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칼리다스 레지던스에는 한국에서 파견 나온 주재원 가족들이 대부분 살고 있다. 72층 랜드 마크로 호텔 투숙이 가능하며 매일 호텔처럼 청소를 해주는 고급 레지던스라 1년 넘게 대기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서울 강남에 8 학군이 있다면 베트남 하노이 경남 칼리다스는 학구열이 높고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유명하다. 월세가 비싼 만큼 누구나 아무나 살 수도 없다. 서비스도 호텔급이니 럭셔리한 삶이라 하겠다.
통유리로 보이는 뷰가 예술이지만 창문이 없고
48층이 로비이며 그곳에서다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60층 이후까지 올라가야만 한다. 처음엔 나도 귀가 먹먹하고 식은땀이 절로 난다.
일주일에 두 번 창의력 논술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면 오전부터 외출을 삼가고 몸이 피곤하지 않도록 쉬어 줘야만 90분씩 두타임 창의력 논술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의 수업은 처음이라 그런대로 적응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띵 똥!
생각의 날개를 달아주기 전 내 발에 날개를 달아야 했다. 아마도 오래전 한국에서 엘리베이터에 10분 넘게 갇혀있었던 트라우마가 남아있기도 했고 쉼표를 찍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지만 여전히 불안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자주 오고 가다 보니 익숙해졌고 고소공포증이 다소 둔화되었다.
삶은 늘 내면과의 싸움이며 몸 건강, 마음건강을 스스로 지켜야 함을...
"안녕하세요?"
도레미파 솔 정도의 목소리로 뒤끝을 올리며 인사한다. 가끔은 한 손을 흔들며 미소를 가득 담고...
부끄러움이 많고 말수가 적었던 케이는 인사 대신 커튼 뒤에 숨어있다. 수업하기 전 케이를 찾아야 수업이 가능하다. 커튼 뒤에 있는 줄 다 알지만 찾지 않는다.
일단 수업 준비를 해놓고 기다려도 영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일 때쯤 케이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 오늘이 두 번째 수업인데... 그냥 가야겠어요." "맛있는 초콜릿도 준비해 왔는데..." "케이는 언제쯤 나올까요?"
커튼 뒤에서 꼬물꼬물 나오더니 "선생님 수업할게요. 초콜릿 주세요" " ㅎㅎ 요 녀석 초콜릿 소리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채 10분도 안되어 맘대로 일어나 물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동화책도 들고 나온다.
온우주를 다 뒤집어엎어도 하나뿐인 소중한 나 ,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명체인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이야기해주려는데 자꾸만 딴짓을 하느라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의자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름이 뭐예요?
좋아하는 음식은?
좋아하는 색깔은?
학교는?
친구는?
싫어하는 것은?
취미는?
특기는?
나이는?
잘하는 것은?
나의 꿈은?
10가지넘는 질문을 채우는 것도 힘들어한다. 오늘 수업은 자기소개로 끝냈다. 여기까지... 수업료를 선불로 받았고... 소개를 받아 왔는데... 나는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겨우 40분을 지켜보다가 일단 수업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다음날 카페에서 케이 엄마를 만나 상담했다.
"죄송해요, 수업이 불가능합니다. 수업료는 다시 돌려드릴게요" 난 단호하게 거절을 밝혔다.
케이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네? 선생님, 어떡해요.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5분, 10분도 못 앉아 있는 초등학생 수업은 제가 자신이 없어서요 내년쯤 다시 수업하는 걸로..."
나도 말끝을 흐렸다.
"혼자 자라서인지? 해외에 나와서인지? 말수가 적어서인지? 먹는 것도 욕심이 없고? 그저 책만 읽어요. 그래서 글쓰기 수업과 국어수업을 병행하면 좋을 듯했는데... 아들 하나라 저도 걱정이 많아요"
"조용한 성격 탓인가? 말썽도 부리지 않고, 어지르지도 않고, 혼낼 일이 없어서 편하게 육아를 했거든요. 선생님이 다녀가 신후 아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선생님과 수업하고 싶다고..."
너무 간절한 케이 엄마의 눈빛에 나도 아들 둘을 키워낸 엄마였기에 매몰차게 거절을 할 수 없었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만 수업하려는 게 아니라 아직은 엄마와의 접촉도 소통도 더 필요해 보였고 10살 케이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할지? 막막했었다.
교육자로서 케이를 포기하는 경우 케이는 상처받을 수도 있고, 자존감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결국 난 매주 수요일 오후 케이만을 위한 1:1 수업을 하게 되었다.
교육은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때로는 부모의 무관심과 사랑이 적절하게...
띵똥!!
케이 엄마와의 상담 후 수요일 수업을 위해 찾아간 칼리다스 62층 의자에 앉혀 두기 30분을 성공하기 위한 나의 필살기를 공개한다. 케이는 다행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터라 워밍업 시간을 그림 그리기로 유도했다. 무지 종합장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수업할 내용을 질문과 대답으로 흥미를 이끌어 나갔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케이를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화장실에 자주 가던 습관도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고 자주 움직이고 집중하지 못하는 케이에게 나는 상상력을 가르쳐 주었다. 선생님이 오면 인사한 후 의자에서 내려올 수 없다. 최소 30분 이상 우리는 함께 그 약속을 하고 상상의 나라로 떠났다.
"자~지금 여기는 깊은 바닷물이 가득 찬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거다. 너와 나의 의자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단 두 개뿐이고 구명조끼처럼 물에 뜨는 의자란다. 선생님과 너만 살아남았고, 우리는 30분 동안 미션을 완수하면 의자에서 내려가거나 헤엄을 칠 수 있단다."
발을 슬쩍 내려놓으며
"앗 차가워! 바닷물이네 너는 괜찮니?"
"흐흐흐 네.. 의자에 올라왔으니 안전해요"
"자~~ 선생님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아보렴..."
"아하 이렇게요" 두 다리를 올려 포갰다.
"네가 좋아하는 졸라맨을
스케치북에 맘껏 그려 보아라"
"국어시간 아니고 미술시간 같아요 ㅎㅎ
선생님, 논술 수업한다면서요"
"응, 지금 벌써 시작했어~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며 나의 생각을
틀에서 빼내면 그게 바로 논술이란다."
"사람들은 모두가 틀이 있어. 우리는 그 틀을 깨고 나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글쓰기를 할 거야~힘들어하지 마~ 선생님은 너와 함께 생각을 모아 모아 틀 밖으로 빠져나올 때 너를 도와줄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 올 예정인데... 케이 너 할 수 있겠어? 네가 나를 합격시켜줘야 내가 올 수 있단다. 네가 싫다 하면 선생님은 안 올 거야 나는 너를 만나서 잘 놀고 싶어졌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