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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1. 2022

개로 길러진 아이 1

아동학대 소설

폭이 사 미터 정도 되는 좁은 골목길을 오가는 차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다녔다. 몇 분전에 팔십대로 보이는 어르신 두 명이 농을 주고받으며 길을 통과했다. 거리는 조용하고 길도 좁아서 그들의 대화는 늘어서있는 빌라의 벽돌과 시멘트에 반사되어 이서준이 있는 곳까지 의외로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그때 술값이 사만 원이 나왔는데 그 자식이 그걸 안 내고 사라졌단 말이야, 라고 백발에 조금 키가 훤칠한 노인이 웃음섞인 얼굴로 뱉었고, 옆에 있는 중절모를 쓴 신사는 앞을 쳐다본 채로 피식였다. 잠깐 백발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건 아닌가 싶어 서준이 움츠렸지만, 그는 곧바로 눈앞의 인도로 고개를 내렸다. 못 본 것 같았다. 인도는 좁았고 멀리에서 자전거가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들과 오십 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흘러오고 있는 사람은 커플이었다. 남색 티셔츠의 오른쪽 상단에 연필로 그린 하얀 하트 일러스트가 박혀 있었다. 그들은 두 노인처럼 서준이 올라와 있는 빌딩을 지나쳐 가지 않고, 맞은편의 사 층짜리의 회색 빌라의 필로티 밑으로 숨어들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키스라도 하나 싶었지만 그들은 담배를 나눠피우고 킥킥거렸다. 여자는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오십 킬로가 간신히 될 만큼 깡말라 있었고, 남자는 머리가 약간 벗겨졌고 키는 170중반에 회색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남자가 뭐라고 얘기하자 여자가 고개를 젖히며 박장대소하다가 담배 연기에 사레가 걸려 캑캑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일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각도로 고개를 꺾었으면서도, 여자는 서준과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서준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있지 않았다. 연습을 많이 했다면 나았을 수도 있지만, 본래 이런 자세를 연습해 보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법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건물과 사람이 미니어처처럼 작아져 있었다. 죽음에 걸맞는 높이가 생물체로서의 본성을 자극해야 하지만,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높이는 우습게도 11m까지다. 그 이상이 되면, 어느 정도의 높이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섭지 않다. 그러니 투신 자살이 인기가 있지. 고통을 느끼기 전에 기절하니 죽는 과정에서 괴롭지 않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장국영도, 러시아의 라푼젤이라 불리던 루슬라나 코슈노바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감독도, 국내 재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그룹의 회장도, 진보 정당의 스타 정치인도 투신했다. 그러니 이런 시도에 한 명을 더한다고 해서, 딱히 큰 일은 아닐 것이다. 서준은 평화로운 죽음을 원했다. 서준에게 사는 것은 벽에서 손을 떼지 않고 걸어도 도무지 끝이 나오지 않는 미로였으며, 이런 미로에서 더 헤메는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러고보니 핀셋에 고정당한 개구리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생물 시간이었던가. 대여섯 명씩 짝을 지어 나누어 모여선 아이들의 손에 개구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황소개구리는 생태계 교란종입니다. 원래 북미에서는 하위종이었는데 국내에 진출해서는 팔자가 피었죠. 소금쟁이, 말벌 같은 곤충은 물론 금개구리, 박새, 심지어 뱀까지 온갖 동물을 다 잡아먹는 최강 포식자가 되어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토종을 없애는 유해종이 되고 말았죠.”


그의 말투는 그러니 이 개구리는 죽어 마땅하다고 단정하는 것만 같았다. 지은 죄도 없는데, 살아남기 위해서 영양학적 관점에서 바람직하도록,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식사했을 뿐인데 그 때문에 인간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죄명을 듣고 나서 황소개구리를 만났지만 그렇게 험악해 보이진 않았다. 손바닥으로 쉽게 감쌀 수 있었고, 인간의 악력을 이길 수도 없는데다, 잡혔을 때 독을 쏜다던가 무력을 행사하거나 날카로운 이빨을 과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데시케이터(Desicator)라는 실험 기구에 개구리를 넣고 에탄올을 흡입하도록, 즉 술취하도록 한 뒤 실험은 시작되었다. 갈퀴가 달린 발바닥, 부드러운 배,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특성의 눈을 조물락 거리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다음에 해부키트를 펼쳐 보이면서 가위로 배를 가르라고 했다. 서준은 손을 멈췄고, 서준 옆에 있던 스포츠머리의 남자아이가 “어쩐지 미안하다”라면서도 단숨에 다리 사이에 칼날을 집어 넣었고, 그 다음엔 날이 잘 안든다면서 몇 번이고 가위질을 해서 피부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 있는 아이들은 입으로는 아, 개구리 불쌍하다 라고 말하면서 눈은 웃고 있었다. 이 불필요하고 잔혹한 과정을 왜 수업중에 해야 하는지 이해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서준 하나였다. 근육을 절개하고, 심장을 분리하고, 주요 장기를 적출하고, 여전히 바르작거리면서 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개구리의 폐가 한계까지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와!’하면서 눈을 반짝였고, 신기한 장면을 한 번 더 봐야겠다면서 이제는 텅 비어버린 개구리의 배 근처를 눌러댔다. 다시 계란 노른자만하게 부풀어오른 폐를 보며 아이들은 ‘터지겠다.’ ‘혹시 터뜨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말들을 했다. 그 모든 일들을 당하면서도 개구리는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다. 


그때의 개구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얇은 칼날로 썰려 나간 피부 껍질이라던가 내부의 장기가 공기에 노출되어 점점 수분이 증발되어 건조해지는 걸 어떤 식으로 생각했을까? 사용하는 장기가 하나씩 떼어져 나가는 걸 보고 무엇을 떠올릴까? 개구리는 저항 다운 저항을 하지 않았다. 침착하고 담담했다.


서준은 몇 년 전 어떤 고등학교 철학교사가 썼던 인터넷 기사에서 어떤 실험에 관한 묘사를 읽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 교사는 해당 학자를 ‘이 시대의 아이콘’이라 추켜세우면서 그가 했던 실험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전기충격을 가하는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개들을 앉힌 다음 한쪽 칸은 도망칠 수 있게 다른 쪽 칸은 도망치지도 못하게 설계했다고 한다. 도망칠 수 있었던 개들은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지 못했던 개들은 심리적으로 망가진 듯했다. 어떤 전기충격을 당해도, 충격을 올려도, 심지어 도망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 주어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고 떨고 견딜 뿐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교사는 그 실험을 같은 경험을 두고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라는 자못 교과서적인 주장을 하기 위한 근거로 썼다. 전쟁 경험이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되레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면서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말 같기도 했다. 전쟁경험을 하고 멀쩡한 사람도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 그건 피해자 개인의 몫이요 스스로의 잘못이다.

해당 실험에 관해 서준이 알고 싶었던 점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댓글을 찾아봐도 서준과 비슷한 궁금증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서준은 궁금했다. 그 실험에 참여했던 개들 중 어느 그룹의 개들이 실험자를 더 증오했을까?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이번에는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봤습니다. 

수기를 쓸까 했었고 조금 썼었는데, 수기도 나름대로 쓰면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모쪼록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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