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자상한 사람과 연애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
#사랑-2
“나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연애를 꼭 해야 하나요”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왜인지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둘 이상 모이면 처음에는 학교나 회사 이야기, 재테크, 여행 이야기 등등하다가 결국 종착점은 연애 이야기로 넘어가고 그때부터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한다. 아줌마가 되고 나서는 그 달달한 얘기를 들으면 주책맞게 설레기도 하고, 원 없이 삽질하던 암흑기가 생각나서 양 손발이 오그라들곤 한다. 연애 전문가는 아니지만, 왕년에 이불 킥 좀 해봤던 경험을 되살려 연애의 위대함을 논해보고자 한다.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분야라면 연애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취업도 진로도 재테크도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가장 애달았던 건 “사랑”이 늘 1순위였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유지하는 게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 알지만 여전히 나는 연애 예찬론자이다.
“이제 연애 안 하려고요. 누구 만나고 시간 쓰는 것도 부질없어요.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닌데”
최근에 만난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맞다! 나도 저런 생각했었는데. 한참 바쁘고 일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퇴근하고 눈감았다가 떴더니 출근할 시간이던 때가 있었다. 내 앞가림하기도 힘든데 수시로 연락하고, 잠이나 자고 싶은 주말에 억지로 씻고 챙겨 입고 하는 거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분명 눈만 마주쳐도 좋을 때가 있었고 상대에 대한 마음이 변한 건 아니지만 내 상황이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곁을 내어줄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하니 사과해야 할 분이 많다. 어떨 때는 서로 호감을 갖고 몇 번 만남을 가진 후 막상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했을 때, 그럴 여유가 없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깊은 관계를 맺기는 싫고 썸의 달달함만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인 관계에서도 만나서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만을 얘기하느라 상대방의 기운을 쏙 빼놓고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했던 날들도 있다. 당연히 그 관계들은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상대방보다는 나의 상황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일 싫어하는 인간 부류가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가 딱 그랬다. 이런 경우라면 자신에게 조금 집중하면서 여유를 찾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에너지가 충전되고 자존감이 회복되어야 상대에게 사랑도 베풀고 예쁘고 다정한 말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전쟁 속에서도 연애는 이루어지고, 지금 신랑을 만났을 때도 이전보다 일이 한가하거나 딱히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았을 까. 두 사람 간의 정서적인 공감대와 관계에 대한 확신이 키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둘 다 나이가 있고 연애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치고 빠져야 되는 순간에 대한 노하우가 완성된 상태로 만났다. 이점은 개인적으로 남편의 구 여친님께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소한 연락, 제삼자의 개입, 취업, 종교, 정치적 신념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어느 정도 합을 맞혀 본 상태에서 진지한 관계를 형성했다. 덕분에 이와 관련된 에너지 소모를 대부분 막을 수 있었다.
연애를 하면서 이 관계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결국엔 제일 핵심이었다.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건지, 더 구체적으로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는 건지, 결혼을 준비할 여건인지, 추진할 의지는 있는 건지.’ 이런 질문을 처음에 꺼낼 때는 너무 어려웠지만, 막상 터놓고 얘기하니 한 일주일간 안 감은 머리를 댄트롤로 박박 시원하게 씻어내는 것처럼 후련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술 한잔 하면서 편하게 생각을 나누고 진짜 말이 통하는구나 하는 걸 처음 느껴봤다.
그리고 연애 초기에 양가 부모님과 서로의 베스트 프렌드를 볼 기회를 만들었다. 원래는 이런 자리는 최대한 피했지만 이번에는 나도 궁금해졌었다. 내가 보지 못한 이 사람의 어린 시절, 대학시절, 사회 초년생 시절은 어땠는지 더 알고 싶었다. 데이트할 때 잠깐 보는 단편적인 부분 외에도 주변 사람도 알게 되면서 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대화할 주제도 늘어났다.
결정적으로 이 사람이랑 오랜 시간 함께해도 좋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고 난 이후였다. 원래 본인이 다니던 여행 루트가 아니라 내 스타일도 반영한 수정된 일정으로 다녔다. 둘 다 일본어도 못하고 8월 초라 일본도 정말 엄청나게 덥고 습했다. 짜증이 날만한 상황도 많았지만 항상 나를 먼저 배려하는 게 느껴졌고, 둘이 땀을 뻘뻘 흘렸지만 손은 늘 꼭 잡은 상태였다.
사실 나의 일상은 육아와 회사 생활로 인해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예전 연애시절 떠올리면서 추억도 방울방울 떠오르고 가슴 한편이 몽글몽글 해짐을 느낀다. 이따 집에서 만나면 꼭 안아줘야겠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두 사람의 신뢰와 존중이 있다면 ‘연애’는 힘든 일상에서 오아시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연애도 좋지만, 자상한 사람과의 가슴 따뜻한 연애가 지친 일상의 활력소가 된다면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