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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Sep 16. 2022

카구리를 아시나요?

똑똑!!

늦은 점심을 먹은 터라 저녁을 패스하려 했다. 그런데 8시 45분 난 싱크대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왜?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 만한 게 없다. 싱크대 속에 라면이 있을까? 혹시나? 내가 사지 않아도 가끔 있기도 다. 어허! 정말 있다. 딱 한 개 노란 봉투에 카 구리라고 쓰여있다. 이게 뭐지? 일단 끄집어 내렸다. 라면은 국민간식이라며 어떻게 라면을 끊을 수가 있냐며 한 두 개씩 사 온다.


아들은 일반 라면 말고도 늘 새로운 맛을 찾는다. 안 먹어본 것들 신세계를 좋아한다. 엄청 매운맛 라면도 있었지만 오늘은 카구리로 정했다. 뒷면에 자세하고 꼼꼼한 설명이 있어서 일단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조리법대로 따라 하고 나니 카레맛 너구리가 완성되었다. 귀여운 카구리 둥둥 떠있고 카레향이 퍼진다. 그릇에 담아 맛있게 드십시오. 친절하게 쓰여있었다.


카구리를 처음 맛보았다. 카 구리를 먹는 동안 갑자기 떠오르는 제자가 있어 피식 웃고 말았다. 오래전 한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과외 수업을 받던 제이다. 카구리 덕분에 잠시 과거 속으로 떠나보기로 한다.




 "선생님 오늘 수업은 뭐예요? 커리큘럼을 알려주지 않고 창의력 논술 과외수업을 할 때였다.


깜찍하고 귀엽던 제이(가명) 에게  "응, 오늘 수업은 두 가지인데... 설명문 쓰기와 그림으로 표현하기야" 


"에이 재미없겠다. 다른 거 해요"갑자기 방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방문 손잡이 잠금을 눌렀다.

그 순간 놀랬다. 초등 6학년 제이는 언니의 수업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가르치게 된 초등학생이었다.


언니(중학생)조용하고 순하고 착한 반면 둘째인 제이는 생각이 통통 튀는 아이였다. 늦둥이 남동생에게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질투심 많은 둘째였다. 첫째와 막내 사이에 낀 사춘기 말이다. 왜? 재미없는 수업을 준비해왔냐며 생트집을 잡고 있다. 세상에... 이런 제자 처음이다. 많이 당황했다.


똑똑!

제이 엄마는 간식을 가져왔다며 방문 앞에서 노크를 조심스럽게 했다. 제이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엄마, 안 먹어요. 끝나고 먹을게요 "하더니 급기야 책상 뒤에 있던 침대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에휴~~ 나는 과외선생이고 제이는 이제 한 달도 안 된 애송이 제자인데 난 어찌해야 할까?  제이의 돌발 행동에 놀라긴 했지만 난 경력 10년 차 과외 선생이 아니던가? 의연하게 가방 속에서 라면 한 봉지를 책상에 꺼내 두었다. 화가 난 마음을 누르고 눌러 크게 날숨을 들이마시고 침묵했다.


준비해온 라면을 가져온 공책에 연필로 쓱쓱 스케치를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화내고 혼내기보다는 일단 침묵하거나 무관심한 듯 내버려 두는 게 현명함이다.


내가 조용히 그림을 그리자 제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살며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지금  뭐 하세요?"

"응? 그림 그리고 있는데..."

"설명문 라면서요 라면이잖아요?

"그래 , 라면 끓이는 방법을 세세히 그림과

글로 적어 놓은 것이 설명문이야"

"아~~ 진짜요?"

"요리책, 핸드폰 사용법 , 약 처방법 등..

정보를 손쉽게 알리는 글 그리고

매일 공부하는 교과서도 설명문이란다."


제이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연필을 잡고 그림솜씨를 뽐내며 세밀하고 자세하게 라면봉지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난 잠잠히 기다렸다. 앞면을 다 그린 후 뒷면에 도전했다.


라면 끓이는 방법과 요령을 자세히 옮겨 적었다. 설명문이라고 말하면 왠지 딱딱한 느낌이 든다. 정보전달이 목적 있어서 그렇지 우리 생활 속에 설명문은 많기도 하고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야만 부품 조립이나 물건들을 만들 수도 있으니 설명문은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명문의 구성은 처음 부분에는 관심을 유도하고 , 설명할 대상을 소개로 시작하여 글을 쓰게 된 동기

또는 목적을 제시한다. 중간 부분에는 여러 가지 설명방법 (분류, 분석, 비교, 대조, 예시, 정의)을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끝부분에는 요약, 정리, 마무리하면 된다.


"선생님 다했어요 이렇게 쉬운 게 설명문이구나"

"그래 잘했다!  이제 수업 끝내자"

"벌써요? 조금만 더 해주세요"

"이미 약속한 수업시간이 지났으니

 수업 후 라면 끓이기에 도전해보도록 해"


"만약 다음 주에도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

행동을 하거나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한다면 난 다시는 너를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며. 배우려는 의지와 마음과 자세가

없다면 가르칠 이유가 없단다."


울먹울먹 입을 삐쭉빼쭉하더니

" 다음 주에 꼭 오셔야 해요~"


그 후, 제이는 나와 국어수업을 하는 3년동안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다. 제이도 나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나도 둘째라서 제이가 중간에 끼어있는 느낌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언니보다 잘하고 싶고 동생보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제이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사도 했지만 난 먼길을 마다하고 제이를 만났고  수업을 하는 동안 정이 들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고 큰상을 타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아쉽게도 나는 베트남으로 오게 되었고, 그 아이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과 제자로 만났던 시간들이 카구리를 끓여먹는 법을 읽다가 기억의 저장고에서 스멀스멀 올라와 글을 쓰게 되다니...


공부보다 인성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며 자신이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야 공부가 쉽다.


나 스스로를 바르고 당당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선생님 ~~ 늘 반갑게 맞이해주고

문밖까지 배웅 나오던 이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니 많은 제자들 중에 내기억속에 살아남아 카 구리를 먹다가  잠시  울컥할 뻔했다.


카구리는  카레맛과 다시마맛이 조화를 이루고 

면발은 라면보다 굵고 살짝 매콤하지만 괜찮았다.

귀여운 캐릭터 카구리가 동동 떠 있다.

음 ~~아들이 숨겨놓은 카 구리를 먹고 나니

배고픔과 허기가 사라졌고 행복함이 밀려왔다.

추억을 함께 먹어서 그런가?  맛있었다.

아들이 사다놓은 카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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