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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Mar 06. 2022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고등학교 06 | 나는 매섭고 두려웠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전교 임원 모집이었다. 전교 회장과 부회장만 선거로 선출되었으며 기획부장, 선도부장과 같은 전교 임원 선발은 학생부 선생님들 관할이었다. 


    복도 한가운데 서서 누가 보든 상관도 안 하듯 거대한 전교 임원 모집 공고 종이를 줄기차게 째려봤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나를 원할 만한 부서가 어디인지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답은 선도부였다. 1학년 선도부로 활동한 경력과, 선도부 임원에게 바라는 점이 '반듯함'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축제를 기획하지도 않고, 회의를 주관하지도 않으니 아이디어와 활발함은 선도부 임원에게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들 나처럼 생각할 게 눈에 훤했다. 

    

    그렇게 나는 선도부 활동 기획서 에이포 10장 분량을 제출했다. 우선 양에서 차원이 다른 지원서를 제출하겠다는, 아주 우렁찬 두드림이었다. 종이 가득 이 학교의 선도부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채워 넣었다.


    1차 서류 심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 오직 5명이 2차 면접 전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굳이 1차 서류 심사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다. 선도부 임원은 인기가 적을 거라고 예상했고, 지원서 열 장 정도면 나를 합격 안 시키고는 못 배길 거라 생각했다.


    근데 예상을 빗나갔다. 선도부는 여느 다른 부서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지원자 수가 많았고, 나는 1차 서류 심사에 합격했다. 아, 나의 합격은 다른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간 거다. 그 누구도 합격자 명단에 있는 이름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명이인만 3명인 학교. 나를 제외한 두 친구가 대리 축하를 받았다.    



 

   교실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와 게시판에 있는 전교 임원 1차 합격자 명단을 찬찬히 살펴보니 최종 합격은 물 건너간 듯했다. 공부를 매번 잘하는 친구와, 학생부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는 학생들이 즐비했다. 이 친구들과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보다 면접 준비에 열중해도 떨어질 상황을 예상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이왕 부리를 쳐들었으면 알에 흠집이라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떨어지더라도 할 말은 다 하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맞다. 혼자 있으니 스스로 해야 했다.


  



    면접 당일. 선도부 임원에 지원한 다섯 명이 교무실 앞에 모였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다. 그중에 내가 가장 긴장했다. 발에 슬리퍼가 아니라 탭슈즈를 신겨주었다면 어떤 박자에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달달 떨렸다. 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우리를 맞이했다. 좁은 책상 위 종이 조각 5개가 올려져 있다.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다. 그러나 주변 반응을 보니 친구들은 예상한 듯했다. 선도부 면접은 여러 부서들 중 순서가 가장 늦었고, 분명 모든 부서의 면접 유형은 같을 게 뻔했다. 나에게는 면접 형식에 대해 알려줄 친구가 없었다는 게 함정이다.


      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내가 집어 든 쪽지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그걸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답변 시간은 제한이 없었고, 침묵이 이어지던 주변 친구들과 달리 나 혼자 20분 동안 떠들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날도 대화를 한 마디도 못 했고, 누가 나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차려주는 건 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저는 남의 말도 잘 경청하는 사람이에요. 전교 임원에 적합하죠?>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형식상 고개를 끄떡거리던 친구들은 초반과 달리 10분이 지나자 허공을 보기 시작했다. 대략 '오늘 저녁 메뉴가 뭐였더라'하는 표정이었다. 급식 같이 먹을 친구를 찾는 실력으로 이미 분위기는 재빠르게 파악했지만 괜찮았다. 아직 지원서 5 페이지 내용 남았고 아무도 나를 못 멈췄다. 나는 폭주기관차, 여기는 내 무대였기 때문이다.


    5명의 답변이 끝난 시점에서 추가 질문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손을 들고 '이 학교에서 선도부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5분 더 말했다. 끝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말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거의 일주일치 대화였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같이 후일담을 나누던 4명 사이를 가로질러 교실로 돌아갔다. 같이 있어봤자 할 대화는 없었다. 나는 그저 오랜만에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는 대화를 해서 기분이 새콤달콤했다. 좋았다는 뜻이다.



 

   저녁시간. 면접은 이미 2시간 전에 끝났고, 면접관은 3명. 점수 취합이 돼도 이미 끝났을 상황이었기에 전교 임원 면접을 보았던 학생들은 선생님께 결과 발표를 요구했다. 물론 나는 교실에서 가방을 싸고 있었다. 그래야 재빠르게 다른 친구들과 발걸음을 맞추어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날 저녁까지 발표되지 않던 결과는 다음 날 8시가 되지도 않은 이른 아침에 소문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면접 점수 집계 종이를 교무실 책상에 두고 퇴근한 선생님 덕분인지, 악착같이 결과를 확인하려는 학생들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신나서 복도를 질주하는 친구들의 발소리 사이에서 같이 면접을 봤던 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등교하는 친구와 대화하는 듯했다.



    - 야, 임원 결과 나옴?

    - 응 그 일본어과 걔가 됐어.

    - 그걸 어떻게 아는데?

    - 쌤 책상 위 종이에 걔 이름이 동그라미 쳐져 있었거든.



    동그라미.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의 동그라미는 분명 긍정적인 뜻이다. 여기는 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배우기는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이며, 면접 대상자 중 유일한 일본어과였던 나의 이름 위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는 것.


    머리 위에 전구 하나가 반짝 켜졌다.


    아침 자습시간이 끝나자 학생부 선생님께서는 볼펜 자국 가득한 종이 대신 말끔하게 타이핑된 종이를 게시판 위에 부착하셨다. 그 종이에는 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획부 차장합격한 같은 친구와 이미 학생회장 2년 차인 같은 친구랑 같이 합격자 공지문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보통의 학생들이 하지 못하는 스펙을 쌓게 되었다는 점보다 적어도 같은 반 친구 두 명과 같이 무언가를 1년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기뻤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전교 임원이 교차로 지원할 수 없는 업무를 제외한 모든 곳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전교생 중 한 명을 선발하는 업무에도 합격할 정도로 수많은 합격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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