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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Jun 02. 2024

인공호흡(2)

인공호흡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소설도 변한다. 앤서니 호로비츠의 <맥파이 살인사건>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클리셰에 액자식 구성을 더한 새로운 스타일의 고전추리물을 보여준다. 이 소설 속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손자 매튜 프리처드가 등장한다. 소설 속 등장은 허구이지만 그는 실존 인물이다. 아가사 크리스티 협회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한국어판 번역본에 서문을 쓰기도 했다. 그가 쓴 서문처럼 할머니가 창조해 낸 세계관과 클리셰들은 백 년이 넘게 읽히고 있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닐 것이다. 추리 소설의 클리셰와 세계관도 세월이 지나면서 변한다, <맥파이 살인사건>처럼.  


의학도 그렇다. 2003년 8월 피터 사파는 사망했다.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파가 시행한 임상실험의 윤리 문제였다. 사파는 자신의 동료, 실험실 연구자, 의과대학생들을 전신 마취시켜 구강 대 구강 호흡법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모두 자원자였고 아무런 심각한 합병증도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연구 윤리에 관한 규칙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었지만 존스홉킨스의 학장과 외과부장 블래이락은 의과대학생들을 자원자로 쓰는 것을 금지시켰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학생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다는 것이 아무리 자원자라고 포장을 해도 위계에 의한 강압이 작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요즘 말로 아이알비(IRA, Institutional Review Board)를 통과하는 게 불가능하다. 조교나 다른 연구자도 마찬가지다. 황우석 사태를 생각해 보라. 그런데 당시의 금지 이유가 좀 황당하다. 실험 당시에 연구자들이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한 광범위한 항생제 투여가 근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들의 도전정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인공호흡이 필요한 환자에게 더 이상 실베스터법이나 홀거-닐센법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다.


당연히 내가 마주한 세상과 응급의학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쿠벤호벤 팀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의 외과의사 블래이락은 흉부압박만으로도 폐에 환기를 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도유지와 구조호흡이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파는 실험을 통해 그의 얘기가 틀렸다는 걸 증명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본인명구조술은 점점 더 기도유지와 구조호흡보다 흉부압박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2005년 가이드라인부터는 흉부압박과 구조호흡 비율이 15:2에서 30:2로 바뀌었고 2010년부터는 ABC가 순서가 아닌 CAB를 그러니까 기도유지(A) 구조호흡(B) 흉부압박(C) 중에서 흉부압박을 우선적으로 실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좀 웃픈 이야기지만 2000년 가이드라인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군의관 군사교육을 받았는데 그 시기에 한국 군대 교범에는 여전히 실베스터법이 실려 있었다. 지금은 바뀌었기를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인명구조술은 항상 전쟁과 함께 했고 사파의 연구는 군대에서 시작돼 일반 사회로 전파됐다. 응급조치가 필요한 곳은 시민 사회보다는 군대 조직일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21세기에 19세기 인공호흡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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