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정신줄 챙겨라~
전깃줄만 챙기지 말고...
"엄마, 이사 후에 혹시 여권 못 봤어요?"
새벽 6시 20분 눈 비비고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이미 아들방은 서랍장이고 장롱이고 쑥대밭이다.
여권 찾느라 정리해놓은 짐들을 다시 다 꺼내
확인 중이었다.
"해외에서 여권은 심장이야 잘 챙겼어야지"
순간 화가 올라왔지만 이미 아들은 영혼까지 탈탈
털린 모습이었다. 야무진 작은아들이라 믿어왔는데 허당 아들로 급 폭락했다. 본인은 열쇠 달린 서랍장에
꼭꼭 숨겨두었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혹시 회사에? 자동차에? 백팩에 있을지도...
말을 흐리고 아들은 일단 출근했다. 분명 아들방 정리를 하며 이것저것 버리긴 했지만 여권을 버리는
실수를 할 내가 아니기에 다시 찾아보기로 핬다.
어머나! 세상에...
여권 찾으려고 열어놓은 책상 서랍 속 줄줄줄
이게 다 뭔 줄인 지? 엉키고 꼬이고 제멋대로
누워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것들까지
뒤죽박죽 서랍장 안은 전쟁통이다.
이런이런 일단 서랍 속을 비웠다. 긴 줄, 짧은 줄을 작은 끈으로 묶었다. 어휴~ 이게 도대체 몇 개야?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서랍 속을 정리해 주었다. 속이 시원하다. 채움보다 비움이 역시 숨통 트인다.
이건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뾰쪽하고 길쭉한 파란 주둥이에 몸은 동글고 빵빵한 검정 타원형이다. 이것은 컴퓨터 앞 먼지를 뿜어 올리는 압축 청소기? 눌러보니 쑹쑹 바람이 먼지를 빨아들인다. 난 지금 뭐하는 중?? 아들방 탐험 수사대? 놀이 중이다. 2
작은아들은
핸드폰 , 아이패드, 넷북, 컴퓨터, 노트북 , 사진기 등등
전자제품에 유독 관심이 많고 돈을 쓴다. 그 기기들을 쓰려면 이 많은 줄들이 꼭 필요한 것이겠지만...
줄보다 귀한 게 여권임을 몰랐을까?
다음칸 ㅠㅠ 그래 바쁜 것도 알고 시간 없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여권을 찾으려다 서랍 안을 보니
또 줄줄줄 줄만 가득하다. 없다 없어 여권이...
빈틈없이 채워진 줄들만 보인다.
줄과 연결코드 두 개의 박스가 나를 쳐다본다. 아들은 본인이 정리
하겠다고 방에 들여놓고 열흘이 넘도록 방치했다. 박스 속 짐 속에 혹시나 여권이 있을지도 모른다. 박스테이프를 풀고 속 안의 짐을 정리했다.
짐 정리 도중 나오라는 여권은 나오지 않고
현금이 발견되었다. 세상에나.,. 한국돈 신사임당 얼굴이 봉투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울 아들 부자네' 하던 차에 웃음이 났다.
또 다른 봉투 속에 벳 남동이 발견되었다. 여권을 찾다가 베트남동 잔돈이 백장 아니 무려 2백 장이 훨씬 넘었다. 베트남동(원)은 1000동 (50원) 2000동 (100원) 5000동 (250원).. 만동 (500원)이다.
갑자기 돈 세기를 시작했다. 9장을 세고 한 장으로
끈을 만들어 준다. (벳남 사람들처럼)그러면 계산이 쉽다. 구겨진 종이돈은 손 다리미로 손톱 끝으로 문질러 폈다.
'차곡차곡 잘도 모아두었네 '
그나저나 여권 찾다가 지금 내가 현금을 아들방
침대에 걸터앉아 돈 세기를 하게 될 줄이야~~
아들방에서 줄줄줄 따라오는 충천 줄뿐 아니라
돈돈돈 돈도 찾아냈다. 난 돈맛을 아는 수입이 짭짤한 노동자다. 아들방에서 모은 쌈짓돈은 여권 찾기에 몰두한 내 인건비다.ㅎㅎ
물 한 박스 값은 충분했다. 여권은 보이지 않았다. 힘들다. 힘들어 ~~ 없다 없어 진짜 어디로 숨은 걸까?
야무진 아들의 여권이 숨바꼭질을 길게 한다.
회사에 간 아들에게 점심때 문자를 했다.
"혹시 여권 찾았니?"
"아니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에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요ㅠㅠ"
하루 종일 여권 찾기 하다가 점심때를 놓쳤다.
보물 찾기도 아니고 여권 찾기 이제 그만
술래가 지쳐 포기 단계다.
어디서든 여권이 짠 나타나길 바랄 뿐이다.
아들아 ~
엄마랑 너랑 연결되었던 탯줄만큼이나 중요한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 살면서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야무진 아들이 요즘 세상 속 관심사들로 바쁘게 살고 있다. 사회 초년생 티가
팍팍 난다. 뮛이 중한디...
짧았던 하루 긴 정신줄이 나에게도 필요했다.
벳남 잔돈으로 물 한 박스와 골드키위 6개를 사 왔다.
여권은 못 찾았지만 달콤한 키위를 먹었다. 아들이
크고 나니 믿거라 맡겨 두었던 소중한 여권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짧게 커트를 하고 돌아온 아들
"이런 일 처음이야 엄마 , 정신줄 꼭 잡아볼게요"
수고했고 고생했다고 부라보콘을 사 왔다.
여권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들의 정신줄은
돌아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