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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Mar 06. 2022

한계를 딛고 목표를 더 높이

고등학교 07 | 고등학교 2학년, 경주마가 되다.

    2학년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처음 발견한 나의 삶도 시작되었다.


    고작 한 달만에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명목으로 선배, 후배, 선생님 구분 없이 대략 서른 명과 관계를 맺었다. 입을 닫고 있는 시간보다 열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 당시 한 국어 선생님께서는 나를 '홍길동'이라고 불렀다. 4년 육상부 생활로 복도를 어떻게 하면 넘어지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빨리 질주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2층 교무실과 5층 교과실까지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며 끝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침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내가 직접 선정한 '지식채널 e' 영상을 본 다음 추가 설명을 하는 방송 진행자를 맡았고 틈틈이 선도부로서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점심에는 신문부와 설문 통계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그 남은 시간에는 공부도 해야 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은 수상 목록이었다. 도전조차 하지 않아 수상 목록이 독서감상문과 성적 진보상뿐이었던 1학년과 달리, 2학년 때는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다 나가야 했다. 하루는 시를 쓰기도 했고, 다음 날은 수학을 풀기도 했으며 역사 퀴즈 대회도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한 가지. 스포츠 외에는 다른 분야에 관심이 없었고, 혹시 모를 차선책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2년 뒤에 최선책이 될지는 몰랐지만.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성과는 바로 성적 향상이었다. 1학년 당시 학교 한복판에 동떨어진 존재 아니랄까 봐 내신 성적 등수도 거의 가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 내신 성적순으로 배정하던 학습실 인원 선정 기준에 모의고사 성적을 포함하면서 비교적 모의고사 성적이 꾸준히 괜찮았던 내가 사십 명 중 한 명으로 줄곧 선정되었다.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우쭐댈 자신감은 없었다. 공부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낸 것이 처음이라 당시 6층 학습실 배정표 종이 위 내 이름을 손가락으로 훑어보곤 했다. 손가락 끝으로 이름 글자 그대로의 잉크 자국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노력하여 얻어낸 성과가 분명한 상황은 단언컨대 가장 거대한 원동력의 기반이 된다. 1년 전에 비해 공부를 위한 시간의 비중은 매우 줄었지만 집중력은 반비례하여 매우 높아졌고, 그만큼 성적, 특히 내신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 한 과목의 시험을 망쳐도 다음 시험에서 성적을 회복할 수 있는 탄력 또한 가질 수 있었다.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밥을 혼자 먹게 되었다는 거다. 분명 성적과 함께 자존감이 많이 향상되었고, 중학교 당시 가지고 있었던 사교성이 점차 회복된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그 친구들이 자주 나의 반 앞에서 내게 밥 먹으러 가자고 설득해주기도 했다.


    근데, 앞에서 말했듯 저걸 단 한 사람이 혼자 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내가 분명 나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더 가혹하게 다뤘다. 학교 기숙사 지침은 모든 학생이 0시 취침, 새벽 6시 반 기상을 권고한다. 그러나, 나는 2학년 봄부터 새벽 1시 추가 자습을 한 뒤 손목에 진동 스톱워치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학생회 업무와 독후감 작성 등 간단한 업무를 했다. 뭐, 해봤자 손바닥만 한 노트와 볼펜을 주머니에 몰래 들고 와서 화장실 전등에 비춰가며 무언가를 끄적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좋아하던 음식이 나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컴퓨터실이나 도서관에 처박혀 아침에 적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몰아서 해야만 했다.


    그러니 더 이상 밥을 혼자 먹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과 체력으로 시험 문제라도 하나 더, 업무 조그마한 거라도 하나 더 해결하는 것이 내게 더 중요했다. 

  



    2학년 겨울방학식. 그때도 어김없이 학생회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바빴다. 후배 다수가 나를 '바쁜 사람'이라 기억했고, 친구들은 '상은 네가 다 받는 것 같다'며 장난스레 타박하기도 했다. 

    

    1년 사이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사교적이었으나 나 자신에게는 냉혹하게 변했다.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꾸중이라도 하는 듯이 점심시간에 식사 대신 공부를 하거나 새벽 자습 시간을 더 늘리기도 했다.


    성적은 당연히 올랐다. 올라야 했다. 경주마처럼 달렸고 그만큼 몸은 약해졌다. 매순간 지쳐서 살이 빠지는데, 빠지는 살 때문에 면역은 나빠졌다. 독감과 감기를 달고 살았을 정도로 나를 태워가며 얻은 건 대략 1.5등급이 향상된 내신 성적과 몇 배로 늘어난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이었다. 

    



    학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이룬 상황 속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항상 갈망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바쁜 사람으로 기억되었지만, 한 번도 '대단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들었어도 빈말이라며 흘려들을 것이 뻔했다. 매일 나는 나의 한계선을 밟아 딛고 선 높이만큼 목표치를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고작 상장 여러 장, 역할 여러 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그리고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맞는지조차 몰랐다. 자습시간이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대부분 교복도 못 갈아입은 채로 쓰러져 자기 바빴지만, 한 번도 안도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이미 성적으로 등수(이면서 동시에 사실상, 서열)를 매기는 시험과는 달리 교내 활동들은 학생들 중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향상된 성적, 길어진 학교생활기록부 내용, 나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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