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저녁 제가 쏩니다."
"6시 어때요? 식당 주소와 사진
보내니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모양이 아주
뜻밖이고 갑작스럽게
주말오후, 편안하게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며 소파에서 뒹굴뒹굴 거리는데 느닷없이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그냥 엄마아빠 맛있는 걸 사드리고 싶다며 나오라고 한다. 별일이네~~
아들이 다니는 회사는 주말에도 간혹 일을 한다. 얼굴 보기가 어렵다.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이 주말뿐인데... 친구들이 한창 좋을 때니 주말에도 우리끼리 김치 칼국수를 끓여 먹고 티브이를 보다가 자다가 비몽사몽에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래서 정신을 차렸다.
보낸 주소를 찍어보니 참지횟집이다. 혹시 한잔 할 수도 있으니 차를 두고 가기로 했다.
주말 바람이 많이 불고, 비도 조금 내리고 추웠다. 하노이는 이런 날이 좋은 날이다. 무덥고 습한 날 보다 바람 불어 좋은 날 게다가 외식이라니... 요리패스! 설거지 패스! 고민 패스!
남이 차려주는 밥상에 젓가락만 올리는 일은 즐겁다. 게다가 공짜다. 아들 키운 맛 톡톡히 보러 가는 중이다. 아들 전화를 받고 갑자기 꽃무늬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인생의 봄날이다.... 기대해 봄
남편도 반바지를 벗고,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오래간만에 향수도 칙칙 뿌렸다. 아들 만나러 가는데 꽃단장 이라니... 우리는 느닷없이 콜을 받고 신이 났다.
아들이 사주는 밥 먹는 날 이런 날이
느닷없이 올 줄이야~~
5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신나는 벨소리에 아들은 눈을 비비고 단잠을 깬다.인턴 3개월이 지나고 정직원이 되었다. 1시간 30분 출근길을 힘든 내색 없이 잘 견디어 내고 있는 중이다.
외울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다며 작은 공책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고, 열나게 나에게 설명을 한다.그저 들어줄 뿐... 아는 게 없다.
힘들게 번돈이 통장에 쌓였다며 좋아한다. 돈 벌기 쉽지 않다며.... 푸념을 늘어놓다가도 하하하 회사 생활을 조잘조잘 말해주는 귀요미 아들이다.
아들의 샤워소리가 한바탕 시원하게 들린다. 부지런히 출근을 한다. 통근차가 집 앞에서 기다리므로 늦으면 안 된다. 6시 20분 대문 여닫는 소리가 삐리리 나면 "엄마, 다녀올게요"인사를 한다.
아침은 먹지 않는다. 출근 후 아침을 회사에서 먹는다. 냉장고에 아들이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를 넣어두거나 베지밀을 넣어둔다.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제는 별로 없다. 그저 믿어주고, 응원해 주고, 애틋하고 짠하게 바라볼 뿐
힘들게 번돈으로 맛난 저녁을 쏜다니 기대해 봄
인생의 봄날은 기다려야 하는 거였다.
"아덜 회사 갔어?"
" 네~ 마덜 "
"토마토 주스는 가져갔어?"
"ㅎㅎ 네~ 내가 훔쳐왔지요 여기 있지요"
회사 컴퓨터 앞에 두고 인증숏을 보내왔다.
"엄마의 사랑이 잘 전달되었네, 오늘도 수고해."
아들이 야근을 하고 늦게 들어오는 날엔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자고, 주말도 없이 몇 주째 회사에 나가느라 우리와 동선이 달라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가족톡방을 열어 서로의 생존신고를 메시지로 남길뿐이다. 한국에 있는 아들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열심히 각자의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우야꼬 세상살이가 다들 만만 치 않다.
"엄마, 이것 좀 사다 놔주세요" 사진을 보내거나 필요한 것들을 적어주면 사다 놓을 정도로 아들은 바쁘다. 힘들다는 말대신 셀프칭찬에 익숙한 아들이다.
