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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Mar 06. 2022

내가 선택한 외로움

고등학교 05 |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야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나를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것. 이거 하나로 나는 학교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중학교 때까지 해왔던 활동들은 쉬는 시간의 짧은 레슬링과 점심시간의 도둑잡기 놀이뿐. 무언가 특출 나지 않았던 나는 사교성이 뛰어난 친구, 영어 회화를 정말 잘하는 친구, 해외에서 살다온 친구들의 존재감에 천천히 학교 구석까지 밀려왔다.


    전교 160여 명. 이틀에 한 번씩 친구들에게 존재감이 밀리다가 일년이 채 지나지 않은 순간, 학교 한 가운데에 홀로 남겨졌다.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같이 다니던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했고, 나보다 모든 것이 뛰어나 보였다. 서로가 힘든 1학년 생활이었던 만큼 우리는 서로를 친구보다 경쟁 상대로 보곤 했다. 주말에 만나서 놀기는커녕 시험기간만 되면 서로가 날카로웠다. 하지만 항상 뒤처져 있던 내가 그 친구보다 더 나빴다. 점점 학교에서 고립되는 느낌을 받았던 나는 그 친구가 스스로 내 곁에서 떠나가게 했다. 인생에서 가장 나쁜 짓이었다.



    

    그 당시 어리석었던 나는 나의 곁을 떠나간 그 친구가 바로 다음 날부터 다른 친구와 단짝이 되는 걸 보고 무색해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와 달리 공부를 더욱 잘하는 그 친구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도. 식사 시간만 되면 누구랑 밥을 같이 먹어야 할지 고민하며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그건 어느 수학 문제보다 두려웠고, 국어 비문학 지문보다 복잡했다.


    그렇게 1학년 겨울 방학식. 혼자 다닌 지 한 달이 되어갈 무렵 반 친구들에게 전학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는 것에 다다랐다. 평소에 대화를 잘 안 하던 친구들까지 나의 주변에 모여 나의 전학을 만류했다. 이야기만 들으면 '내가 여기까지 혼자 내몰려야 너네들은 내게 다가오는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 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마치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다가 기지개를 핀 듯이 시원했다. 말속에 숨은 뜻을 찾기 전에 걱정의 눈과 만류의 입들이 내게 진실을 보여주었다. 일 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25명은 서로 따로 다니는 듯해도 투명하고 굵은 띠 하나에 서로가 함께 있는 듯했다.


    


    이런 친구들이라면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남은 시간 2년. 까짓것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판도 존재하지 않고, 실패자라고 낙인찍은 적도 없음에도 도망치듯이 쫓겨나는 게 억울했다. 심지어 이렇게 좋은 친구들도 많은데, 여기서 전학을 가버리면 과연 나는 미래에는 얼마나 더 도망치게 될까 싶었던 거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중간에 첨언하자면 일반고가 외고에서 도망쳐 나올만한, 쉬운 곳이라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 많아 중학교 때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곳을 의미한다. 짐작되겠지만 중학교 당시의 나와 고등학교 당시의 나는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지킬 앤 하이드' 수준이다. 진짜로.) 

    그리고 일반고에서나, 외고에서나 고등학생들이 고생하는 건 매한가지다. 안 그렇겠는가,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라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돌아보았다. 대략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나를 그렇게 잘 알고 있었냐 묻는다면 그게 아니라 해온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물론 도전은 했다. 그런데 그 도전이 성공한 경험이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럼 그 실패 요인을 살펴본다. 너무 쉬웠다. 내가 생각해도 그 사람들이 굳이 나와 무언가를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환경 속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친구들과 내가 도전조차 해보지 못한 것들을 이미 다 성취해온 친구들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내세울 것이 없던 나는 주눅 들어 버렸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정말 간단했다. 


    일단 해본다.


    '으이구 그걸 누가 몰라'라고 말한다면 정말 몰랐다. 교과목 선생님 다수가 내가 1학년에 재학하는 것조차 몰랐을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내가 얼마나 존재감이 없이 1년간 살아왔는지 증명하기 위해 기억 속 1학년의 유일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나는 매일 아침 기숙사 방을 떠나기 전에 문 앞에서 눈을 꽉 감고 기도했다. 무교임에도 매일 빌고 빌었다. 바란 건 하나. 무탈한 하루가 되기를. 더 이상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지 않기를. 그렇게 빌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누가 지옥으로 끌고 가는데, 내 두 다리는 뭐했는가 싶은 거다. 누구도 나를 포박하지도 않았는데, 걸어 나올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수신인도 없는 그 기도가 어쩌면,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단 해본다.


    우선 존재감을 살리면서 나를 학교에 알려야 했다. 1학년 겨울방학이 되었고, 내 두 손엔 새 학년을 시작하기 전에 진행되어야 하는 온갖 연례행사의 공지문들이 쥐어졌다. 독서감상문 대회부터 전교 임원 모집까지. 지금까지 해오던 수능과 내신 공부를 집어던지고 나는 온갖 지원서를 써 내려갔다. 

    2017년 2월. 국어 모의고사 문제집을 피지도 않은지 일주일. 열 차례 넘게 수정한 전교 임원 지원서 최종본을 선생님께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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