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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3. 2022

개로 길러진 아이2

아동 학대 소설

높은 건물 위에서 거리를 굽어보기 얼마 전, 이서준은 보증금 오백만원에 월세 29만원 관리비가 6만원인 옥탑에 길게 누워있었다. 알람도 없이 잠에서 깬 건 새벽 여섯 시였다. 건물이 허름하다보니 아랫집에서 슬리퍼를 안 신고 쿵쾅대는 소리가 벽을 타고 선명하게 울렸다. 이어 청소기 돌리는 소음이 났다. 잠에서 깨는 건 괴로웠는데, 그 여자가 서준의 얼굴 쪽으로 서류를 던지면서 외쳤던 말이 생각 나 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에 불친절한 사람은 많다. 욕하는 사람도 많다. 그녀가 던진 말이 왜 서준에게 특별했을까. 희망 때문이다. 폐가 제 기능을 못해 에크모를 달고 쌕쌕 숨소리를 내는 사람도, 몇 분 전 트럭에 치였는데도 피를 흘리며 비틀 비틀 일어나려는 사람도, 품위가 있는 사람도 교양이라곤 없는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젊은 사람도 모두 희망을 향한다. 희망은 종교보다 오래됐다. 없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희망은 항상 있어야만 한다.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일 때에도 희망을 상상한다. 누군가에게는 인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다. 서준에게는 이 장소였다.  


이곳은 NGO다. 물을 먹기 위해 하루 평균 6km를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주세요, 전쟁으로 난민촌에 삶의 터전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생필품을 지원해 주세요, 하는 광고를 찍는 곳. 너를 돈 벌게 해줄게, 네 차와 사는 동네를 바꿔 줄게, 어떻게 하면 인기가 생기는 지 알려줄게 하는 사업이 판치는 와중에 감성 지능 만렙의 인문학도가 선택할 만한 곳,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농담으로 흘려지지 않는 거의 유일한 곳, 그래서 서준은 희망을 걸었다. 이곳은 좋은 곳이어야만 했다. 블레이크가 아니라 예이츠의 시여야 했다. 이곳에 친절과 따스함이 없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 그런 것을 찾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서준이 들은 말은 의미가 있었다. 품위있는 모욕은 교양시민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모욕죄로 형사처벌 받기에는 수위가 애매하고, 무례하지만 쌍욕은 아니고, 그러나 수능에서 만점 받는 학생처럼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하여 정답 영역에 꽂아넣어 버리니 살상력은 높다. 추가 점수도 붙는다. 품위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은 무례하지 않다, 웬만해서는 남을 모욕하려 들지 않는다.’는 편견을 주변에 심어왔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대놓고 공격하면 타인들의 수호를 쉽게 받는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는 말을 떠올리고, 그 다음에는 한 쪽을 편든다. ‘저 분이 원래 점잖은데 쯔쯔쯔, 얼마나 상대방이 잘못했으면.’이라고. 


모욕은 공식적이었다. 그녀가 한 말은 서준을 향했지만 들은 사람은 서준만이 아니다. 주변사람들도다. 사무실은 조용하니까. 서준은 시선을 낮추고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바닥에 문이 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다. 그 다음에 이렇다할 대꾸를 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독기도 없이 쳐다보았다. 방어막이 아예 보이지 않자 그녀는 추가 타격을 가했다. 상처입은 표정을 보는 것이 이번 대화의 목적인 걸 보니, 평소 그녀가 서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이 어떠했는지 알만했다. 


여자의 이름은 조민채. 첫 번째, 두번째 화살까지는 꽤 큰 데시벨을 사용했지만, 그 다음에는 일상 대화 수준으로 소리를 줄였다. 과연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활용하는 감각이 있었다. 칭찬할 만했다. 주변의 이목을 끈 다음에는 목소리를 재빨리 낮춤으로서 리더로서의 자제력을 어필하고 지적받는 자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극적으로 연출한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머리를 약간 쓸어올렸는데, 그 장면만 봐서는 모욕적인 말을 들은 쪽이 그녀인 것만 같았다. 서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왜 기분이 더 상했을까. 신기한 일이었다.  


서준씨, 짐 싸서 나가세요.


요즘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하면서 항상 녹음을 켜놓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는 데 있다. 녹음을 하고자 하면 꼭 그 인간들은 귀신같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불러서 괴롭힌다. 패턴도 일정하지 않아 예측이 어렵다. 어떤 날은 조용하고, 어떤 날은 눈을 부라리고, 어떤 날은 쿠션언어를 사용해서 애매하게 기분나쁘게 군다. 


조민채 지부장은 그런 면에서 만렙이었다. 나이는 오십 대 중반이었는데, 어두운 갈색 그라데이션이 돋보이는 블런트 컷으로 자르고, 하얀 시폰 블라우스에 본인의 실루엣에 딱 맞게 재단한 정장을 걸치고 소리도 내지 않고 걸어다녔다. 이 NGO를 하면서 돈을 꽤 긁어모아 목동에 아파트를 산 본부장과 달리, 원래부터 친정이 한남동에 있다고 들었다. 자본이 있다 보니 젊어서 부터 기획사니, 엔터사니 폼 나는 사업들을 굴렸고, 현재도 남을 부리는 위치다. 평생을 남을 부리는 데에만 헌신했다 보니 남을 조종하거나 괴롭히는 스킬이 꾸준히 늘어 왔다.


조 지부장이 처음부터 서준을 괴롭혔던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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