"엄마, 아들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그래, 애쓴다." 아들의 힘듦을 하트하나 달랑 보내고, 주스 챙겨주는 일이 전부다.
택시를 타고 아들이 오라던 식당 앞에 내렸다.
아들이 식당 앞에 마중 나와 있다. 같이 사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아들손을 잡고 흔들었다.식당 안은 아담하고 깨끗하고 맘에 들었다.
더 식탁 하노이 미딩 딩톡쪽
"와우~영양보충 하는 날이네 "
" 너무 비싼 거 아니냐?"
" 괜찮아요~ 이 정도.. 많이 드세요"
"어머나, 입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 이것도 잡숴봐 엄마"
곱살스러운 아들은 참치회에 고추냉이를 올려 한입 넣고 3초 후 음미하며 먹으면 달다고 설명한다.
이것저것 해물요리가 나오고 하하 호호 오랜만에 외식에 즐겁다. 시원한 매운탕으로 마무리를 했다.
참치회와 곁들인 음식들분홍빛 싱싱한 참치회와 죽, 회 김밥에 특별한 된장소스까지 정말 입속에서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아들의 마음을 받으니 온몸에 세포들이 막 깨어나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우리 집 막둥이 언제 이리 컸나?'
젓가락에도 리듬이 있다는 걸 알았다. 컨디션이 다운될 때는 돈 아끼지 말고 맛난 거 먹어야 살아난다. 사실 며칠 전 마사지 샾에 갔다가 내 샌들을 두고 맛사지샆 슬리퍼를 집까지 신고 돌아왔다. 어떡해ㅠㅠ
"엄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깜박깜박하거든... 보라색 슬리퍼가 그리도 탐났어? 하하하"남편과 함께 갔다가 빨리 나오라는 말에 그만 신발 갈아 실을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며칠 후,
친구와 카페에 갔다가 당근주스를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손톱 네일 예약시간이 다 되어 핸드폰만 들고 나와
네일을 1시간 동안 받았다. 핸드백을 카페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모른 채 돈을 내려니 핸드백이 없었다.
뛰었다. 달렸다. 제발 제발 핸드백이 그 자리에 있길.... 치매인가? 건망증인가? 바쁘게 살다 보니 정신줄을 놓친 듯 급 우울 해졌다. 아직 5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데... 88세까지 팔팔하게 살아야지 야무진 내 생각은 절망의 늪에 빠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다행히 핸드백은 카페 의자에 그대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깜박깜박 자꾸 잃어버리거나 딴생각을 많이 하면 집중력도 약해져 멍 해지는 나를 토닥토닥 위로했다. 아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참치회를 먹자던 아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마터면 참치회를 먹다가 울 뻔했다. 너무 맛있어서...
어스름한 저녁, 카드기에 돈을 찾으러 나왔는데 지갑은 집에 두고 가방만 들고 나왔다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붙들고 길에서 하소연을 하는 나이 어린 집사님을 만났다. 우울감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며 힘들었던 날들을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깜박 깜박증 ㅎㅎ 웃긴데... 울고 있는 서로의 마음이 보였다. 그날이후 내 핸드백도 신발도 모두 안전하다.
새로운 맛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어하는 네게
어느 날
예쁜 영양사가 웃으며 말했다.
물도 음식이라 생각하고
아주 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
그 후로 나는
바람도 햇빛도 공기도
음식이라 여기고
천천히 씹어먹는 연습을 한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기도하면서...
때로는 삼키기 어려운 삶의 맛도
씹을수록 새로운 것임을
다시 알았다.
시인: 이해인 수녀님
투병 중에 쓴 시
좀 더 여유롭게 시간을 분배하며 너무 열심히 살지 않을 것이며 천천히 차근차근 세상을 볼 수 있는 여유로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 요인들을 만들지 않으며 살아야겠다. 아들의 참치처방전은 정말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