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없다.
소파도 없다.
카펫도 없다.
식탁도 없다.
전자레인지도 없다.
집안이 휑하다~~
텅 빈 거실에 바퀴 달린 의자가
달랑 하나 있을 뿐이다.
여긴 어디? 대체 무슨 일이?
70일 동안 부모가 집을 비우면
아들이 집안의 모든 물건을 팔고
이사를 간다. 뭐야 뭐야? 정말?
아들은 혼자서 벳남 살기를 시작했다.
겁도 없이 해외에서 이사를... 하다니
노옵션을 얻어서 풀옵션으로 채워 두었던
부모님의 짐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처분했다.
그리고 그 돈을 모아 통장에 비축했고
행여 한국 가신 부모님이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 오면 보내주려 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리고 가성비 좋은 작은집을 구했다.
노노 옵션으로... 진짜 필요한것외에
없는 게 너무 많은 노노 옵션이다.
게다가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 통장 중 달러 통장과
벳남 통장, 개인통장까지 꼭 필요한 자금
외에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쓰고 있으라고
주고 간 통장과 비상 카드도 그대로다.
어찌 살았을까?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자신의 돈을 쓰며
70일을 버티어 냈다며 웃는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큰 병원에
간 적 없던 아빠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으니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야야 엄마 아빠도 팔겠네~"농담했더니
"노노노 ㅎㅎㅎ이 세상에 하나뿐이고
소중한 건 절대 팔지 않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는 이미 환자에 갱년기라 아무도
안 사가고 안 팔려서 내가 평생 소장하기로...
해외 살이 3년 만에 아들은
처음으로 진짜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빠의 회사까지 떠안은 28세의 투잡 시대
길어질지도 모를 대비책은 깔끔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빠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혼자서 울었다고 한다.
아빠랑 엄마가 다시 하노이로 돌아올 때까지
자신은 이곳에 살아만 있으리라 다짐을 하며
죽을 만큼 힘들었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ㅠ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사극 드라마도 아니고
현지 생방송이다. 우리가 꽃샘추위와 맞서며
병원을 오고 가는 사이 아들은 혼자서
세상 속 인생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하늘도 아들의 마음을 알았나 보다
남편도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고
다시 하노이로 우리는 돌아왔다.
텅 빈 거실엔 소파도 티브이도 없다.
컴퓨터 책상과 의자뿐 참 많이 어색하다.
이상하다 없는 게 많은데...
꽉 찬 이 느낌은 뭘까?
건강을 잠시 잃었더니 아들이 짐을 비워 놓았다.
작가 엄마의 노트북 놓을 자리는 마련해 두었네
바퀴 달린 책상 변신 가능한 접이식 의자라니...
가끔 식탁도 되는 내책상 ㅎㅎ
이런 아들이 내 아들 맞습니다. 참 낯설다.
늘 미니멀한 삶을 강조했던 나였지만
해외 살이 6년 차 살다 보니 짐이 늘어났다.
노옵션을 풀옵션으로 채우고도 허 한마음으로
해외에서 살아남기를 했다.
아들이
아빠 회사를 벗어나 삼성 벤더 회사에
현지 채용되어 주임이 되었다.
집세를 자신이 내겠다며 하노이
시내에서 15분~쯤 떨어진 곳으로
무작정 이사를 감행한 것이다.
회사에서 차까지 나왔다며
신이 났다. 아들의 취업 축하도
못해주었고, 짐만 지워준 것 같아
못내 미안했다. 아빠가 없는 동안
아빠 대신 천장이 넘는 서류에 대리 싸인을
하며 아빠 회사도 살려 놓았고, 두 달 전
새로 입사한 회사생활도 잘하고 있다.
온몸에 아토피가 번져있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 애썼다 내 아들...
식탁 없이 싱크대 앞에서 셋이서
샤부샤부를 해 먹으며 웃는다. 밥그릇을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건져주는 야채랑
고기를 맛나게 먹는다. 세상에서
이처럼 맛난 밥상은 처음이다.
샤부샤부 야채와 고기 오징어 새우
아들 집이라니...ㅎㅎ
식탁과 의자가 없다.
아들 왈
"엄마, 서서 먹으면 살도 안 찌고
소화도 잘된대... 어때요? 일석이조"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거나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를 보는 익숙한 거실 풍경은 가라~
여기는 미니멀한 노노 옵션 아들 집이다. ㅎㅎ
홀로서기하려 했는데 너무 빨리 왔다나?
콧물 질질 꼬맹이가 어느새 어른 흉내가
아닌 진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시련 뒤에 오는
성장통과 씩씩하게 세상과 마주하는 법을 아들도
나도 남편도 알게 되었다.
70일 아빠와 엄마가 하노이를
비운 사이 아들은 살아남기의 끝판왕이 되었다.
가끔은 어른인 우리가 아이가 되어있는 듯
어눌하고 어리바리하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 내 아들을 보니 참 당당하다.
오토바이를 처음 탈 때도
오토바이 천국인 벳남에서 차 운전을
하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할 때도
전역 후, 복학 대신 하노이를 택할 때도
아들은 자신의 선택에 두려움이 없다.
엄마가 아끼는 물고기 한 마리는 살려 놓았고
노노 옵션에 공짜 노을이 보이는 집을 얻어두었다.
작지만 나름 단지가 커서 산책하기 좋았다.
공원에 갔더니 하트가 뿅뿅 보인다.
잘했다. 울 아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지금은 청춘들을 믿고 응원해 줄 때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