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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an 11. 2022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어렸을 때와 지금의 내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를 추억하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를 굳이 되돌려 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 기억도 희미해졌다. 예측 불가한 세계 속에서 큰 흐름 외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인지 근래에는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저 맞장구나 치며 아는 체를 하거나, 몇 번 씩이나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묻기 일쑤였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왜 굳이 과거 얘기를 하지? 현재에 집중하기도 아까운 이 시간에’라는 생각까지 했다. 아, 얼마나 오만한 인간인가.


인간이란 대개 인생이 고달파지면 과거의 영광을 그리다가도, 현재의 삶이 평온하면 과거의 고통을 쉽사리 잊기 마련이다. 참으로 간사한 존재가 아니한가. 나는 그중에서도 간사하디 간사한 편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작성했던 글만 보더라도 얼마나 과거에 매몰돼 있었는지 알 수 있는데, 지금은 그게 별일 아닌것인마냥 우스워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핑계는 있다. 인간은 본래 과거 자신의 모습을 쉽게 잊는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과거에 집착하는게 인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기록하는 일을 참 좋아했다. 순간의 감정이든, 당장 먹는 음식이든, 친구와의 추억이든, 못난 내 모습이든, 하루 끝에 본 달이든. 초등학생 때부터 모았던 사진들을 버리지 못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해둔 이유다. 13년 간 모은 사진 80GB는 내 기록물의 절정체다. 정리되지 않아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비교적 최근의 사진들에 비해 고등학생 때까지의 사진은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한몫했지만, 그만큼 과거를 자주 회상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주 사진을 봤기 때문에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을 참지 못했었겠지.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진이 정리돼 있지 않다는 건 그만큼 추억을 살피지 않는다는 것일 테고.


일기장 같은 낙서들도 참 많았다. 완벽히 채우지 못한 채로 서랍에 처박아둔 크고 작은 노트부터 스마트폰 어플 속 동기화된 메모들까지. 많이 버리고 지워 몇 개 남지 않았지만 이것들을 보다 보면 자기 연민이 강하게 든다. 나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일기장은 부정적 정을 배설하는 창구였다. 얼마나 내가 힘들고 불행한 사람인지를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로 토해냈다. 대부분은 토막글 형태였다.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등학생 때는 밤마다 양재천 돌계단에 앉아 울다 핸드폰 메모장에 울분을 쏟아내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때는 세상이  이렇게 나한테만 잔인했다고 느꼈던 건지.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청소년기에 흔히 겪는 비대한 자아의 사회화 과정  열병을 남들보다 조금  격렬하게 앓았던 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불행이 내게만 일어나고, 절대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 말이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하지만 모두에게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고, 개인의 삶은  자체로 존재한다. 제아무리 타인이 옆에서 괜찮다고 토닥여줘도 스스로가 괜찮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시의  불행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도 당시의 내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불행이었을 테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이 좋았던 사람이고, 지금도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


대개 노력한 대로 결과를 얻었고, 인생의  결핍이나 고난 없이 살아왔다. 물론 청소년기에 겪은 나만의 결핍과 고난아마 내가 평생 혼자 싸워야  내면의 문제들이긴 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도, 가정의 불화가 있지도, 패가 잦지도 않았다. 특출난 불행니지만 나 스스로 지나치게 예민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스스로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같다.


이러한 생각은 상황이 좋아져 긍정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고가 발전한  같다. 분명 부정적 경험만 계속 반복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고를 갖진 못했을 거다. 그런 면에서 점점  나아지는 삶을 사는 나는,  감사한 인생이다. 완벽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어제보다 내일이 더 나은 인생이라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었다.  이상 삶이 나아지긴 어려울 거라 생각현실을 놓고 흘러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집착했다. 과거의 추억이든,  좋았던 일이든  자체를 현재의 삶보다  많이 생각하다 보니 항상 불행했다. 좋았던 옛날보다 지금이 좋을 리가 없고, 안 좋았던 과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불행한 현재를 잊고자 환상  완벽한 미래를 그렸다.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미래의 나는 행복한 모습이겠지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현재의 불행을 잊으려 했다. 결국 한마디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거다.






지금도 과거를 추억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 나와 여전히 어리지만 조금 더 큰 지금의 나는 불과 몇 개월 전보다는 많이 달라졌다. 현재의 삶에 큰 불만이 없는 것 때문일 수도, 혹은 삶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해버린 것 때문일 수도 있다. 하나의 온전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단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현재의 나는 과거를 추억하지도, 미래를 그리지도 않는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과 당장의 일들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사실 그마저도 흘러가는 대로 두고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이십여 년의 삶 속에서 고민해봤자 무언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삶은 뜻대로 되지 않고, 이 세상은 수많은 우연의 귀결로 이뤄져 있기에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무의미하며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하는 일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분명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만들어졌을 테다. 순간의 순간들이 더해져 지금의 외적 조건들을 갖추게 됐을 테고, 고통과 고독 속에서 곱씹었던 사유들이 내 인식을 지배하고 있을 테다. 분명 직년까지만 해도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 방식이 어린 시절과는 달랐음은 확실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일도 중요하다. 방향성을 잃은 삶은 헤매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당장의 목표가 없어서 잠시 제자리에서 헤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이 술술 풀려서 큰 걱정이 없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나 삶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불만보다 지금 상황에서 얻는 만족감이 더 커서 불만이 이전처럼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일적으로 성취를 내고 인정받는 일 따위 말이다. 또 17살의 나보다는 정신적으로도 성숙했을 테고. (진짜?)





구구절절 이야기를 썼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간단하다. 언젠가 삶이 다시 고달파져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질 때, 이 글을 다시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과거를 돌이켜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거다. 프로이트 식으로 바라보면 과거의 나 때문에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내가 존재하게 되는 건데,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결국 과거의 순간들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후회를 잠재우긴 어려울 거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변한 것처럼 언제든 나는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현재의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훨씬 나은 사람이 돼 있지 않을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자. 빠르게 가라는 말이 아니다. 뛰다가 넘어져도 봐보고, 쉬면서 주위를 살펴봐도 된다. 사실은 뒤를 돌아봐도 된다. 다만 너무 오래, 자세히 보지는 말자. 차라리 현재 나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솔직해지는 편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하니 말이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상하면 두려움만 커져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현재를 살자.




2022년은 삶의 그 어느 때보다 현재를 사는 한 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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