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겠노라 약속했던 남편을 믿고 30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코 시국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남편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약속을 못 지킨 남편은 애써
미안하다며 진주 목걸이라도 사주겠다고 별별 사이트를 다 검색한 후 맘껏 고르라고 했다.
백진주? 흑진주? 못난이 진주? 천연 진주? 담수진주? 종류도, 색깔도, 디자인도 엄청 많았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의한 보도에 따르면 천연 금나비 조개에서 약 10년간 키워진 천연산 진주 가격은
12만 파운드? 매매 유효 가격은 25만 파운드(한화 4억 3천만 원)로 추정되는 것까지 나와 있었다.
가짜 진주(만원)부터 진짜 진주(4억)까지
천차만별의 진주 가격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복이나 홍합을 먹다가 진주를 발견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자연산 굴에서 진주가 나올 확률은 로또 당첨만큼 어려울 수 있지만 행운처럼 쉬울 수도 있다. 혹시나, 자연산 진주를 발견했다면 손대지 말고 직사광선을 피해서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가 가공하면 된다고 하니 참고 바란다.
진주는 건강, 장수, 부를 상징한다.
결혼 후 30주년을 서양에서는 진주혼식이라 하여 진주를 선물하기도 한다. 진주 세트를 맞춤 주문하려 했으나 4월 5일(결혼기념일) 안에 도착하는 게 없어 동네에서 직접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폭풍 검색만 하고 말았다.
결혼 30주년을 프랑스 파리도 아니요,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도 아니며,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도 아니고, 충청도 작은 마을에서 보내게 되었다. 진주혼식이라는데 진주 목걸이는커녕 둘 다 컨디션이 별로다. 남편이 심장 쪽 처방약을 한 달쯤 복용했는데 트러블이 생겨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시 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운명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2022년 4월 5일 오후 3시 무작정 묻지도 않고 병원 진료를 잡아놓은 남편이 못내 서운했다. 진주 목걸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안 사겠다 우기며 결혼기념일에 병원 진료를 가겠다는 남자와 안 가겠다는 여자의 30년 내공이 하루아침에 삐그덕거렸다.
결혼기념일 그게 뭐라고?
그날 꼭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나? 약을 바꾸던지? 빼던지? 그냥 병원에 혼자 다녀오던지? 맘대로 하세요... 볼멘소리를 해놓고도 영 기분이 찜찜하다. 냉전이 시작되었다. 급 한랭전선의 기류가 흐른다. 침묵시위다. 꽃샘추위로 눈이 오는 날처럼...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불편한 마음으로 각방에서 냉전 중이다. 점심밥을 굶으며 서로 대치중이다. 꽃피는 봄날인데 집안은 고드름이 열릴 듯하다. 살 얼음판을 다니듯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방안에 콕 박혀있었다.
그동안 병원을 오고 가며 혹한 겨울이 지나갔다.
봄볕을 이제야 즐기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병원 진료일로 잡힌 날이 결혼기념일이라니...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조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남편은 내생각을 따라 잡지 못했다.
30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듯 답을 찾지 못해 냉전중이다. 그날 만은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애써 내 마음이 남편을 밀어내고 있었다.
급기야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목요일(4월 7일)로 병원 일정을 바꾸었으니 결혼기념일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갑자기 '야호'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
결혼기념일 별 다른 스케줄도 없지만 진료일정을 바꾸었다는 말에 마음의 빗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살짝 당황한 마음이 들킬까 봐 조심조심 그제야 "밥은? 나갔다 올까?" 괜히 말을 먼저 건넨다.
남자란? 여자란? 알 수 없는 동물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동거인이다.
냉전이 조금 풀려갈 즈음
4월 4일 저녁 예고 없이 나타난 큰아들이 반차를 쓰고 아산으로 내려왔다. 분위기가 풀렸으니 망정이지 아들은 집안 속 살얼음에 무심코 풍덩 빠질 뻔했다.
4월 4일 밤 12시 땡! 세상에 이런 일이... 작은아들의 서프라이즈! 이건 뭐? 도깨비도 아니고 이 시간에 택배가 도착하도록 미리 주문을 했다고 한다.(택배 아저씨의 총알배송이 미안하고 고맙다)
휴전을 알리는 블랙박스다.
폭탄 아니고 선물이란다. 놀 란마음 쓸어안고 박스 개봉 박두다. 세상에나 파란 장미 비누공예 장미꽃이 향기를 폴폴 담고 있다. 분홍색 케이스 안에 반짝반짝 은목걸이가 짠~~~ 역시 둘째 아들의 센스 최고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터넷 주문 택배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루 종일 얼었던 마음이 스르르 마법처럼 녹고 있었다. 작은 성의에 감동 또 감동 중이다. 두 남자 얼떨결에 막내에게 한방 훅~~ 맞은 듯 조용하다. ㅎㅎ 큰아들이 갑자기 카드를 내민다. "이걸로 사고 싶은 거 사세요." 한도액은 십만 원. 남편도 뒤질세라 통장에 진주 목걸이값을 두둑하게 보냈다.
난 아무래도 속물근성이 있다.
4월 5일 새벽 1시 30주년 결혼기념일은 냉전에서 휴전되었음을 알린다. 탕탕!!
두 아들이 진주보다 귀하게 빛나는 삶을 살아주고 있으니 이미 진주를 30년 이상 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가치를 굳이 따지자면 4억을 호가하는 액수가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 함께해준 남편의 사랑과 애씀도 알고있다.
나도 남편통장에 백억 같은 백만 원을 이체해주었다. 서로 주고받고... 냉전이든 휴전이든 함께 할 수 있으니 봄 하늘에 빛나는 진주를 만난 것이다.
잘 살아왔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아쉬움도... 이제 우리 부부만 잘 살면 된다. 부부로 30년 정도 살고 나니 인생 뭐 별거 없다.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온 날들 토닥토닥 서로를 위로하며 인격적으로 대우해주고 챙겨주면 그것뿐이다. 오랜 시간 서로의 거친 부분들이 깎이고 깎이여서 맨질맨질 해졌다.
31년 전,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 독립기념관에 놀러 갔었다. 수줍음 많았던 연애시절을 기억하는 남자와 여자는 그곳에서 사진사에게 인증숏을 무심코 찍었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호두과자 한 상자에 마음을 열고 "나 잡아봐라~~를 외쳤던 그들은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다.
2022년 4월 5일
30주년 결혼기념일 그곳에 갔다. 여전히 우리는 함께 였고 호두과자를 사 먹으며 그날을 회상했다. 까마득한 과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그 시절 젊음이 있었고 , 설렘이 있었고, 봄빛이 너무 좋았던 것처럼 오늘도 봄빛이 눈이 부시다.
호두과자를 나눠먹으며 라테를 마신다. 서운했던 마음이 채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이 준 카드로 케이크를 샀다. 아끼고 싶은 큰아들의 비장의 카드가 너무 이쁘다. ㅎㅎ
나무 심는 날로 결혼기념일을 정했건만 나무 심는 날이 휴일에서 빠지고 그저 평범한 날 일상이 되었다.
진주 목걸이 받았으니 또 야무지게 살아줘야 하려나??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