제 집 화장실에서 발견했다, 수전 뒤로 넘어가서 배수구 옆, 세면대 뒤쪽에 있었는데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지 뭐야.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말투였다. 그는 잃은 것이 없었고 서준의 평판만 깎여 있었지만 그 손해를 물을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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